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전략의 처세술, 프렌치 갈랑트리

프랑스 남자에게는 유독 로맨틱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여성을 위해 문을 열어주고, 부드럽고 배려 깊은 말투를 쓰며, 때로는 꽃다발을 건네주는 낭만적인 제스처까지 이처럼 여성의 마음을 얻기 위한 태도와 매너를 ‘프렌치 갈랑트리(la galanterie à la française)’라 부른다.
Jean-Honoré Fragonard, <The Swing> (1767) / 그림출처. ©Wallace Collection, London
Jean-Honoré Fragonard, <The Swing> (1767) / 그림출처. ©Wallace Collection, London
프렌치 갈랑트리의 역사와 의미

프랑스어 사전 ‘르 프티 로베르’는 갈랑트리를 여성의 호감을 얻기 위해 보이는 남자들의 행동, 친절과 배려, 그리고 세련되고 예의 바른 태도로 정의한다. 이는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기보다 우아함으로 다가가고, 지배하려 하기보다 매력으로 관계를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갈랑트리는 과거와는 다소 다른 모습으로 변했지만, 수 세기에 걸쳐 이어져 온 이 태도는 여전히 프랑스 문화가 지닌 낭만과 매혹을 상징하는 요소로 남아 있다.
그림 Jean Berain, 판화 Jean Lepautre, <갈랑트리 상점> (1678) / 그림출처.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그림 Jean Berain, 판화 Jean Lepautre, <갈랑트리 상점> (1678) / 그림출처.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갈랑트리는 17세기 프랑스에서 탄생한 개념이다. 이 말은 즐거움이나 좋은 시간을 뜻하는 고대 프랑스어 ‘Gale’에서 비롯되었고, 프랑스인을 가리키는 라틴어 ‘Gallus’와도 어원을 공유한다. 이런 배경 덕분에 프랑스는 자연스럽게 “가장 갈랑트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갈랑트리는 단순한 예절을 넘어, 여성을 즐겁게 하고 매혹하는 기술이자 때로는 교묘한 계산이 섞인 유혹의 방식이기도 했다. 동시에 사회가 추구하던 이상이자, 우아함과 세련됨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사교계를 이끌던 공작부인이나 백작부인들은 무엇이 세련되고 멋스러운지를 판단하는 기준점이 되었는데, 예를 들어, 럼부이에 후작부인(la marquise de Rambouillet)은 자신의 살롱에 초대한 손님들의 복장과 예절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누가 진정 우아한지 평가하곤 했다고 한다. 이른바 ‘살롱 문화’가 상류층 귀족 사회에서 활발히 펼쳐졌다. 이후 살롱 문화는 베르사유 궁전까지 전파되었다.
판화 Nicolas Bazin, 그림 Jean Dieu de Saint-Jean, <침대에 기대어 쉬는 데샤비예 차림의 귀부인> (1686) / 그림출처.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판화 Nicolas Bazin, 그림 Jean Dieu de Saint-Jean, <침대에 기대어 쉬는 데샤비예 차림의 귀부인> (1686) / 그림출처.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루이 14세 시대 궁정과 살롱 문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꽃을 건네주거나 차 문을 잡아주거나 혹은 여행 가방을 들어주는 행동은 사실 갈랑트리의 진정한 정신과는 거리가 있다. 진정한 갈랑트리는 우아함과 매력, 그리고 교묘한 사회적 전략이 뒤섞인, 단순한 예절이나 친절을 훌쩍 넘어서는 복합적인 처세술이었다.

루이 14세 시대 궁정에서는 세련됨과 매력, 여성에게 잘 보이는 법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17세기 프랑스에서 갈랑트리는 단순한 연애 이야기나 살롱의 수수께끼에 머물지 않았다. 희곡, 소설, 단편, 동화 등 다양한 문학 장르에서 새로운 우아함과 예의가 반영되었고, 이는 당시 사회 전반에 스며들었다.

궁정 발레, 코미디 발레, 갈랑트 비극, 베르사유의 화려한 무도회, 신문, 오페라까지 모든 예술 장르는 루이 14세 시대의 화려함과 예의를 보여주고, ‘완벽한 갈랑트’로서의 왕의 이미지를 드러내기 위해 예술로 새롭게 태어나거나 혁신되었다.
Abraham Bosse, <무도회(디테일)> (1634경) / 그림출처.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
Abraham Bosse, <무도회(디테일)> (1634경) / 그림출처.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
겉으로 보면 갈랑트리는 여성의 승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갈랑트한 남성은 매력적이고 예의 바른 모습으로 평가받지만, 정작 여성에게는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었다. 여자는 종종 문란하거나 지나치게 우아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화려함 뒤에 숨은 사회적 제약과 억압은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Auguste Serrure, <매력적인 상대> (1871) / 그림출처. ©Artvee
Auguste Serrure, <매력적인 상대> (1871) / 그림출처. ©Artvee
풍자와 조롱의 대상이 된 갈랑트리

원래 엘리트 문화였던 갈랑트리는 사회적 신분의 상징이었고, 그 지위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은 자연스레 배제되었다. 갈랑트한 태도는 귀족만의 특권으로 여겨졌고, 부유층의 부르주아나 평민이 흉내 내면 풍자의 표적이 되었다.

