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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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Asia's 50 Best Restaurants)이 발표됐을 때, 최대 관심사는 하나였다. 상하이의 링롱(LING LONG). 지난해 상하이에서 경험한 다이닝 가운데 손에 꼽을 만큼 인상 깊었고, 지금까지 아시아에서 만난 파인다이닝 중에서도 최상위에 두고 싶은 곳이었다. 당시 순위는 27위. 필자는 이를 지나친 저평가라 여겼다. 올해 9위로 도약하는 것을 보며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지만, 솔직히 9위조차 아직 이 레스토랑의 가치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순위라 여긴다.

아시아 톱3에 들어가도 손색이 없는 파인다이닝

무엇이 이런 높은 평가를 가능하게 했을까. 링롱이 자리한 곳은 상하이의 상징 와이탄(外灘)의 월도프 아스토리아(Waldorf Astoria)다. 1911년 영국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옛 상하이 클럽 건물의 원형을 그대로 살린 헤리티지 빌딩에 들어서 있다.
상하이 갈 이유는 이곳으로 충분하다…亞 다이닝의 미래 '링롱' [이영민의 테이블 위의 세계]
셰프는 대만 출신의 제이슨 리우(Jason Liu). 타이베이에서 열네 살에 시작해 프렌치 키친에서 조리기법을 익혔고, 1년간 중국 전역을 돌며 지방 요리를 공부했다. 2022년 서른이 되기 전 베이징 미슐랭 1스타를 받았고, 2023년 상하이 진출 뒤 단 몇 달 만에 이곳도 별을 달았다. 예약 시 두 가지 코스 중 진가를 온전히 볼 수 있는 클래시컬 세트(1인 1980위안)를 택했다. 어둡고 명암이 강한 조명, 주방이 정면에 놓인 여덟 테이블 남짓의 공간은 그 자체로 극적이었다. 코스는 시안(鮮)·전통(Tradition)·지역성(Localization)·추억(Recollection)·기억(Memory)이라는 다섯 챕터로 흐른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땅의 식재료와 문화를 한 코스에 담아내려는 설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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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키운 닭, 한 그릇의 육수로

첫 챕터 시안(鮮)은 중국요리의 핵심 개념이다. '신선할 선' 자를 쓰지만 실제로는 입안 깊이 퍼지는 감칠맛을 가리킨다. 일본의 우마미가 감칠맛에 초점을 둔다면, 시안은 신선도와 향까지 아우르는 더 넓은 개념이다.

먼저 한입 크기의 포르치니 아뮤즈가 나온다. 얇은 베이스 안에 숙성 포르치니 아이스크림을 채우고, 위에는 버섯을 꽃처럼 얇게 올렸다. 입에 넣는 순간 마른 포르치니 특유의 농축된 우디한 향이 단숨에 터진다. 차갑게 풀어낸 덕에 향이 단계적으로 풀려나온다. 비주얼과 식감, 향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정확히 계산된 한입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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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챕터의 정점은 닭 육수다. 서빙에 앞서 큰 트레이에 닭다리 여러 개가 걸린 채 등장한다. 정육점의 풍경을 다이닝룸으로 옮겨온 듯한 연출이다. 이 닭은 탕산(唐山)에서 3년간 키운 뒤 180일을 숙성한 것이다. 일반 식용 닭이 6주면 도축되는 것을 떠올리면 극단적인 선택이다. 그런데 정작 닭은 고기가 아니라 육수로 나온다. 안에는 맛조개라고도 알려져있는 면도조개와 비슷하게 생긴, 전 세계에서 중국 푸젠성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만 난다는 조개가 들어 있다.

코스 하나에 담긴 수많은 식재료 산지 이야기

국물의 색과 향이 빼어났다. 염도가 살짝 높은 덕인지 깊이와 무게감이 남달랐다. 표면적인 감칠맛이 아니라, 3년 사육과 6개월 숙성이 빚어낸 농밀함이었다. 지금껏 마셔본 닭 육수 가운데 단연 최고였다. 창의성에 앞서, 맛의 본질을 정확히 아는 셰프라는 인상이 강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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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레와 중국산 파르미지아노

두 번째 챕터 전통의 백미는 부레(Fish Maw) 요리였다. 상하이 여행을 통틀어 먹은 디쉬 가운데 최고였다. 요리에 앞서 큰 치즈 덩어리를 보여주는데, 중국이 자체적으로 만든 최초의 파르미지아노라고 했다. 몽골 소의 우유를 베이징에서 이탈리아 제조법 그대로 가공해 만들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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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미지아노는 이탈리아 특정 산지의 기준을 충족해야 정식 명칭을 쓸 수 있다. 그 제조법을 몽골 우유로 재현한다는 발상 자체가, 중국 본토의 다이닝이 서비스를 넘어 식재료의 영역에서도 미식 강국의 길을 차근차근 걷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요리는 그 치즈와 앞서 나온 닭 육수를 합쳐 만들었다.

