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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리스크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얻는다
정소연의 탐나는 책
리스크
피터 L. 번스타인 지음 / 안진환 옮김
한국경제신문 / 536쪽│1만8900원
다음 상승장에 올라타기 위해
'자산배분'이라는 보험 필요
리스크
피터 L. 번스타인 지음 / 안진환 옮김
한국경제신문 / 536쪽│1만8900원
다음 상승장에 올라타기 위해
'자산배분'이라는 보험 필요
그러던 인간은 어느 순간 불확실성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 시기, 도박과 항해, 상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어떤 일이 벌어질 가능성과 그 일이 벌어졌을 때의 손실을 계산했다. 불길한 미래는 더 이상 신의 변덕이나 예언자의 말에만 맡겨진 영역이 아니었다.
리처드 번스타인은 <리스크>에서 인류가 리스크를 지배할 수 있게 되면서 “신의 변덕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미래”에서 벗어났다고 말한다. 미래는 점치는 것이 아니라 따져보는 것이 됐고, 보험은 그 태도의 제도화였다. 투자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생긴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나누어둘 것인가.
1950년대 해리 마코위츠가 발견한 것은 서로 다르게 움직이는 자산을 조합하면, 수익을 크게 포기하지 않고도 포트폴리오의 흔들림을 덜어내는 구조였다. 한 자산에 모든 미래를 걸지 않고, 움직임이 다른 자산을 함께 담아 전체 위험을 낮추는 것. 자산배분의 출발점은 불행에 대한 상상이 아니라 위험과 수익의 효율적 조합이었다.
그러나 실제 투자에서 자산배분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포트폴리오 안의 현금, 단기채, 금 같은 자산은 강세장에서 답답해 보인다. 위기가 왔을 때 금이 크게 올라 수익을 낸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같이 무너지지 않거나, 상대적으로 덜 흔들리기만 해도 보험의 역할은 수행되었다. 그 자산들이 버텨주는 동안 투자자는 주식을 팔지 않아도 되고, 오히려 급락한 성장 자산을 다시 살 수 있다.
워런 버핏은 현금을 기업의 산소에 비유한 적이 있다. 산소는 있을 때는 거의 생각하지 않지만, 없으면 오직 그것만 생각하게 된다. 물론 버핏이 현금을 최고의 장기 자산으로 본 것은 아니다. 현금은 기업처럼 스스로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고, 물가가 오르면 구매력도 줄어든다. 그럼에도 현금이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위기 때 팔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모두가 팔 때 살 수 있기 위해서다.
그래서 코어-위성 포트폴리오에서 작은 비중으로 담는 보험적 자산은 성장을 포기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성장 자산이라는 코어에 더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한 장치다. 주식이 장기적으로 좋은 자산이라는 말을 믿는다면, 더더욱 위기 때 주식을 팔지 않을 구조를 갖춰야 한다. 불행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낙관은 오래가지 못한다. 필요한 것은 불행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되, 그 불행 이후에도 다시 성장으로 뛰어갈 수 있게 해두는 구조다.
자산배분은 불행을 막는 부적이 아니다. 미래를 맞히는 예언도 아니다. 그것은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성장 자산과 보험적 자산을 함께 배치하는 기술이다. 그 작은 보험이야말로 다음 상승장까지 살아남기 위해 지금 지불하는 가장 현실적인 비용일지 모른다.
정소연 에프엔미디어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