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허제홍 "이젠 가격보다 수명이 더 중요…배터리 산업 패러다임 바뀐다"
허제홍 엘앤에프 대표
자율차·휴머노이드 24시간 작동
글로벌 빅테크, 내구성을 더 중시
올 판매량 최소 20% 확대 목표
적자 고리 끊고 흑자 전환할 것
자율차·휴머노이드 24시간 작동
글로벌 빅테크, 내구성을 더 중시
올 판매량 최소 20% 확대 목표
적자 고리 끊고 흑자 전환할 것
이 기사는 6월12일 오전에 한국경제신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프리미엄9'에 게재됐습니다. '한경 프리미엄9'에 오시면 더 많은 투자 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대구 지하철 2호선의 성서산업단지역은 ‘엘앤에프역’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대구를 대표하는 배터리 소재 기업의 위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글로벌 무대로 눈을 돌리면 엘앤에프를 둘러싼 환경은 녹록지 않다. 가성비에 혁신 기술까지 완비한 중국 기업들이 세계 경쟁사를 압도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말 최고경영자(CEO)로 경영 현장에 복귀한 허제홍 엘앤에프 대표는 지난 12일 대구 공장에서 한 인터뷰에서 “중국과 충분히 겨룰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소비자에게 성큼 다가온 자율주행자동차와 휴머노이드 로봇이 배터리산업의 진정한 승부처가 될 것”이라며 “이제 본게임이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허 대표는 엘앤에프 경영권을 가진 새로닉스 최대주주(21%)다. 범GS가(家) 기업인으로, GS그룹 창업주인 허만정 명예회장의 증손자다. 다음은 허 대표와의 일문일답.
▷최근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배터리 소재와 부품을 구매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최근 들어 배터리 스펙(사양)을 바꾸고 있습니다. 과거엔 가격을 얼마나 낮출 수 있는지, 한 번 충전하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가 중요했습니다. 지금은 내구성과 수명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바뀌었습니까.
“자율주행 로보택시와 휴머노이드 로봇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됩니다. 자율주행차와 휴머노이드는 24시간 움직입니다. 방전과 충전이 거듭되면 배터리 노화 속도가 빨라지죠. 특정한 시간에 쓰는 전기차나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에선 중요하지 않던 사양입니다. 글로벌 배터리업계의 연구개발(R&D) 무게중심이 가격과 용량에서 내구성과 수명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는 어떤가요.
“LFP 배터리는 기본적으로 무겁기 때문에 로봇과 자율주행차에 쓰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하이니켈 삼원계 원통형 배터리는 작은 크기로 강한 힘을 오랫동안 낼 수 있어요. 부피당 에너지 밀도가 높은 하이니켈 삼원계 배터리 개발에 글로벌 배터리 셀 제조업체와 완성차업체들이 자금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엘앤에프는 이들 기업과 차세대 배터리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LFP 배터리 시장은 포기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재생에너지 수요로 특히 미국에서 ESS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가성비 높은 LFP 배터리가 그동안 ESS 시장 표준으로 안착했는데, 최근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비중국산 배터리를 찾는 기업이 크게 늘었습니다. 이런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엘앤에프는 지난달 대구에 LFP 배터리 공장을 완공했고, 오는 8월 양산을 시작합니다.”
▷가격 경쟁력을 갖출 방법이 있습니까.
“중국은 인건비와 원재료가 한국에 비해 굉장히 저렴해요. 엘앤에프는 혁신 기술로 제품값을 낮추려고 합니다. 공정 단계 축소로 해법을 찾고 있습니다. 중국 기업은 양극재 제조를 위해 3단계 공정을 거치는데, 우리는 두 단계로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어요. 공정 단계를 없애면 생산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습니다.”
▷배터리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은 얼마나 길어질까요.
“최근 흐름이 조심스럽게 바뀌고 있습니다. 배터리 전방 산업 주요 기업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배터리 소재 업체는 수주한 물량 등을 고려해 2~3년 후 상황을 볼 수 있습니다. 하이니켈 삼원계 배터리는 2029년 뚜렷한 회복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국내 LFP 시장도 수요가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고객의 주문 물량을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해야 할 정도입니다.”
▷수요가 다시 늘어나면 제때 공급할 수 있습니까.
“자금을 선제 조달해 생산 설비를 확충했습니다. 삼원계 배터리 양극재 20만t과 LFP 양극재 6만t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현시점에서 (설비 확충을 위해) 대규모 자본을 조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국은 양극재 전 단계인 전구체도 중국산을 배제하려고 합니다.
“엘앤에프는 국내 기업 두 곳, 해외 기업 세 곳과 각각 LFP 전구체를 공동 개발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전구체 공정을 생략하는 ‘무전구체 기술’을 개발하려고 합니다. 배터리용 니켈을 생산하는 LS그룹과 합작회사를 설립해 원광 제련, 전구체 제조, 양극재 생산 등으로 이어지는 수직 계열화를 완성할 계획입니다. 내년 초까지 LS그룹과 합작해 LFP 전구체를 생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 양극재 공장 설립 계획은 진행 중입니까.
“국내에 생산 설비를 먼저 구축한 후 해외로 나간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오는 8월부터 본격 가동되는 국내 LFP 배터리 양극재 공장에서 흑자가 나면 이 설비를 미국으로 옮기려고 합니다.”
▷최근 음극재 사업을 중단했습니다. 이유가 궁금합니다.
“선택과 집중을 위한 결단입니다. 캐즘이라는 혹한기를 돌파하려면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에 화력을 집중해야 합니다. 새로운 시장인 음극재에 인력과 자본을 분산하는 대신 글로벌 톱티어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양극재 기술에 전사 역량을 쏟아붓겠습니다.”
▷올해와 내년 실적은 어떻게 예상합니까.
“매출은 리튬 등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매출보다는 판매량을 더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올해 판매량은 지난해 대비 최소 20% 이상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재무적으로는 올해 적자 고리를 끊고 흑자로 전환할 계획입니다. 내년에도 추가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 허제홍 엘앤에프 대표는
△1976년 서울 출생
△대구 경신고, 연세대 화학공학과, 미국 USC 대학원 졸업
△2001년 LG필립스LCD 연구소 연구원
△2003년 엘앤에프 연구소 책임연구원
△2010년 새로닉스 대표
△2018년 엘앤에프 대표
△2021년 엘앤에프 이사회 의장
△2025년 엘앤에프 대표
대구=성상훈/안시욱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