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우회 송유관 있지만
수입 물량 대체하기엔 역부족
북중미 원유는 경질유가 대부분
중질유 중심 韓시설엔 '그림의떡'
지난해 전체 원유의 94.4%를 중동에서 들여온 에쓰오일은 연일 비상 대책 회의를 열고 있다. 지난달 28일 미국의 이란 공습 이후 원유 수입이 막혀서다.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해 한국으로 오고 있는 선박은 총 여덟 척. 에쓰오일이 사흘에 한 척 물량을 원유 정제 설비에서 처리하는 점을 감안하면 한 달 뒤엔 중동산 원유가 바닥날 전망이다. 에쓰오일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설치한 원유 수송관을 통해 페르시아만뿐만 아니라 홍해에서도 운송하는 방안 등을 검토했지만, 원유관 수송 용량과 항구 규모 등에 한계가 있어 완벽한 대체재가 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에쓰오일의 원유 정제 설비 중 한 곳이 정기 개보수 작업에 들어가 10일 정도를 더 버틸 수 있게 된 점은 다행”이라며 “이후엔 정부 비축유 등을 사용하는 것 외에 마땅한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 24일 이후 중동산 수입 중단
미국과 이란 전쟁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정유사의 원유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오는 24일 전남 여수항에 도착할 예정인 초대형원유운반선(VLCC)을 마지막으로 중동산 원유는 호르무즈해협에서 발이 묶여 수입이 사실상 중단된다. 현재 중동산 원유를 실은 선박 총 17척이 한국으로 오고 있고, 7척은 호르무즈해협을 빠져나오지 못해 멈춰 서 있다.
원유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건 에쓰오일뿐만이 아니다.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이 전체의 53.3%인 HD현대오일뱅크는 21일을 끝으로 중동산 원유 수입이 중단된다. 정유사는 대안 마련에 분주하다. 이들은 우선 호르무즈해협을 우회하는 방식으로 중동산 원유를 들여올지 알아보고 있다.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가 보유한 페트로라인(동서 송유관)을 활용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페트로라인은 홍해에 있는 사우디 얀부 석유 터미널로 이어지는 1200㎞ 송유관이다. 하지만 하루 원유 수송 능력이 500만 배럴에 그치는 데다 얀부 지역 항만 시설이 부족해 충분한 원유를 수송할 수 없다. 원유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유럽 정유 회사와의 경쟁도 이겨내야 한다.
북미와 중남미 원유 수입도 대안으로 꼽힌다. 다만 이들 지역 원유는 경질유가 대부분이어서 중질유 중심의 정제 설비를 갖춘 한국 정유사에는 ‘그림의 떡’이다. 업계 관계자는 “설비 조정에만 한두 달 걸릴 것”이라며 “설비 조정 역시 가격 인상 요인이어서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 현물·VLCC 용선료 인상도 고민
원유 가격이 빠르게 오르는 점도 고민거리다. 정유사는 원유 도입 과정에서 장기 계약(70~80%)과 현물 거래(20~30%)를 혼합한다. 장기 계약으로 묶여 있는 중동산 원유 수급이 어려울 경우 현물 거래를 늘려 수입처를 다변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최근 현물 거래 가격이 급등해 수입량 확대에 부담이 생겼다. 이날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한때 119.50달러까지 치솟았다. 미국의 이란 공습 전 현물 가격이 배럴당 50달러대이던 것과 비교하면 원유 가격이 두 배 이상으로 올라간 것이다. 원유를 수송하는 VLCC 용선료 역시 하루 45만달러 수준으로 평소의 열 배에 달한다.
주요 산유국이 원유 생산량을 빠르게 줄이면서 원유 가격이 치솟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라크는 원유 생산량을 하루 430만 배럴에서 130만 배럴로 약 70% 줄였다. 원유 수출 역시 하루 80만 배럴로 평소의 20% 수준으로 감소했다.
정유업계는 정부의 비축유 방출을 정유 설비 가동을 지속할 유력한 대안으로 보고 있다. 국내 석유 비축 물량은 정부와 민간을 합쳐 약 2억 배럴이다. 한국석유공사의 전략비축분 약 1억 배럴과 민간 정유사의 의무비축분 9500만 배럴을 합한 규모다. 평상시 소비 기준 약 210일, 7개월가량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이날 “중동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가 관건”이라며 “필요하면 언제든지 정부 비축유를 방출할 생각”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