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보스트리지는 생각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음악으로 들려준다. 그의 노래는 대단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Ian Bostridge, 1966~)를 해석하는 연주 미학이다. 런던 출생. 케임브리지大에서 역사학 전공(학사/석사), 29세 때 옥스퍼드大 박사. 학위 논문 “17~18세기 마녀사냥이 ‘범죄’에서 ‘사유·상징·집착의 대상’으로 변모하는 과정”. 정규 음악 과정을 밟은 적 없음. 개인 레슨으로 성악을 배움. 선생님은 헝가리人 베라 로자.

이 시대 가장 독특한 경력의 클래식 가수라 할 만한 인물이다. 그 연장선에서 그의 연주력에 대한 논란도 많다. 장점을 보자. 우선 ‘가사를 읽어내는 가수’. 그저 아름답게 노래하는 가수의 대척점에 보스트리지는 자리한다. 단어의 의미·뉘앙스·문법적 위치를 음악 안에서 사고한다. 같은 문장이라도 어디에 무게를 두는지 어디를 흘려보내는지가 명확해 시(詩)의 구조와 흐름이 귀에 오롯이 들어온다. 그의 프레이징은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생각이 형성되는 과정을 노출한다. 그래서 ‘곡의 진실을 이미 알고 말하는 사람’의 어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고음에서의 과시? 없다. 클라이맥스에서 감정 폭발? 역시 없다. 대신 사라짐⸱취약함⸱미완성의 정조(情調)를 남긴다.
영국의 카운터테너 이안 보스트리지. / 사진제공. 서울국제음악제
영국의 카운터테너 이안 보스트리지. / 사진제공. 서울국제음악제
단점은 장점을 반대로 해석하면 된다. 얇은 음색과 짧은 호흡, 즉 성량과 공명의 한계가 분명히 있다. 소리가 공간을 충분히 채우지 못한다. 긴 호흡을 단번에 밀고가는 레가토(legato)의 미덕이 가수의 본령일진대 중간에 숨이 자주 개입한다. 음악적 ‘호흡’보다 언어적 ‘문장’이 앞서다 보니 멜로디의 선(線)이 끊어진 듯한 인상을 준다. 노래보다 낭독에 가까운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소리 자체도 메마르고 날카롭고 불안한 데다 리릭 테너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가벼워 유약함이 도드라진다. 의미 강조를 위해 강약 대비를 급격히 주다 보니 템포가 종종 흔들리기도 한다. 의미로 설득하려다 소리를 희생하는 가수라는 지적이 아프다.

이런 보스트리지는 슈베르트와 만나면 장점은 극대화되고 단점은 최소화된다. 슈베르트 리트(Lied)를 보스트리지는 감정의 흐름이 아니라 의식의 관찰로 해석해 노래한다. 감정을 노래로 흘러가게 놔두지 않고 감정을 분석하는 상태로 이끈다. 이를 통해 그의 취약한 소리는 취약한 존재로, 불안정한 흐름은 불안정한 의식으로, 과도한 해석은 과도한 자기 인식으로 탈바꿈되며 그 목적지는 어느새 슈베르트의 본질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슈베르트야말로 보스트리지의 ‘불완전한 성악’을 ‘필연적인 인간성’으로 들리게 하는 유일한 처소가 아닐까 싶다.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의 최근 모습 / 사진. Ceylon Mitchell, M3 Mitchell Media & Marketing, LLC.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의 최근 모습 / 사진. Ceylon Mitchell, M3 Mitchell Media & Marketing, LLC.
노래하는 인문학자 이언 보스트리지는 2014년 <Schubert's Winter Journey: Anatomy of an Obsession>이란 책을 냈다. 한국어판으로는 그저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라는 밋밋한 제목. 뒷부분 ‘집착 관점에서의 해부학’이란 대목이 그래도 그의 캐릭터를 잘 드러낸다. 슈베르트의 시대와 음악을 문학·회화·기후·정치사로 확장해 엮은 책. 더 이상의 슈베르트 관련서는 필요 없을 정도의 명저(名著)다.

‘밤과 꿈(Nacht und Träume, D.827)’은 1823년 작품으로 슈베르트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시작점에 위치하는 곡. 이때는 매독이 발병해 삶의 지속성에 대한 최초의 근본적 불안이 일어나는 시기였다. 말년의 체념까지는 아니라도 어둠의 전조가 깊이 드리워진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트라움(Traum)이 아닌 트로이메(Träume)도 하나의 징표다. 이건 하나의 꿈이 아니라기보다는 스쳐가는 여러 꿈의 상태들을 암시한다.
슈베르트 가곡 '밤과 꿈'의 이미지. John Simmons <Hermia and Lysander> (1870). / 사진출처. 독일 위키피디아
슈베르트 가곡 '밤과 꿈'의 이미지. John Simmons <Hermia and Lysander> (1870). / 사진출처. 독일 위키피디아

“거룩한 밤이여, 그대 서서히 내려앉네/꿈도 마찬가지로 물결처럼 밀려오고/마치 그대의 달빛이 공간을 넘나들 듯이/사람들의 고요한 가슴 속으로 밀려오는구나/사람들은 황홀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고, 이윽고 날이 밝아올 때면 외치네/돌아오라, 거룩한 밤이여!/소중한 꿈들이여, 돌아오라!”

2000년 파리 샤틀레 극장 공연은 슈베르트에 완벽 빙의한 보스트리지가 노래하는 것만 같다.

강성곤 음악 칼럼니스트•전 KBS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