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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그린 죄 용서해 주세요"…밤마다 간절히 빈 남자의 최후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러시아 문제적 거장
미하일 브루벨(Mikhail Vrubel)
미하일 브루벨(Mikhail Vrubel)
가까이 다가간 사람들은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가가 계속해서 다시 그리는 인물이 악마였기 때문입니다. 그림은 보면 볼수록 섬뜩했습니다. 악마의 살갗도, 그가 쓰러져 있는 바위도, 등 뒤의 하늘도 온통 자잘한 면으로 쪼개져 마치 깨진 보석처럼 번쩍이고 있었습니다. 어떨 때는 남자가 고친 악마의 얼굴에 깊은 슬픔이 어려 있었습니다. 반면 끔찍하게 화내는 얼굴일 때도 있었습니다. 한 비평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마치 진짜 악마가 화가를 위해 직접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 같다."
러시아가 낳은 가장 비범하고 가장 불행한 화가, 미하일 브루벨(1856~1910). 훗날 거장 칸딘스키와 말레비치의 추상미술이 탄생하는 문을 연 이 남자는 러시아 현대미술의 시조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왜 악마를 그린 걸까요. 지금부터 브루벨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천사를 그리던 청년
브루벨은 1856년 러시아 시베리아의 도시 옴스크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폐결핵을 앓고 있어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병상에 누운 어머니는 아기였던 브루벨에게 종이를 오려 사람과 말, 환상 속 형상들을 만들어 보여주곤 했습니다. 그리고 브루벨이 세 살 때,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종이로 만들어주던 신비한 모양들을, 브루벨은 평생 기억 속에 간직했습니다.그의 몸은 약했지만 머리는 뛰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미켈란젤로의 그림 한 점을 본 그가 집에 돌아온 뒤 기억력만으로 거의 똑같이 그려낸 적도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한때 법 공부를 해야 했지만, 브루벨의 천직은 누가 봐도 화가. 법대를 졸업한 그는 스물네 살의 나이에 미술학교에 입학합니다.
미술학교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형태는 한 덩어리가 아니다. 작은 면(面)의 모임이다. 그렇게 그려라.” 브루벨은 이때 배운 방식을 끝까지 밀어붙였습니다. 덕분에 훗날 그의 그림은 마치 깨진 보석이나 색유리 조각을 이어 붙인 것처럼 보이게 됐습니다.
그런데 정작 천사를 그리는 브루벨의 믿음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새로 짓는 거대한 성당의 벽화를 그리는 일에 지원했지만, 교회는 그의 그림이 너무 낯설다며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가난 속에서 그는 점점 교회와 멀어졌고, 칸트 철학에 파고들며 ‘나는 진정한 예술을 만들 수 있는 천재이고, 진정한 예술은 아무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들었습니다.
악마를 그리다
1889년 서른세 살이 된 브루벨은 키이우를 떠나 모스크바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음속에 품고 있던 악마를 거대한 화폭 위에 끌어냅니다. 바위 위에 홀로 앉아 먼 곳을 바라보는 한 청년. 근육질의 몸을 지녔지만, 깍지 낀 두 손에는 왠지 힘이 없습니다. 얼굴엔 깊은 슬픔이 어려 있지요. 그의 대표작 '앉아 있는 악마'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습니다. 브루벨의 악마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뿔이 돋고 사람을 해치는 악마는 아닙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악마를 악령과 혼동한다. 하지만 내게 '악마'는 곧 '영혼'이다. 지상에서도, 천상에서도 안식을 찾지 못한 채 헤매는 인간의 정신이다." 거대한 힘을 지녔으나 외롭고, 악(惡)하지 않지만 무엇과도 화해하지 못한 채 고통받는 영혼. 그 악마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으나 이해받지 못하는 브루벨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랑이 잠재운 악마
브루벨에게도 행복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896년 어느 날, 브루벨은 한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 리허설을 관람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여가수의 목소리가 그의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쉬는 시간이 되자 브루벨은 무대 뒤로 달려가, 처음 본 그 여가수의 손에 입맞춤을 퍼부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만에 청혼했습니다. 여가수의 이름은 나데즈다 자벨라. 그녀는 잠시 망설인 뒤 청혼을 받아들였습니다. 브루벨은 훗날 말했습니다. "만약 거절당했다면, 나는 죽었을 거야."그야말로 운명적인 사랑이었습니다. 그녀를 만나고 브루벨은 인생에서 가장 환한 시기를 맞았습니다. 아내가 무대에 설 때마다 그는 객석을 지켰고, 순회공연을 할 때면 만사를 제쳐 놓고 뒤를 따라갔습니다. 아내가 노래한 한 오페라는 아흔 번도 넘게 봤습니다. 질리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는 답했습니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새로워." 그는 아내의 무대 의상과 배경을 손수 그렸고, 그녀의 모습을 몇 번이고 화폭에 담았습니다. 그는 아내를 위해 살았습니다.
