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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건축학개론'처럼…추억 살린 집 지으려면
[arte]이재훈의 랜드마크vs랜드마크
어린 시절 이성에 눈뜰 때 상대방의 모습과 행동, 그 모든 것이 좋아 보이듯 건축을 처음 시작하면 무조건 사람을 위해 좋은 집을 지어야 한다는 이상향을 꿈꾸게 마련이다. 영화에서도 성인이 된 서연이 제주에 집을 짓겠다고 찾아왔을 때, 건축가 승민은 현실에선 잘 안 보이지만 이상적이라고 여겨지는 새 집을 제안한다. 양옥집, 이층집, 뾰족집, 거실이 큰 집, 마당 있는 집 등 다양한 형태를 접했지만 서연은 무엇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들어가 살 집을 완전히 새롭게 짓는다는 것은 눈에 콩깍지가 씌었던 어린 시절 동경이 없다면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 감성에 먼저 휩쓸렸던 대학생 시절 서연과 승민은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이성적으로 서로를 대하는 관계로 변한다. 보이지 않던 현실에 눈을 뜬 두 사람은 새로 디자인한 집의 모형을 좋아하지 않는다. 결국 제주도에 남겨진 옛날 집의 추억을 살리는 리모델링 건축에 관심을 두게 된다. 끝없이 좋은 것들로만 채워질 것 같은 젊은 날의 이상으로부터 시작한 두 사람은 살아가며 쓴맛과 단맛 등 여러 경험을 겪으면서 잔존하는 현실이 갖는 귀중한 가치를 깨달은 것 같다.
우리나라의 주택, 아파트는 지은 지 30년이 지나면 재건축이 가능하다. 영국과 프랑스는 100년이 넘은 주택도 수리해가면서 계속 사용한다. 과거 경험했던 순간을 값으로 매길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많은 이들이 새 집보다 짓는 비용이 더 들더라도 리모델링을 선택한다고 한다. 1960년대 미국 뉴욕은 개발 붐이 일면서 기존 집을 헐고 대규모 재건축 사업에 나섰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이라는 책을 통해 사람의 연속된 삶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미국 작가 제인 제이콥스는 당시 개발론자였던 로버트 모지스 뉴욕시장과 충돌하며 체포되기도 했다. 하지만 제이콥스는 뉴욕의 허름하고 낡은 주거지 속에 그들만의 활기찬 삶의 가치가 내재돼 있다고 주장하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덕에 ‘개발과 보존에 대해’라는 의미 있는 고민거리가 세상에 드러났다.
최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과 송파구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경기 성남 분당구, 경기 고양 일산신도시 등에서 재건축 열기가 뜨겁다. 건물을 헐고 완전히 새로운 아파트 단지로 조성해 미래 시대에 어울리는 주거환경을 창출하겠다는 뜻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부동산 가치로만 판단해 과거로부터의 연속된 삶이 남아있는 옛 집을 그대로 부숴버려도 괜찮은 걸까. 재건축에 대한 열망이 커 과거 흔적을 잃어가게 될지라도, 또 건물이 헐릴지라도,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 만들어진 기억과 추억만이라도 남겨질 수 있다면 그나마 위안을 얻을 것 같다. 오랜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울창해지는 은행나무, 벚나무, 메타세쿼이아 나무 숲의 풍경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기억의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이재훈 단국대 건축학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