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영 칼럼] 반도체 낙관론에 묻히면 안 된다
경제도, 정부정책도 쏠림 커져
초호황 꺾일 위험 대비해야
양준영 논설위원
초호황 꺾일 위험 대비해야
양준영 논설위원
국민 관심사도 온통 반도체다. 증시 향방은 ‘삼전닉스’ 주가 움직임에 저당 잡힌 지 오래다. 엔비디아, 마이크론 주가의 선행 지표로까지 작용해 미국 증시에 영향을 주고 있다. 국민이 삼전닉스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반도체 공화국’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삼성전자 노조가 촉발한 성과급 논란은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고, 그 여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n% 성과급’ 요구가 확산하고 초과 이윤 분배 논란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800조원 규모의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 계획은 산업정책 등 경제 이슈를 넘어 관치 등 정치적 논란까지 불러왔다.
정부가 경제의 주력 엔진에 ‘주마가편’의 드라이브를 거는 것은 당연하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불가피한 선택과 집중 전략일 것이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부를 비롯해 재정경제부(세제), 기획예산처(재정), 교육부(인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기술), 국토교통부(부지), 기후에너지환경부(전력·용수)가 ‘범부처 총력 지원’에 나섰다. 정부의 시선이 지나치게 반도체로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울 정도다.
재경부와 예산처는 초과세수 관할권을 놓고 이견을 보이기도 했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의 시장 교란부터 집값 상승에 이르기까지 반도체가 일으킨 전방위적 파급효과를 관리하는 것도 주요 업무가 됐다.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노동계의 하투(夏鬪)가 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고용노동부는 반도체 초과이익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기업 활동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반도체 호황이 만들어낸 화려한 지표는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하지만 그 이면의 경제 현실은 딴 세상이다. 철강, 기계, 석유화학 등 전통 제조업의 온기는 식어가고 있다. 건설, 유통 등 내수 산업 부진은 장기화하고 있다. 특히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이라는 3고(高) 파고 앞에 맨몸으로 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삶은 한계에 다다랐다. 내수시장 활성화를 위한 대책을 서둘러야 할 상황이다.
과거 반도체가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할 때도 쏠림과 착시에 대한 경고 목소리가 높았다. 외환위기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이던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1990년대 중반 모두가 반도체 특수에 눈이 멀어 수년간 취약해져가는 경제구조를 방치했는데, 이것이 외환위기의 원인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지금은 반도체 수출 비중이 절반 가까이로 커졌다. 반도체에 의존하는 정부 기조는 그때와 비교해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반도체 산업의 초격차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은 국가 사활을 걸어야 하는 과제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끝난 뒤에도 안정적인 성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2, 제3의 반도체를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 반도체 초호황에 대한 확신이 커지고 있지만 한편에선 경고음도 계속 나오고 있다. 반도체 경기가 갑자기 꺾일 가능성에 정부가 전혀 대비하지 않는 것은 위험하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수치에 묻혀 낙관론에 안주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