1901년 기다리던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아들은 입술이 갈라진 채(구순열) 세상에 나왔지만 귀엽고 건강했습니다. 행복은 계속될 것 같았습니다.
추락
하지만 악마는 사라진 게 아니라 그저 잠들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행복의 정점에서 브루벨의 광기가 갑자기 심해지기 시작합니다. 사실 그는 오래전 매독에 걸려 있었습니다. 매독이 진행되면서 원래 불안했던 브루벨의 정신은 급격히 악화됐습니다. 전시가 시작된 뒤 전시장에서 자기 작품을 끝없이 고쳐 그린 것도 이 무렵이었습니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했고 쉴 새 없이 떠들었으며 사소한 일에도 왈칵 화를 냈습니다. 걷잡을 수 없이 상태가 나빠지면서 1902년 봄 브루벨은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합니다.
이제 창작욕과 광기는 더 이상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도 브루벨은 집착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또 고쳤습니다.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서 구원을 받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는 그의 몸과 마음을 더욱 갉아먹었습니다.
이듬해인 1906년, 쉰 살의 브루벨은 한 시인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그림을 완성할 무렵 그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시력을 잃은 것이었습니다. 밤마다 그는 병실을 기어다니며 신에게 빌었습니다. 악마를 그린 죄를 용서해 달라고요.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
1910년 겨울, 그는 병실 창문을 열고 그 앞에 오랫동안 서 있기를 반복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폐렴에 걸렸고, 생각대로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죽기 전날 그는 자신을 돌보던 이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아카데미로 갈 때가 됐다." 그러고는 향수로 몸을 닦고 정장을 갖춰 입은 뒤, 그대로 누워 눈을 감았습니다. 다음 날, 그의 관은 정말로 미술 아카데미에 놓였습니다.장례식에서 사람들은 그를 떠나보내며 말했습니다. 브루벨은 "다른 세계에서 온 사자(使者)였을지도 모른다." 그림을 보면 정말 그럴듯하게 느껴지는 말입니다. 보랏빛, 황금빛, 그리고 한밤의 짙은 푸른색. 그가 그 '다른 세계'를 그릴 때 쓴 색은, 마치 그런 색으로 이뤄진 세계를 두 눈으로 직접 봤던 것처럼 늘 한결같았거든요.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가 보는 그림은 브루벨이 처음 의도했던 그 색은 아닙니다. 브루벨은 자신의 그림이 보석처럼 영원히 빛나기를 바랐고, 그래서 물감에 청동 가루와 금가루를 섞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자 그 가루들이 산화하면서 그림은 점점 더 검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가 그린 '다른 세계'의 빛이 더 흐려지기 전에, 언젠가 한 번쯤 그 앞에 설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기사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매거진, The Art of Mikhail Vrubel, 1856–1910 (Aline Isdebsky-Pritchard 지음), Mikhail Vrubel (Mikhail Allenov 지음) 등을 참조해 작성했습니다.
지금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디트로이트 미술관 걸작전 <인상주의를 넘어: 디트로이트 미술 걸작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최근 출간된 완결편 <명화의 완성, 그때 그 사람> 표지작(피카소의 책 읽는 소녀)을 비롯해 시리즈에서 다룬 여러 거장들의 명작들을 실제로 볼 기회입니다. 한국경제신문사 인스타그램(@hankyung_bp)과 기자 인스타그램(@syoung_art)에서 관련 이벤트가 진행 중이니 놓치지 마세요.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