몰리에르가 1670년에 발표한 희극 발레(comédie-ballet) 작품 ‘부르주아 귀족’(Le Bourgeois gentilhomme)에서 주인공 주르댕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 상인 출신으로 부자가 된 주르댕은 귀족이 되고 싶어 도리멘 백작부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귀족을 흉내 내며 어설픈 갈랑트리를 하고, 허영심에 사로잡혀 무용, 음악, 펜싱, 철학 수업까지 받지만, 결국 주변 귀족과 하인들에게 이용당하고 조롱받고 만다.

또한 몰리에르는 희극 ‘우스꽝스러운 프레시외즈들’(Les Précieuses ridicules)에서 지나치게 세련되고 점잔 빼는 태도나 과장된 여성들의 말투와 행동을 웃음거리로 그렸다. 그는 17세기 프랑스 상류층 여성 중심의 살롱 문화에서 생긴, 이 과장되고 지나치게 우아한 말투와 행동을 풍자한 프레시오지테(préciosité) 개념을 만들어 냈다.

몰리에르의 작품은 베르사유 궁전에서 왕과 귀족들 앞에서 공연되었다. 귀족들은 스스로 만들어낸 우아한 처세술, 즉 갈랑트리를 자랑삼아 실천했지만, 몰리에르는 이를 과장과 풍자로 비틀어 조롱과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 때문에 일부 귀족들은 불쾌감을 느끼기도 했고, 실제로 ‘우스꽝스러운 프레시외즈들’은 귀족 여성들의 항의로 공연이 중단되기도 했다.
[좌] Monsieur Jourdain “자, 따라와, 이 옷을 입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보며 자랑 좀 해야겠어.” (3막 1장), 몰리에르 / 그림출처. 위키피디아  [우] Jacques Leman, 우스꽝스러운 프레시외즈들, 몰리에르, 1882-1896 / 그림출처.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좌] Monsieur Jourdain “자, 따라와, 이 옷을 입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보며 자랑 좀 해야겠어.” (3막 1장), 몰리에르 / 그림출처. 위키피디아 [우] Jacques Leman, 우스꽝스러운 프레시외즈들, 몰리에르, 1882-1896 / 그림출처.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18세기에 접어들면서 갈랑트리는 점점 리베르티나주(libertinage), 즉 자유분방함으로 축소된다. 남성들은 남녀가 뒤섞인 살롱을 문란한 장소로 여겼고, 점점 영향력을 키워가는 여성들을 경계했다. 여성이 자유롭게 대화하고 남성과 어울리며 사랑 이야기를 나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문란하고 덕이 없는 여성이라는 의심을 받았다.

갈랑트리는 단순한 우아함과 매력의 문화가 아니었다. 사교적 전략과 사회적 힘겨루기, 성별과 계급의 미묘한 긴장이 얽혀 있는 복합적 문화였고, 바로 이런 요소들이 17~18세기 프랑스를 오늘날까지 매혹적으로 기억되게 만들었다.

포스트 MeToo 시대의 갈랑트리

2017년 하비 와인스타인 사건을 계기로 MeToo 운동은 전 세계로 확산하였지만, 프랑스에서는 다른 나라만큼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는 프랑스인들이 표현의 자유와 오랜 갈랑트리 전통을 중요하게 여겨왔기 때문이다. 1970년대 성 해방 세대는 성적 욕망의 자유와 도덕적 규제에서의 독립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오늘날까지도 대통령이 임기 중 불륜을 저질러도 큰 사회적 논란이 되지 않는 문화적 배경이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사회에서 남녀 관계의 즐거움을 강조해 온 갈랑트리 문화는, 남성 우위 구조를 유지하고 남녀 불평등을 용인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왔다.

그렇다고 해서 갈랑트리를 완전히 버릴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를 시민적 예절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문을 열어주거나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행동, 초대, 선물 주고받기와 같은 작은 배려는 상대의 편안함과 존중을 표현하는 행동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작은 배려들이 쌓일 때, 갈랑트리는 권력과 불평등을 숨기는 도구가 아닌,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문화적 예절로 거듭날 수 있다.

2024년 IFOP 통계에 따르면, 35세 미만의 젊은 층과 페미니스트 활동가를 제외한 프랑스인 82%는 갈랑트리를 성차별적 개념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또한 77%는 “여성을 먼저 대접하는 행동”을 성차별의 행동이 아닌 단순한 예절과 배려로 인식했다. 이는 갈랑트리의 긍정적 요소를 유지하되, 남녀 간의 평등과 조화를 이루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포스트 MeToo 시대의 갈랑트리는 남성이 여성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행동이 아니라 서로가 누릴 수 있는 현대적 예절로 남아야 한다.

파리=정연아 패션&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