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머스크가 멈추지 않는 이유
김인엽 실리콘밸리 특파원
비전 좇은 머스크의 24년
그런 면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확실한 창업가다. 2002년 스페이스X를 세울 때부터 인류를 다른 행성에 보내겠다는 명확한 목표를 제시했고, 지난 24년간 수차례 파산 위기에도 이를 지켜냈다. 머스크는 2016년 국제항공학회(ICA) 연설에서 “자금 조달에 대한 구상이 없다”고 거침없이 말했다. 우주 개척이 목표일 뿐 우주산업 수익화 자체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이익을 극대화하고 화성에는 가지 않으려는 투자자에게 회사가 인수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1월 베이조스는 인공지능(AI)으로 제조업 병목을 해결하기 위해 스타트업인 프로메테우스를 설립했다. 순자산이 2790억달러(약 420조원)에 달하는 베이조스는 아마존 CEO직을 내려놓은지 4년 만에 현업에 복귀했다. 이 회사도 인류의 우주 진출을 가속화하는 게 목적이다. 그가 2000년 설립한 우주기업 블루오리진이 우주선 설계·제조에 오랜 시간이 걸리자 살아생전 우주 진출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세 번째 창업에 나선 것이다.
한국에도 창업 DNA 흘러
머스크와 베이조스 같은 천재만 이런 시도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실리콘밸리에는 미션과 창업을 동의어로 취급하는 문화적 토양이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이곳 대표 액셀러레이터인 와이컴비네이터는 매 기수를 뽑을 때마다 ‘스타트업을 위한 요청’(request for startups)을 공표한다. ‘암 종식’ ‘과학 발전을 위한 AI 모델’ ‘모두를 위한 개인 AI 비서’ 같은 원대한 목표에 도전할 것을 스타트업에 장려하기 위해서다.한국에도 이병철 삼성그룹,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같은 거인들의 창업정신이 DNA에 흐른다. 1990년대 네이버 다음 등 정보기술(IT) 열풍, 2010년대 배달의민족 토스 같은 플랫폼 창업도 있었다. 다만 이들의 창업이 인류의 목적지를 새로 그리는 수준은 아니었다.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후발 산업국에서 추격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다르다. 반도체, 조선, 로보틱스 등 많은 분야에서 한국 기술은 선두를 달리고 있다. 반도체 수출 등을 통해 국부펀드를 조성할 정도의 자본도 마련했다. 인류를 전인미답 영역으로 이끌기 위한 ‘위대한 창업’을 언제까지 실리콘밸리의 전유물로 둬야 할까. 한국에도 이제 대담한 도전을 위해 자신감을 가져도 될 만한 분위기가 조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