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효 수원삼성블루윙즈 감독이 경기 화성 반월동 수원삼성 클럽하우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솔 기자
이정효 수원삼성블루윙즈 감독이 경기 화성 반월동 수원삼성 클럽하우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솔 기자
바야흐로 월드컵이 개막했다. 그런데 올 시즌 국내 축구 팬들의 심장을 가장 뜨겁게 달군 건 국가대표팀이 아니다. K리그, 그것도 2부 리그다. 이 이례적인 관심의 중심에 수원삼성블루윙즈의 이정효 감독이 있다.

그는 작년까지 광주FC를 이끌며 한국 축구계의 판도를 바꿨다. 재정적으로 열세인 시민구단을 K리그2 우승과 승격으로 이끌었고, 승격 직후에는 K리그1 3위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썼다. 화끈한 공격 축구와 감독의 스타성은 K리그를 보지 않던 이들까지 경기장으로 끌어들였다.

하지만 그의 선수 시절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부산에서 12년을 뛴 원클럽맨이지만 국가대표와는 인연이 없었다. 대학과 프로 입단 동기인 안정환이 한국 축구 최고의 스타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의 한계를 누구보다 절실히 마주해야 했고, 그의 선수 생활엔 늘 아쉬움이 남았다. 최근 출간한 에세이 <정답은 있다>에는 좌절을 견디며 자신만의 답을 찾아온 그의 신념과 태도가 담겼다. 한 축구인의 기록이지만, 결국 우리 모두의 일과 삶에 관한 이야기다. 경기 화성시 수원삼성블루윙즈 클럽하우스에서 이 감독을 만났다.
이정효 수원삼성블루윙즈 감독이 경기 화성시 구단 클럽하우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솔 기자
이정효 수원삼성블루윙즈 감독이 경기 화성시 구단 클럽하우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솔 기자
▷첫 에세이를 펴냈습니다.

“비주류로 살아온 제 경험을 털어놔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묵묵히 실력을 쌓고도 앞이 보이지 않아 힘든 분, 축구인뿐 아니라 사회 초년생과 벽에 부딪힌 직장인들에게 때를 기다리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책에 친구인 안정환 씨와의 일화가 나옵니다. 나보다 잘났다고 느끼는 친구라면 질투와 열등감으로 멀어지기 쉬운데 두 분은 돈독한 우정을 이어오고 있네요.

“그냥 인정하면 됩니다. 남의 뛰어난 재능을 부러워할 수 있지만 모두 가질 수는 없잖아요. 억지로 비교하면 친구의 단점만 보게 되지만, 인정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진심으로 응원하게 됩니다. 그에겐 없는 내 장점도 찾아보게 되고요.”

▷‘하고 싶은 축구가 있지만 국내엔 그것을 비슷하게라도 구사하는 감독도 팀도 없었다’고 했는데, 그건 어떤 축구였나요?

“수동적이었던 선수 시절의 저를 돌아봤어요. 한국 선수들은 대개 지도자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거든요. 이를 깨기 위해 경기 중 위치가 계속 바뀌며 스스로 판단하는 ‘포지션 파괴’를 떠올렸어요. 그러려면 수비보다 공격 축구를 해야 했죠. 팬들을 불러 모으고, 무명인 제 이름을 알리기에도 유리하다고 봤어요. 한국 사회도 방어적이잖아요. 튀거나 잘난 사람을 자제시키려 하고요. 선수 시절 억눌렸던 게 감독이 돼 터져 나온 셈입니다. ‘나 같은 선수를 만들지 말자, 능동적인 선수를 키우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들이 훗날 지도자가 되면 우리 축구도, 사회도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 것 같아요.”

▷‘안주하지 않는 선수를 만들려면 안주하지 않는 팀을 만들면 된다’ ‘반항심이 생길 겨를도 없게 잘못이 눈에 보이는 순간 지적해야 한다’ 같은 팀 빌딩 노하우가 인상적입니다.

“먼저 충분한 교감이 쌓여야 하죠. 저는 선수들과 매일 미팅하고 1년에 320일 정도를 함께 보냅니다. 그렇게 석 달, 반년 신뢰를 쌓은 뒤 피드백을 줘야 선수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어요.”

▷리더십에 관한 명언을 따로 기록해 둡니까.

“좋은 글귀를 보면 휴대폰에 저장해 둡니다. 요즘은 영화 ‘역린’으로 유명해진 <중용> 23장 구절을 식탁 앞에 붙여놓고 읽으며 하루를 시작해요.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감동을 주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절친' 안정환 질투만 했다면…" K리그 일낸 감독의 고백
▷평소 책을 많이 읽는다고 들었습니다.

