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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 온 기분"…눈물의 '반값 세일' 나선 홈플러스 [현장+]
"장례식장 온 기분"… 홈플러스, 눈물의 세일
한때 국내 대형마트 2위였던 홈플러스가 사실상 ‘재고 정리 매장’으로 변했다. 회생절차 종료 이후 상품 공급이 끊기면서 식품 매대는 비었고, 점포마다 마지막 할인 상품을 사려는 소비자들이 몰렸다.매장 안쪽에 위치한 식품 매대 상당수는 선반이 훤히 드러날 정도로 비어 있었다. 라면과 과자, 음료는 물론 냉장·냉동식품까지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남아 있는 상품은 세제와 문구류, 수납용품 등 유통기한이 없거나 긴 생활용품이 주를 이뤘다.
계산대 앞에는 20~30m가량 긴 줄이 이어졌다. 계산 직원 3~4명이 쉴 틈 없이 바코드를 찍었지만 줄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출입구에서는 도난방지 경보기가 여러 차례 울렸지만 이를 확인하거나 제지하는 직원은 보이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친 일부 고객이 물건을 든 채 출입구를 지났는데도 별다른 통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지역민 추억 담긴 생활거점 '흔들'
충남 보령과 경북 안동 같은 지방 중소도시에서 홈플러스는 대형마트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공간이었다. 대도시처럼 대형 유통시설이 많지 않은 지역에서는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한꺼번에 살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자, 주말마다 가족이 모이고 주민들이 약속을 잡는 생활 거점이었다. 수십 년간 지역민의 일상에 자리 잡은 매장이 무너지면서 단순히 점포 한 곳이 사라지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의 익숙한 풍경과 생활 인프라까지 함께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홈플러스 보령점을 찾은 김모씨(56)는 “장을 보러 왔다기보다 마지막 세일을 보러 온 기분”이라며 “먹을 것은 거의 없고 생활용품만 남아 있어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해 보인다”고 말했다. 박모씨(34)는 “예전에는 아이들이 시식 코너를 돌고 장난감 코너에서 뛰어다녔는데 오늘은 그런 분위기를 찾기 어렵다”며 “장례식장에 온 것처럼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안동점은 오랫동안 지역 주민들이 장을 보고 외식을 하거나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복합 생활공간 역할을 해왔다. 인근 주민들에게는 “홈플러스 앞에서 만나자”는 말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익숙한 장소였다. 매대가 하나둘 비어 가는 모습에 할인 상품을 고르던 고객들 사이에서도 아쉬움 섞인 말이 이어졌다.
회생·파산 갈림길 선 홈플러스
홈플러스는 지난해 3월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해 같은 날 법원의 관리를 받기 시작했다. 이후 납품대금 회수를 우려한 협력업체들이 공급을 줄이면서 식품을 중심으로 상품 수급이 흔들렸다.홈플러스는 대형마트 126개를 67개 핵심 점포로 재편하고, 슈퍼마켓 사업부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지난 5월 하림그룹 계열 NS쇼핑에 1206억원에 매각했다. 자연 퇴사와 희망퇴직 등을 거치며 인력도 회생 신청 당시보다 약 50% 줄였다. 홈플러스는 이 같은 구조조정으로 회생 신청 직전과 비교해 각종 비용을 약 1조2000억원 절감했다고 주장했다.
삼일회계법인이 지난해 6월 산정한 홈플러스의 계속기업가치는 약 2조5058억원으로, 청산가치 약 3조6816억원보다 1조1758억원가량 낮았다. 현 상태에서는 회사를 계속 운영하는 것보다 점포와 부동산 등 자산을 처분하는 편이 채권자에게 유리하다는 의미다.
홈플러스는 오는 20일까지 즉시항고할 수 있다. 이 기간 자금 조달 계획을 제시하지 못하거나 항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파산·청산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보령·안동=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