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진 종전에 유가 급등…美패권 흔들 '호르무즈 모멘트' 되나
국제원유 시장 '이상 신호'
WTI 5월물, 6월물과 격차 최대
단기공급 부족 우려 커진 영향
英패권 꺾인 '수에즈모멘트'처럼
달러거래 균열 등 美영향력 약화
WTI 5월물, 6월물과 격차 최대
단기공급 부족 우려 커진 영향
英패권 꺾인 '수에즈모멘트'처럼
달러거래 균열 등 美영향력 약화
중동 전쟁이 예상보다 장기화하자 ‘미국판 수에즈 모멘트’가 올 것이란 전망이 확산하고 있다. 국제 유가 급등에 ‘페트로 달러’(원유 달러 거래) 균열까지 생기며 미국 위상이 흔들리고 있어서다.
◇유가, 2020년 이후 최대 폭등
근월물이 차월물 가격을 웃도는 ‘백워데이션’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이날 로이터통신은 “WTI 5월물은 장중 6월물 대비 배럴당 약 15.70달러 높은 가격에 거래되며 사상 최대 프리미엄(격차)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원유 선물은 만기가 오래 남을수록 저장비와 보험료, 금융 비용 등을 반영해 ‘콘탱고’(차월물이 근월물보다 비싼 상황)가 일반적이다.
이 같은 시장 혼란은 미국이 원한 결과가 아니다. 시장에선 ‘전쟁이 곧 끝날 수 있다’는 확신이 사라진 데 따른 반작용이란 해석이 나온다. 원유 시장 정상화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 글로벌 기업이 WTI로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것도 가격 급등의 원인으로 평가된다.
◇70년 전 굴욕 재연되나
많은 학자는 수에즈 모멘트의 직접적 원인으로 ‘경제적 압박’을 꼽는다. 당시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봉쇄로 해상 운임이 폭등했고 글로벌 경제에 충격파가 전해졌다. 영국의 독단적 군사 행동에 실망한 미국은 국제통화기금(IMF)의 영국·프랑스 지원을 막았다. 영국 패전을 예상한 투자자들은 런던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뺐고, 파운드화는 폭락해 기축통화 지위가 흔들렸다.이번 전쟁에서 미국 역시 초기에는 압도적인 공군력, 정보력, 작전능력을 과시했지만 동맹과의 균열이 드러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호르무즈해협 문제를 풀지 못한 채로 ‘출구전략’을 모색 중이다. 파와즈 게르게스 영국 런던정치경제대(LSE) 교수는 “중동 전쟁 여파가 가라앉고 나면 이미 진행 중이던 글로벌 세력 다각화 움직임이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은 중동 전쟁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데 베팅하는 분위기다. 리베카 바빈 CIBC프라이빗웰스 선임에너지트레이더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중동 상황은 긴장 완화보다 추가 확전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유가 급등세가 단기간에 그칠 것이란 의견도 있다. 한 선물 트레이더는 “종전 기대에 쇼트 포지션을 걸어놓은 물량의 손실이 커지면서 선물 매수를 통해 포지션을 청산하는 ‘쇼트 스퀴즈’가 대량으로 발생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황정수/김동현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