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의 공격적인 자금 수혈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올해 자금 조달 규모가 1조달러를 넘어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회사채, 유상증자, 사모대출 등 다양한 방식의 자금 모집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런 가운데 오라클은 기업 체력 대비 과도한 부채를 지며 회사채가 투기등급으로 거래되는 등 과열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데이터센터에 3조달러 필요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2025~2028년 4년간 데이터센터 건설에만 3조달러가 들 것으로 전망했다. 이 중 이미 집행된 금액은 6000억달러를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술적으로 올해부터 매년 8000억달러 이상이 데이터센터에 투자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공지능(AI) 경쟁 과정에서 관련 스타트업에 대한 인수합병(M&A) 시장이 과열되고 있다는 점도 빅테크의 자금 수요를 키우는 요인이다. 해당 자금까지 합하면 빅테크의 올해 AI 관련 투자 규모는 1조달러를 가볍게 넘길 것으로 월가에서는 예상한다. 지금까지 모집한 유상증자와 회사채 발행 규모에 더해 스페이스X 등의 상장을 통해 총 6440억달러의 자금 수혈이 확정된 가운데 4000억달러에 가까운 돈이 추가로 빅테크로 향할 수 있다는 의미다.
대규모 자금 수요를 맞추기 위해 월가와 기술기업은 금융공학 기법을 총동원하고 있다. 알파벳은 최근 AI 인프라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850억달러의 이례적인 대규모 유상증자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알파벳은 올해 미국 달러뿐 아니라 캐나다달러, 엔화, 유로화, 스위스프랑, 파운드화 채권까지 발행했다. 특히 100년 만기 파운드화 채권을 발행해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아마존 역시 올해 미국, 유럽, 스위스 시장에 이어 캐나다달러 채권 발행에 나섰다.
회사채 발행이 한계에 달한 오라클은 전환사채(CB)시장에 손을 뻗어 50억달러를 수혈했다.
◇리스크 확대 조짐
빅테크의 AI 투자에 호응할 자금은 현재 시장에 충분한 것으로 관측된다. 12일 상장을 앞둔 스페이스X에 9일(현지시간)까지 2500억달러의 자금이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750억달러로 예정된 공모 규모의 3.5배 수준이다.
하지만 빅테크 사이에는 서로 자금을 빌려주거나 투자하는 ‘순환금융’이 가시화되고 있다. 구글은 지난해 앤스로픽에 텐서처리장치(TPU)를 장기 공급하기로 계약을 맺고, 올해 4월에는 100억달러를 앤스로픽에 투자했다. 엔비디아도 오픈AI 등과 비슷한 구조의 계약을 맺고 있다. 관련 기업이 서로 투자하고 제품을 구매하는 등 금융 조달을 지원하는 관계가 반복되면서 산업 전반의 상호 의존도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월가에서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구조가 시스템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정 기업의 투자 계획이 차질을 빚거나 자금 조달에 문제가 생길 경우 다른 기업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지난해 빅테크와 AI 기업 간 투자 및 파트너십 구조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일부 거래가 기업 간 상호 부양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기 위해서다.
빅테크의 과도한 자본 지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메타 등의 자본지출은 올해 말 영업현금흐름의 100% 수준에 이를 전망이다. 벌어들인 돈을 고스란히 설비 투자에 사용한다는 의미로, 2023년 40%에서 두 배 이상으로 뛴 수치다. BoA는 해당 기업의 현금 창출 능력이 정체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장 약한 고리는 오라클이다.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AI 클라우드 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해 오라클은 작년 9월 이후 430억달러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 자금으로 오픈AI 등에 임대할 데이터센터를 짓는다는 계획이다. 앞으로도 수백억달러의 현금을 투입할 예정이지만 벌써 채권시장에서는 오라클의 회사채가 투기등급으로 거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