“책은 항상 가방에 있어요. 이동할 때나 경기 전 선수들이 몸 풀러 나간 사이에 읽으면 몰입이 잘돼요. 최근에는 <초역 부처의 말> <쇼펜하우어 인생론> <일의 격> 같은 자기성찰적인 책을 읽었습니다. 마음에 남는 책은 두세 번 다시 읽기도 합니다.”

▷언제부터 책을 즐겨 읽었습니까.

“초등학교 때부터 위인전을 많이 읽었어요. 부모님이 늘 독서를 권했죠. 선수 시절 전지훈련을 갈 때도 항상 책이 있었어요. 특히 광개토대왕을 좋아했습니다. 한국사에서 보기 드문 정복 군주잖아요. 공격적이죠.(웃음)”

▷지도자로서 영향을 받은 책이 있다면요.

“가장 도움을 받은 건 <그릿>입니다. 일관성과 꾸준함을 다룬 책인데, 광주FC 시절엔 선수단에도 돌렸어요. 저는 기분이나 컨디션에 상관없이 팀을 위해 100%를 쏟아붓는 태도를 강조하는데 그런 생각과 맞닿아 있는 책입니다.”

▷선수들에게도 독서를 권합니까.

“어린 선수들을 모아놓고 ‘적어도 1년에 세 권은 읽었으면 좋겠다.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책을 읽는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독서는 선수의 사고력과 자아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자아가 잘 형성된 선수는 훈련 목적을 정확히 이해하고, 자신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볼 줄 압니다. 나보다 뛰어난 선수를 만나도 질시하기보다 ‘더 노력해야겠다’며 멘털을 잡죠. 반면 그렇지 못한 선수는 결과만 바라보다 쉽게 흔들립니다. 어린 선수일수록 책, 특히 역사책을 많이 읽으면 좋겠어요.”

▷‘감독만큼 나에게 맞는 직업이 세상에 있을까 싶다’라고 썼는데, 어떤 면에서 ‘천직’이라고 느낍니까.

“저는 늘 선수들이 어떻게 해야 더 성장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쓴소리하는 것도 애정이 있어서예요. 퇴근길에도 ‘내일은 어떤 조언을 해줄까’ 고민하다가 영상을 편집해 보내주곤 합니다. 어떻게든 선수를 키우려 안달 난 제 모습을 볼 때 ‘진짜 천직이구나’ 싶습니다. 선수 시절에도 방황하는 동료를 붙잡아주곤 했는데, 당시엔 오지랖처럼 보였을 수 있어요. 그런데 감독은 그게 역할이잖아요. 마음껏 오지랖을 떨 수 있어서 좋습니다.(웃음)”

▷선수 때 아쉬움이 지도자로서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나요?

“상당히 유리하죠. 저는 부족한 선수였기에 ‘누군가 축구 원리를 디테일하게 가르쳐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늘 있었어요. 그 결핍이 선수들을 세심하게 가르치는 원동력이 됐죠. 지도자를 해보니 자기가 잘하는 사람과 코칭을 잘하는 사람이 따로 있더라고요.”

▷재능이 없다고 좌절하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다른 길을 찾기에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수 있습니다. 축구만 해도 선수 외에 분석관, 피지컬 코치 등 다양한 길이 있으니까요. 정말 아니다 싶을 땐 과감히 다른 분야를 찾는 것도 방법입니다. 다만 자신의 재능을 아직 모를 때는 버티는 힘도 필요해요. 대부분 노력은 하지만 버티지 못하거든요. 저 역시 버티고 버틴 끝에 기회를 얻었습니다. 타인이나 환경에 떠밀려 그만두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스스로 끝을 내고 싶은 게 아니라면 적어도 남 때문에 포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수원삼성 감독으로 부임한 뒤 반년이 흘렀습니다.

“팀 문화가 바뀌고 있는 걸 느껴요. 예전에는 컨디션이 안 좋으면 개인 감정이 앞서기도 했지만, 요즘은 선수들 스스로 ‘내가 10m를 안 뛰면 동료가 20m를 더 뛰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어요. 선수들이 잘 따라와 주고 있습니다.”

▷구단을 벗어난 지도자 이정효의 꿈도 있습니까.

“언젠가 해외 무대에서 감독을 해보고 싶습니다. 당장 빅리그는 어렵겠지만, 동유럽이나 호주 같은 곳에서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해외 선수들을 지도해도 내 축구가 통할 수 있을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보기도 합니다.”

화성=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