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2038년 경북 영덕군에 대형 원전 2기가 들어선다. 2035년에는 부산 기장군에서 국내 첫 소형모듈원전(SMR)이 가동을 시작한다.
경북 영덕에 신규 대형원전…국내 첫 SMR은 부산 기장
한국수력원자력과 신규 원전 건설 부지선정평가위원회는 17일 영덕을 1.4기가와트(GW)급 대형 원전 2기 건설지로 최종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0.7GW급 SMR 1기가 들어설 부지로는 기장을 낙점했다. 신규 원전 부지가 확정되자 탈원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정부 기조가 더욱 명확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작년 초 수립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대형 원전 2기와 SMR 1기를 짓는다는 계획을 확정했다. 이후 지방자치단체들은 치열한 유치전을 벌였다. 대형 원전을 두고 영덕군과 울산 울주군이, SMR을 두고는 기장군과 경북 경주시가 격돌했다. 대형 원전 유치전에서는 주민 찬성률이 86%에 달한 영덕군이 최종 승기를 잡았다. SMR 유치전에서도 주민의 찬성 여론이 당락을 갈랐다.

신규 원전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이미 확인됐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올해 초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9명이 ‘원자력발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원전 없이는 인공지능(AI) 산업 확대로 폭발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면서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여론이 형성된 것으로 분석된다.

과거 기피 시설이던 원전을 유치하기 위해 지자체들이 총력전을 벌인 배경에는 막대한 지원금과 세수 확보를 통해 낙후된 지역 경제 숨통을 틔우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유치 지자체는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거액의 지원금을 받는다. 건설비의 2% 수준인 일회성 ‘특별 지원금’은 도로, 항만 등 지역 개발에 투입된다. 발전량을 기준으로 매년 나오는 ‘기본 지원금’과 ‘사업자 지원금’은 주민 복지와 장학 사업 등에 쓰인다.

대형 원전 2기 2038년 완공…탈원전에 '마침표'
경북 영덕에 신규 원전…부산 기장엔 국내 첫 SMR

정부가 17일 신규 원전이 들어설 부지를 확정 지은 건 ‘탈원전으로의 회귀는 없다’는 기조를 대내외에 공식화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인공지능(AI)발 전력 수요 급증과 중동 전쟁으로 빚어진 에너지 안보 위기가 ‘원전 비관론’을 돌파하는 명분이 됐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주민의 압도적 찬성 여론을 바탕으로 치열한 유치전을 벌인 것도 원전 건설을 계획대로 추진하는 원동력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규 원전, 무조건 짓는다

정부가 부지 공모 공고를 낸 지난 1월 동해안 지자체는 일제히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1.4기가와트(GW)급 대형 원전 2기를 짓는 사업에는 경북 영덕군과 울산 울주군이, 소형모듈원전(SMR) 건설 사업에는 경북 경주시와 부산 기장군이 도전장을 냈다.

대형 원전 2기 부지로 영덕군이 선정된 건 과거 건설을 추진하다가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으로 좌초된 ‘천지 원전’ 부지가 마련돼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주민 86%의 유치 찬성 여론도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경쟁지였던 울주군은 이미 확보한 용지와 전력망 등 인프라를 강점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영덕군에 비해 주민 수용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 최초의 SMR 유치전도 뜨거웠다. 최종적으로 기장군 주민의 찬성 여론이 더 높아 간발의 차로 경주를 따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출범 초기 신규 원전 건설에 회의적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 당시 “원전 프로젝트는 당장 시작해도 완공까지 최소 15년 이상이 필요해 전력 수급 대안으로 비현실적”이라고 언급했다.

기류가 바뀐 건 지난해 하반기 이 대통령이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거물을 만나면서다. 이들은 “글로벌 AI 전쟁에서 한국이 부족한 건 에너지”라고 지적했다.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로는 AI 데이터센터가 요구하는 막대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동 전쟁에 따른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화석연료 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우리 경제의 약점을 드러냈고 ‘기저 전원’으로서 원전 가치를 증명하는 계기가 됐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탈원전 정책으로 고사 위기에 처한 경남 창원시 일대 중견·중소 협력업체도 완전히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가동까지 가시밭길 예고

착공과 정상 가동까지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우선 동해안 송전망 부족 문제가 걸림돌로 지적된다. 동해안 민간 화력발전소는 송전망이 부족해 수요가 밀집한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가동률이 20%대에 불과해 수익이 악화했다. 울진에서 건설 중인 신한울 3·4호기가 준공된 뒤부터는 원전도 비슷한 상황에 처할 것이란 우려가 많다. 새 원전이 지어지기 전까지 동해안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내는 송전망을 최대한 확충해야 하지만 전선이 지나는 지역 주민의 반대를 극복해야 한다.

전력 생산지 근처에 데이터센터를 지으면 전력요금 할인 등 인센티브를 주는 분산에너지 정책을 하루빨리 안착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 영구 처분장 확보도 문제다. ‘화장실(방폐장) 없이 아파트(원전)를 더 짓는’ 과거 방식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원전 전체는 영구 처분장 없이 부지 내 임시 수조에 폐기물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 고준위 방폐장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부지를 선정하고 지역 주민 동의를 얻는 험난한 과정을 또 거쳐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방폐장 부지 확보에 정부 역량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리안/김대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