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민의 HR이노베이션] 달은 왜 별을 시기하는가
2026년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참담한 성적표 뒤에는 한국 축구를 지탱해 온 리더십 시스템의 균열이 자리 잡고 있었다. 주요 선수와의 불화설, 결정적인 순간의 에이스 배제, 그리고 감독의 불명예스러운 사퇴까지. 대중이 느낀 실망과 분노는 단순한 경기력 저하를 넘어, 조직 내 권력 역학이 붕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조직행동론의 렌즈로 이 파국을 들여다보면, 극한의 압박 상황에서 공식 리더와 비공식 리더가 충돌할 때 나타나는 파괴적인 인간 심리의 민낯이 드러난다.

비공식 리더가 키운 '지휘 위협'

챗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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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에는 직함이 없어도 탁월한 역량과 매력으로 구성원의 신뢰를 얻는 ‘비공식 리더’가 존재한다. 해외파 출신으로 주장을 맡기도 했던 한 선수는 대표팀 내에서 감독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한 강력한 비공식 리더였다. 문제는 이 같은 비공식 리더의 존재감이 커질수록 공식 리더가 느끼는 ‘지위 위협(status threat)’이 증폭된다는 점이다. 실력과 대중적 신뢰가 높을수록 감독의 통제력은 흔들리고, 선수단과 여론이 감독의 지시보다 한 선수의 메시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구도가 형성된다. 이때 공식 리더는 관계적 안전감이 무너졌다고 느끼고 갈등의 소용돌이로 빠져든다.

조직행동 연구에 따르면, 지위 위협을 느낀 공식 리더의 방어기제는 주로 두 가지 극단으로 나타난다. 첫째는 공격성이다. 성적 부진으로 벼랑 끝에 몰린 리더는 취약해진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구성원에게 강한 질책이나 억압적 행동을 보일 수 있다. 멕시코전 패배 이후 라커룸에서 전술적 의견을 낸 비공식 리더에게 감독이 강하게 반응했다는 일화는, 조율을 위한 제안이 ‘선 넘은 도전’으로 받아들여진 전형적인 사례다. 이성적 판단보다 통제권을 증명하려는 충동이 앞선 것으로 해석된다.

둘째는 은밀한 세력 균형 전략이다. 하향식 질투를 느낀 리더는 비공식 리더를 직접 배제하기보다, 팀 내 다른 유능한 인재를 포섭해 영향력을 분산시키려고 한다. 중요한 경기에서 에이스를 선발에서 제외하고 차세대 스타를 중용한 결정은, 비공식 리더에 맞서기 위한 보상적 행동이자 동맹 형성 시도였을 가능성이 크다. 공식 리더로서의 지위를 지키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던 셈이다.

정치적 논쟁보단 본업 몰입이 먼저

그러나 이 비극의 책임을 한쪽에만 돌릴 수는 없다. 비공식 리더에게도 ‘상향관리’의 지혜가 필요하다. 아무리 동기가 순수하고 헌신적이라고 해도 위기 상황에서 공식 리더의 체면과 최종 승인권을 먼저 세워주는 ‘인상관리’를 생략하면 상사의 취약한 자존감을 무의식적으로 자극할 수 있다. 대중이 원하는 것은 리더십 내부의 정치적 논쟁이 아니라 본업인 ‘승리’에 대한 몰입이다. 리더십 그룹이 수평적 소통과 수직적 통제의 균형을 잃고 감정적 방어벽을 쌓는 데 에너지를 탕진하는 사이, 팬들이 갈망하는 ‘월드컵 경쟁력’이라는 본질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번 월드컵 잔혹사는 한 감독의 독단이나 한 선수의 일탈이 아니라, 인간의 지위 위협 심리를 관리하지 못한 시스템의 실패로 읽어야 한다. 달이 별을 시기해 빛을 가리는 조직에 내일의 승리는 없다.

오승민 LG화학 인재육성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