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5년 만에 250억달러(약 37조8500억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다. ‘현금 부자’ 엔비디아가 외부 자본을 조달한 것은 자본 비용을 낮추고 인공지능(AI) 생태계 투자용 실탄을 미리 확보하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현금 부자' 엔비디아가 250억달러 차입 나선 이유는

◇빅테크 채권 조달에 동참

엔비디아는 15일(현지시간) 미국 증권당국에 제출한 서류를 통해 7종의 채권을 발행했다고 발표했다. 만기는 2년부터 30년으로 나뉜다. 30년 만기 채권 금리는 같은 기간 미국채보다 0.5%포인트 높게 책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는 발행 전 별도 설명회를 열지 않았는데도 모집액의 세 배가 넘는 850억달러 주문이 몰렸다. 신용등급이 AA(S&P글로벌·무디스)로 높고, 다른 빅테크와 비교해 AI 데이터센터를 직접 짓지 않아서 위험이 작다는 평가를 받은 덕분이다. 엔비디아는 “자금을 기존 부채 상환·차환을 포함한 일반적인 기업 운영자금에 쓰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엔비디아도 빅테크의 회사채 발행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알파벳(구글 모회사)은 지난해부터 미국 유럽 일본 등 6개 채권시장에서 총 895억달러, 아마존은 824억달러를 조달했다. 메타와 오라클은 각각 미국 시장에서만 550억달러, 507억달러어치 채권을 발행했다.

◇장기 자본 확보가 의도

엔비디아의 회사채 발행이 다른 빅테크와 다른 점도 있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이 당장 데이터센터 건설을 위해 돈을 빌렸다면, 엔비디아의 차입은 싼값에 장기적으로 자본을 확보해두기 위한 전략이라는 평가다.

엔비디아는 2027회계연도(2026년 2월~2027년 1월)에 2000억달러 이상의 영업현금흐름을 창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 1분기 순이익은 583억달러(약 88조2000억원)로 전 분기(187억달러) 대비 세 배 이상으로 늘었다.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직접 제조하는 대신 설계를 맡기 때문에 설비투자(CAPEX)도 많지 않다. 당장 현금이 부족한 기업은 아니라는 얘기다.

엔비디아는 올해 잉여현금흐름의 절반을 주주에게 돌려줄 계획이다. 올해 2~4월 193억달러어치의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한 엔비디아는 5월 18일 800억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결정했다. 배당금도 주당 0.01달러에서 0.25달러로 높였다.

이 같은 주주 환원을 위해 낮은 비용으로 외부 자금을 조달하려는 게 이번 채권 발행의 배경으로 풀이된다. 엔비디아가 예고 없이 채권을 발행한 이날 30년 만기 미국채 금리는 1개월 만에 최저 수준인 연 4.925%로 떨어졌다. 미국·이란 종전 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에 전 거래일보다 0.06%포인트 하락했다. 여기에 지난 12일 S&P글로벌이 엔비디아 신용 등급을 AA-에서 AA로 상향했다. 엔비디아가 미국 국채와의 금리 차(스프레드)를 최소화하는 최적의 타이밍을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 이유다.

◇순환 거래 우려는 커져

엔비디아는 조달 자금을 AI 생태계 투자 확대에도 쓸 것으로 전망된다. 엔비디아는 2~4월 오픈AI와 앤스로픽 등에 185억달러를 투자했다. 두 회사에 예정된 투자 금액은 이보다 200억달러 이상 더 남아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3월 ‘GTC 2026’에서 “현금은 엔비디아의 성장과 AI 생태계 투자에 쓴다”고 했다. 로버트 시프먼 블룸버그 애널리스트는 “엔비디아는 장기 채권 발행을 통해 현재의 신용등급을 낮추지 않고 전략적 AI 파트너십 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AI 생태계 투자에 외부 자금까지 동원되며 ‘순환 거래’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톰 머피 컬럼비아스레드니들인베스트먼트 글로벌 채권책임자는 “금융 보증 사례가 늘어나고 AI 기업 간 상호 의존성이 커지면서 채권 투자자 사이에서는 위험이 집중되는 데 대한 걱정이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리콘밸리=김인엽 특파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