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시나요? 신을 믿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는 얀 마텔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바다 한가운데서 표류하다 살아남은 소년 '파이'의 생존기를 다룬다. 그런데 이 극은 단순한 조난 기록이 아니다. 극장을 나서는 관객에게 “당신은 어떤 진실을 믿겠습니까?”라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사진 제공. 에스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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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을 자극하는 시각적 미장센

전통적인 연극이 대사에 집중하는 반면, 이 작품은 압도적인 시각 효과로 관객의 오감을 자극한다. 3면 스크린을 활용해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를 구현하고, 실제 동물처럼 관절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듯한 대형 퍼핏(인형)의 움직임은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특히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는 인형 그 이상이었다. 머리의 미세한 떨림, 꼬리의 움직임, 관절이 부딪히는 소리까지 표현하는 퍼핏 전문가들의 열연은 호랑이의 감정을 사람보다 더 극적으로 전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무대에서 인간이 조종하고 있기에 그 움직임은 오히려 더 자연스럽고 섬세하게 느껴졌으며, 진짜 호랑이라고 믿고 싶어졌다.
사진 제공. 에스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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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1막은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이의 가족이 캐나다를 향해 동물들을 배에 싣고 떠나다 폭풍우를 만나 배가 침몰하는 과정을 속도감 있게 보여준다. 이어지는 2막에서 홀로 살아남은 파이는 망망대해 위 작은 구명보트에서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대치하며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유일한 생존자인 파이가 병원에서 과거를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시작해, 인도에서 캐나다까지 이르는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파이의 회상에 따라 자유자재로 오가는 무대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바닷속을 유영하는 파이의 모습으로 시공간을 전환하는 장면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혼란스러워하는 파이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두 가지 이야기, 그리고 잔혹한 진실

파이는 보험사 직원에게 두 가지 생존 스토리를 들려준다.

첫 번째는 환상 같은 이야기이다. 구명보트에 남겨진 하이에나가 다리 다친 얼룩말과 오랑우탄을 잡아먹고, 뒤이어 나타난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하이에나를 해치우며 파이와 대치한다. 파이는 이 맹수를 조련하며 수개월을 함께 버텼고, 미어캣이 가득한 기묘한 식인 섬을 거쳐 생존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소년의 환상이라 치부하며 믿지 않는다.

그러자 파이는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구명보트엔 다리를 다친 선원과 요리사, 그리고 엄마와 파이가 있었다. 요리사는 선원의 다친 다리를 잘라 낚시 미끼로 쓰고, 이에 항의하는 엄마를 바다로 밀어버린다. 결국 분노한 파이가 요리사를 죽이고 홀로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다. 살기 위해 서로를 죽여야 했던 이 잔혹하고 끔찍한 이야기 앞에 관객은 아연실색하게 된다.

주인공 파이를 연기한 박강현 배우는 순수한 소년의 눈망울에서 광기 어린 절규까지 온몸으로 표현하며 관객을 혼란에 빠뜨린다. 두 이야기 모두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관객은 무엇이 진짜인지 혼란스러워진다. 박강현 배우조차 한 인터뷰에서 "연기하다 보면 때론 후자가 진실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럼에도 전자가 진실이라고 설득하고 싶다"고 했을 만큼, 두 진실 사이의 간극은 깊고 묵직하다.
사진 제공. 에스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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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믿을 것인가

냉혹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인간은 가장 아끼던 존재(얼룩말)가 잡아먹히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 스스로 가장 위험한 동물(호랑이)이 되기도 한다.

파이는 묻는다. “어느 스토리가 더 흥미로운가요?” 삶은 때로 비극 그 자체일지라도, 우리는 그 안에서 신의 존재를 찾고 경이로운 이야기를 믿고 싶어 한다. 파이 역시 어린 시절 힌두교, 천주교, 이슬람 등 여러 종교를 넘나들며 신의 존재를 탐구했지만, 그 누구도 속 시원하게 정답을 말해주지 않았다. 이 이야기의 진실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믿을지는 파이, 그리고 관객의 몫이다.

벵골 호랑이를 조련해 살아남은 인간적인 파이를 믿고 싶지만, 스스로 호랑이가 되어야만 했던 후자의 현실이 마음 한구석을 묵직하게 짓눌렀다. 이 공연을 본 당신은 어떤 파이의 이야기를 가슴에 담게 될지 궁금해진다.
라이프 오브 파이 캐릭터 포토(박강현) / 사진 제공. 에스엔코
라이프 오브 파이 캐릭터 포토(박강현) / 사진 제공. 에스엔코
사공준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