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을 대상으로 강연을 다니다 보면 “이 노래가 재즈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재즈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음악이 많다 보니 어디까지를 재즈라고 할 수 있는지 궁금해한다. 재즈가 시대에 따라 변화해 온 데다 다른 장르와 섞이면서 경계가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태생에서부터 혼혈 음악이었기에 그 본질을 이해하는 것만도 간단치가 않다.
한번은 위스키 바에 앉아 있는데 옆자리 손님이 “라틴 재즈를 듣고 싶다”고 했다. 가게 주인이 흔쾌히 반응하며 적당한 재즈를 골랐는데 손님은 “그런 거 말고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같은 거요”라고 한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은 쿠바의 노래꾼들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영화다. 여기에 나오는 노래들은 손(son)이나 볼레로(bolero), 단손(danzón)같은 쿠바의 전통 대중음악이지 재즈는 아니다. (쿠바의 트로트 같은 거랄까)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그런 자리에서 그게 왜 재즈가 아닌지 되뇌는 건 피곤한 일이다.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스틸컷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Buena Vista Social Club - El Cuarto de Tula]
사람들이 특히 헷갈리는 게 라틴 음악과 라틴 재즈의 구분이다. 잘 알려진 ‘베사메 무초’ ‘관타나메라’ ‘찬 찬’을 재즈로 인식하거나 라틴 재즈라고 부르는 경우가 흔하다. 이국적인 리듬에 트럼펫 소리가 짱짱하고 즉흥연주까지 하니 재즈와 닮아도 많이 닮았다. 실제로 재즈 팬들도 애청하고 즐기는 곡들이다. 그러나 라틴 음악은 라틴이고 라틴 재즈는 재즈다. 둘이 닮은 이유는 형제라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이웃사촌이기 때문이다. 즉흥연주라는 것도 재즈의 일차적인 관점이기는 하지만 재즈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재즈와 라틴의 관계를 쉽게 이해하는 방법은 먼저 지도를 보는 것이다. 재즈 발생지인 뉴올리언스와 그 아래쪽까지 넓게 펼쳐야 한다. 대서양이 있고 크고 작은 섬나라들이 있다. 흔히 카리브 문화권(라틴 문화권)이라 불리는 쿠바, 아이티, 푸에르토리코, 도미니카 공화국 등이다. 여기서 사람들이 간과하는 게 있다.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뉴올리언스로 바로 끌려왔다고 인식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다. 쿠바와 아이티 등으로 먼저 이주했던 흑인 노예들이 뉴올리언스로 옮겨가는 과정만 해도 수십 년에서 백 년의 시간이 걸렸다. 라틴 음악이라는 건 카리브 연안의 음악들과 아프리칸 리듬이 작용한 것을 말하고, 재즈 발생 이전부터 뉴올리언스에 공유되고 있었다.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스틸컷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그렇다면 뉴올리언스 역시 카리브 세계의 일부임에도 재즈와 라틴을 구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서 재즈가 미국에서 태어난 음악이기 때문이다. 남아메리카의 이웃사촌들이 서로 닮기는 했어도 미국의 음악이라는 절대 전제를 놓치면 안 된다. 비유하자면 일본의 엔카와 우리나라의 트로트가 다른 것처럼, 쿠바의 살사와 아르헨티나의 탱고가 다른 것처럼, 문화권의 다름은 장르를 나누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다. 다만 보사노바는 브라질의 라틴 음악이지만 재즈의 문법으로 재해석되면서 라틴 재즈 내부로 흡수된 예외적 사례다.
라틴 음악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리듬과 성격을 지니는 것도 아니다. 카리브계 라틴에서 벗어나 시야를 넓히면 또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된다. 예를 들어 세자리아 에보라(Cesária Évora)가 부른 노래들도 종종 재즈로 오해되지만, 쿠바의 손이나 브라질의 보사노바와는 또 다른 방향에서 발전한 라틴 음악이다. 아프리카와 유럽 사이 대서양에 놓인 카보베르데에서 태어난 이 음악은 모르나(Morna)로 불린다. 카리브의 음악이 뉴올리언스를 향해 흐른 ‘리듬의 항로’였다면, 세자리아 에보라의 음악은 아프리카와 유럽을 오간 ‘노래의 항로’ 위에서 태어난 것이다. 한편, 아르헨티나의 탱고도 자주 오해되는 라틴 음악이다. 반도네온의 음색과 느릿한 호흡, 즉흥적인 장식 때문에 재즈로 착각되기도 하지만, 탱고는 어디까지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중음악이다. 카리브의 리듬과는 출발점도 정서도 다르다. 여기서 지도를 북동쪽으로 올라가면 브라질이 나온다. 보사노바는 리우데자네이루의 음악이다.
[Cesária Évora - Maria Elena]
재즈와 라틴, 같은 환경 속에서 자란 두 음악에는 아프리카의 리듬 감각이 공기처럼 스며들었다. 그리고 라틴 음악은 재즈의 주된 향신료로 꼽혀왔던 것도 사실이다. 재즈 발생 초기의 중요한 인물이었던 젤리 롤 모턴(피아노)은 “재즈에는 스페인의 냄새, 카리브의 리듬 감각이 필요하다” 말했다. 모던재즈의 명곡 중에서도 라틴의 냄새를 풍기는 것들이 있다. 색소폰 연주자 소니 롤린스의 ‘세인트 토마스(St. Thomas)’는 칼립소라는 카리브 리듬 위에서 즉흥연주를 펼친다. 트럼펫 연주자 리 모건의 ‘세오라(Ceora)’도 언뜻 라틴 재즈처럼 들리지만, 연주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하드밥 재즈다. 반면, 트럼펫 연주자 디지 길레스피의 ‘만테카(Manteca)’는 비밥 재즈의 구조 위에 아프로-쿠반 리듬을 결합한 본격적인 라틴 재즈곡이다.
[Sonny Rollins - St. Thomas]
[Dizzy Gillespie – Manteca]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 재즈가 아니라고 해서 문제 될 건 아무것도 없다. 그 자체만으로 이미 아름답기 때문이다. 음악 장르를 애써 구분 짓는 이유는 그 거리를 멀게 하려는 게 아니라 각각의 음악을 존중하는 태도이다. 예컨대 모든 것을 재즈라고 말한다면 라틴 음악은 제 이름을 잃게 된다. 닮았지만 다르다고 바라볼 때 음악은 우리를 더 넓은 세계로 데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