안에는 부레와 뇨끼가, 위에는 치즈로 만든 바삭한 칩과 홍콩산 숙성 진피(陳皮)가 올랐다. 진피의 시트러스한 쌉싸름함이 농밀한 치즈 소스의 무게감을 정리한다. 부레와 닭 육수, 진피 같은 동양의 재료와 파르미지아노, 뇨끼 같은 서양의 재료를 한 접시에 묶어내는 솜씨가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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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들인 와인도 흥미로웠다. 소믈리에는 부르고뉴의 르플레이브(Leflaive)와 함께 운남성 와인을 권했다. 운남성 와인은 LVMH의 고고도 프로젝트 아오윤(Ao Yun) 출신이 독립해 만든 것으로, 산미가 좋았다. 아직 르플레이브가 우위였지만, 중국 와인은 이제 막 시작이다. 방대한 지리적 이점을 발판 삼아 머지않아 일본과 함께 아시아 와인을 이끌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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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미가 얼굴을 찌푸리게 하지 않는다

세 번째 챕터 지역성에서 가장 놀란 요리는 옥돔이었다. 일본에서 아마다이(甘鯛)로 귀하게 치는 섬세한 흰 살 생선을, 뜨거운 기름을 끼얹어 껍질만 바삭하게 익히는 광동식으로 조리해 '탕'에 담았다. 생선 아래에는 백산탕(白酸湯)이 깔린다. 중국 구이저우(貴州)의 전통 수프로, 쌀뜨물을 발효해 만든 맑은 신맛 베이스다. 함께 건넨 작은 나무 막대를 유자 제스트처럼 갈아 뿌리면, 레몬그라스를 닮은 시트러스 향이 산미 위에 얹힌다.

한입 먹고 좋은 의미로 놀랐다. 산미가 대단히 강한데도 얼굴이 찌푸려지지 않는다. 기분 좋게 강하다. 산라탕 같기도, 똠양꿍 같기도 한 이 국물은 발효가 만든 산미라 자극적인 식초산과 결이 다르다. 이런 산미를 지닌 훌륭한 스프는 처음이었다. '지역성'이라는 챕터의 이름이 이 한 접시에서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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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직전에는 서버가 눈앞에서 차를 만들어 준다. 말차 문화의 기원이 된 송나라의 점차(點茶) 방식이다. 가루차에 물을 붓고 다선으로 휘저어 거품을 낸다. 광둥의 압시향단총 우롱을 전날 저온에서 침출한 뒤 당일 고농축으로 우려 부으니, 크리미한 거품과 함께 스파클링 같은 청량감이 인다. 함께 건넨 백목련 봉오리의 향까지, 중국 전통문화가 한 잔에 녹아든 훌륭한 구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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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의 정점은 디저트가 아닌 '밥'

메인으로는 후저우(湖州)산 오리를 통째로 튀겨 광동식에 가까운 바삭한 껍질을 냈다. 잡내 없이 지방과 껍질이 훌륭했다. 그러나 이 코스의 진짜 정점은 그다음, 마지막 식사로 나온 볶음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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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중국 최고급 품종으로 꼽히는 헤이룽장성 우창쌀(五常米)로 지었다. 한국의 이천쌀이나 일본 코시히카리에 견줄 위상이다. 소스는 여덟 가지 재료가 들어간 팔보장(八寶醬). 한 숟갈에 여덟 갈래의 식감과 향이 동시에 풀린다. 밥의 질감과 윤기가 환상적이었다. 홍콩의 윙(WING)에서 먹은 부레 볶음밥이 떠올랐지만, 밥 자체는 이곳이 한 수 위였다. 무려 세 그릇을 리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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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경험한 많은 파인다이닝에서 마지막 식사는 디저트 직전의 완성도가 살짝 부족한, '탄수화물 충전'에 가까웠다. 그러나 링롱은 이 자리에서 식재료의 진수를 응축해 혀를 강타한다. 코스가 끝나갈수록 만족도가 떨어지기는커녕, 정점에서 식사가 멈췄다는 인상을 남겼다.

마지막 디저트 역시 단순하지 않았다. 리우 셰프의 어린 시절 추억을 프티푸르로 재현한 '기억' 챕터다. 서버가 건넨 코인을 나무 상자에 넣으니 오르골 선율이 흘러나오고, 셰프의 유년을 그린 그림이 드러난다. 1959년 상하이에서 태어난 국민 사탕 다바이투(大白兔)를 응용한 밀크 캔디까지, 기억이 코스의 마지막 주인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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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과 컨셉, 퍼포먼스를 적재적소에 녹이면서 가장 중요한 맛까지 잡은 다이닝. 보통 컨셉이 강하면 맛이 따라오지 못하고 맛이 좋으면 서사가 약할 수 있는데, 링롱은 그 둘을 동시에 높은 수준으로 잡았다는 점에서 드문 곳이다. 이 레스토랑 한 곳을 위해 상하이로 향할 가치는 이미 충분하다. 아시아의 파인다이닝이 언젠가 전 세계의 리더 자리에 오른다면, 그 방향성은 링롱이 이미 보여주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