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실 집결한 2030 >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책임 규명을 요구하는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사흘째 이어진 7일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2030세대를 중심으로 모인 시민들이 재선거를 주장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문경덕 기자
< 잠실 집결한 2030 >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책임 규명을 요구하는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사흘째 이어진 7일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2030세대를 중심으로 모인 시민들이 재선거를 주장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문경덕 기자
6·3 지방선거에서 일부 투표소의 투표 일시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자 2030세대를 중심으로 선거 관리에 대한 불신이 확산하고 있다. 서울 잠실 투·개표소에서 시작된 대규모 집단행동은 전국 주요 선거관리위원회 청사에 이어 대학가로도 확산하는 모습이다.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부정선거’ 대신 ‘재선거’ 구호

부실 선거에 분노한 2030 "참정권 침해 당해…재선거해야"
서울시 실시간 도시 데이터에 따르면 7일 오후 8시 기준 올림픽공원 실시간 인구는 약 2만8000명~3만명으로 집계됐다. 이날 올림픽공원에서는 하이브가 주최하는 콘서트도 열려 집회 참가자와 K팝 팬, 일반 시민이 뒤섞인 모습이었다. 전날 오후 10시 기준 경찰 비공식 추산 3만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대는 밤사이 줄었다가 이날 오전부터 다시 증가했다.

잠실 인근 거주민이 초교생 자녀와 함께 가족 단위로 참가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부인, 초교생 자녀와 함께 집회에 참가한 방배동 주민 최모씨(45)는 “제대로 된 진상 규명과 조사를 요구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며 “정치 참여나 국민의 기본권은 교과서에서만 보던 내용이었는데 최근 이런 논란이 불거져 아이에게 현장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시위대 내부에서는 부정선거론과 거리를 두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잠실7동 제2투표소 앞에서 투표함 반출을 저지하던 초기 시위와는 달라진 양상이다. 자원봉사자들은 성조기 사용을 자제하고 ‘부정선거’ 대신 ‘재선거’를 핵심 구호로 내세워 달라고 안내했다. 실제 현장 곳곳에서는 태극기와 ‘재선거’가 적힌 스케치북을 든 시민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이념 대립으로 논란이 번지는 것을 경계하면서 참정권 침해와 선거관리 부실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시위 방향성을 관리하는 모습이다.

◇2030이 절반…대학가로 확산

이번 시위에는 2030세대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이날 올림픽공원을 찾은 방문객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연령대는 20대로 전체의 34.2%를 차지했다. 30대도 23.4%에 달해 전체의 절반 이상이 2030세대였다. A씨(28·잠실동)는 “공정성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에 개표소 현장에 왔다”며 “SNS를 통해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분노가 2030 사이에서 급속하게 퍼진 것 같다”고 했다.

이들은 특정 정당 지지 여부와 별개로 선거 절차의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학생 남모씨(20·응암동)는 “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혼란은 민주주의 신뢰를 훼손하는 문제”라며 “선관위가 책임지지 못할 거면 해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를 비판하는 의견도 있었다. 홍모씨(19·강남구 신사동)는 “대학을 해외로 가야 하는데 고환율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워질 것 같다”며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기업이 올린 주가를 갖고 자화자찬만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발 움직임은 대학가로도 확산하는 분위기다. 서울과 부산, 대전 등 주요 대학에서는 선거관리 부실 논란 진상 규명과 책임 있는 해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이 잇달아 게시됐다. 100여 개 대학 총학생회 연대체인 전국총학생회협의회를 시작으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서강대 등 수도권 주요 대학과 대전·부산 지역 대학 총학생회가 시국선언문 및 입장문을 발표했다.

총학생회 차원의 공식 성명뿐 아니라 학생 개인이 작성한 대자보도 교내 곳곳에 붙고 있다. 서울대 수리과학부 22학번이라고 밝힌 제모씨는 ‘개인의 참정권이 부정되고 좌우 정파 싸움으로 번졌다. 얼마나 많은 사회적, 행정적 낭비인가’라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였다.

◇선관위 고의성 입증이 관건

대검찰청은 이날 이재명 대통령의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한 검찰·경찰 합동수사본부(합수본) 구성 지시에 대해 “국민의 참정권 행사에 지장이 초래된 사안에 대해 신속히 검경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하고 경찰과 긴밀히 협력해 국민적 의혹을 엄정히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에는 시민단체 등이 선관위 간부들을 직무 유기 혐의로 고발한 사건이 접수돼 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광역범죄수사대는 고발인 조사에 들어갈 예정이었는데, 합수본 체제 아래에서 수사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법조계에서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법적 책임을 물으려면 선관위 관계자들의 고의성을 입증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수사 과정에서 선관위 관계자가 유권자의 투표를 방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투표용지를 적게 인쇄했다는 사실이 입증돼야만 직무 유기 혐의로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연수/임민규 기자 coinciden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