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젠지 사회주의
인공지능(AI) 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고물가 공포는 국경을 넘어 Z세대(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출생)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번듯한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드는데 주거비와 식비는 빠르게 치솟는다. 지표상 경제는 호황이라지만 청년이 체감하는 삶은 황량한 사막과 같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누적되면서 청년들은 거대 담론보다는 당장 내 주머니 사정을 해결해줄 극단적 실용주의와 배타적 이익 추구로 돌아서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이런 흐름을 ‘젠지(Gen-Z) 사회주의’라고 이름 붙였다. 청년들은 이념적 유토피아가 아니라 “내 집세를 내리고, 일자리를 지켜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민주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올해 초 취임한 조란 맘다니 미국 뉴욕시장이 주택 임대료 동결과 무상 보육 등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워 청년층 표심을 파고든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영국의 맘다니’로 불리는 잭 폴란스키 녹색당 대표, 케이티 윌슨 미국 시애틀시장 등도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는 청년층이 중심이 된 시위도 잇따르고 있다. 14억 인구 대국 인도에서는 대법원장이 미취업 청년을 바퀴벌레에 비유하자 Z세대가 ‘바퀴벌레국민당(CJP)’이라는 온라인 조직을 만들어 결집했다. CJP는 인스타그램 팔로어 2200만 명을 모았다. 최근 수도 뉴델리에서 바퀴벌레 가면을 쓴 시위대가 첫 거리 투쟁까지 벌였다. 앞서 방글라데시와 네팔에서는 Z세대가 주도한 반정부 시위가 정치 지형을 흔들기도 했다.

대규모 시위에까지 나선 청년들의 절박함은 이해할 만하다. 세계적인 젠지의 불만 표출은 청년 실업과 기회 박탈 문제가 임계점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각국 정부는 청년 일자리와 주거 안정책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표를 얻기 위해 당장의 달콤한 약속만 남발하는 포퓰리즘으로 흘러가서는 곤란하다. 이코노미스트는 인위적인 임대료 규제, AI 제한 등은 장기적으로 집세 상승과 국가 경쟁력 하락이라는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단순한 퍼주기식 처방이 아니라 ‘성장 사다리’를 지켜주는 게 정부의 역할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안정락 논설위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