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마지노선인 1550원을 넘나들며 요동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3월 후 17년3개월 만의 최고 수준이다. 어제 환율은 1555.2원에 거래를 시작했다가 당국의 강력한 구두개입에 1535원으로 내려앉았다. 지난 6일 야간 거래에서는 장중 1561.5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우려스러운 건 올해 기록적인 경상수지 흑자 행진에도 환율 불안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점이다. 지난 1~4월 누적 경상수지 흑자는 1026억7000만달러에 달했지만 원화 약세는 오히려 심화하고 있다. 지난 7일로 100일째를 맞은 미국·이란 전쟁의 장기화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이어지면서 원화 가치는 상대적으로 힘을 잃고 있다. 여기에 외국인 투자자의 리밸런싱에 따른 국내 주식 순매도 흐름도 뚜렷하다.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서 수출 기업들마저 환전을 미루는 상황이다.

고환율은 수출 기업의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긍정 효과도 낸다. 하지만 지금 같은 고유가 상황과 금리 인상 사이클 초입 국면에선 사정이 다르다. 원자재와 에너지 수입 가격을 끌어올려 기업의 생산 원가 부담이 커지고, 이는 결국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실질 구매력 감소와 전반적인 경기 위축의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과 중소기업에 돌아간다.

원화 약세를 해결할 마땅한 단기 해법이 없다는 게 문제다. 환율은 각국 통화 정책과 금리, 국제 자금 흐름, 투자심리 등 수많은 변수가 서로 얽혀 움직인다. 여기에 미·중 패권 경쟁과 글로벌 공급망 블록화 등 지정학 변수까지 더해지며 환율 변동성은 더 커지고 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순 없다. 환율 수준 자체보다 급격한 변동성을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정부는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줘서는 안 된다. 외환당국이 고환율을 사실상 용인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면 투기 수요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근본 해법은 경제 기초체력을 키우는 것이다.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 경제 구조를 만드는 게 가장 강력한 환율 안정 대책이다. 1%대 잠재성장률을 반등시킬 구조개혁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