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는 일제강점기 수탈의 아픔을 간직한 채 새우젓 창고로 잠들어 있다가 대한민국 대표 동굴 테마파크로 변신한 광명동굴이고, 다른 하나는 불꽃 속에서 쓰레기를 태우던 소각장 홍보동에서 예술의 전당으로 탈바꿈한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입니다.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 / 사진. ⓒ최영식
광명동굴이 108년 전의 산업 유산을 보존하며 폐광의 기적을 일구었다면, 그 바로 옆에 자리한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는 버려진 물건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현재 진행형'의 재생을 보여줍니다. 폐광을 문화 관광 명소로 만든 광명시의 경험은 자연스럽게 '재생'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했고, 그 흐름은 자연스럽게 업사이클이라는 주제로 이어졌습니다.
광명동굴 / 사진출처. 광명시청홈페이지
많은 이들이 '리사이클(Recycle)'과 '업사이클(Upcycle)'을 혼동하곤 합니다. 리사이클이 다 쓴 물건을 원래의 용도로 다시 되돌리는 수동적인 재활용이라면, 이곳이 지향하는 업사이클은 폐기물에 예술적 상상력을 더해 완전히 다른 가치를 지닌 물건으로 재탄생시키는 '새 활용'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쓰레기를 줄이는 차원을 넘어,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바꾸는 작업입니다.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의 운영 모델에서 주목할 지점은 글로벌 가구 기업과의 전략적인 협업입니다. 센터는 설립 초기인 2014년부터 지역에 입점한 가구 기업과 긴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행정적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다국적 기업의 복잡한 승인 절차를 넘어서는 과정이 쉽지 않았으나, 업사이클을 통한 사회적 가치 실현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현재까지 파트너십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 협업을 통해 기업은 매년 판매가 불가능한 가구나 카펫 등 약 2톤 분량의 소재를 센터에 기증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소재들이 단순히 재활용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공예 예술'로 연결된다는 점입니다. 지역의 아마추어 목공 동아리 강사와 수강생들이, 기부받은 소재를 활용해 가구를 제작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하면서 시민이 예술의 주체가 되는 생활 예술의 모델로 자리 잡았습니다.
사진출처. 광명업사이클센터 홈페이지
지역민의 손길로 재탄생한 가구들은 지역 아동센터 등 복지 시설의 공부방을 꾸미는 데 사용됩니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전시라는 고유 기능을 넘어, 기업의 자원과 지역민의 예술적 참여를 결합해 지역 사회의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는 사례를 보여줍니다.
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층수 안내 표지판입니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1층부터 4층까지의 숫자들이 폐청바지와 버려진 장난감들로 꾸며져 있습니다. 건물의 뼈대부터 안내판 하나까지, 이곳이 무엇을 말하려는 공간인지 알려주는 듯합니다.
(왼쪽부터) 3층, 4층 안내 표지판 / 사진. ⓒ최영식
현재 1층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업사이클 인터랙티브' 전시는 보는 예술을 넘어 '교감하는 예술'을 선보입니다. 관람객이 작품 가까이 다가서거나 만지고 움직일 때마다 작품들이 반응을 시작합니다. 차갑게 식어 있던 폐자재들이 인간의 온기를 만나는 순간, 비로소 예술이라는 새 이름을 얻고 대화(Interactive, 상호 교감)를 건네는 셈입니다.
전시장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작품은 관람객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고래(Whale Wave)입니다. 청바지 소재로 만든 꼬리와 복잡한 기계 장치가 결합된 이 고래는 관객이 다가서면 마치 심해를 유영하듯 부드럽게 물결칩니다. 고래가 그물을 피해 헤엄치는 형상을 통해 인간이 버린 폐기물이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주방에서 수명을 다한 은색 숟가락 수백 개를 촘촘히 겹쳐 만든 상어 역시 존재감을 뽐냅니다. 매끄러운 피부를 재현한 은빛 숟가락 지느러미는 센서를 통해 관람객의 신호를 감지하며 살아있는 듯 움직입니다.
[위] <Whale Wave> [아래] <Symbiosistence-shark> / 사진. ⓒ최영식
이처럼 버려진 폐자재들이 정교한 메카닉 기술과 만나 예술로 재탄생하는 과정은, 우리가 사물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자원이 어떻게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됩니다.
휴대폰으로 자동차 형상을 만든 '모바일카'가 그 옆에 있습니다. 누군가의 연락과 일상이 담겨 있었을 휴대폰들이 모여 다시 '연결'과 '움직임'을 상징하는 이동 수단으로 재탄생한 모습입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은 벽면 가득 펼쳐지는 비디오 게임 형태의 작품, '캔-티랙스' 앞입니다. 화면 속 공룡은 관람객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감지하며 함께 반응합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여러 물체 중 플라스틱 등 다른 쓰레기를 피하고 오직 '캔'만을 골라 먹어야 점수가 올라가는 방식입니다.
아이들은 화면 앞에서 분주하게 몸을 움직이며 마치 공룡과 하나가 된 듯 게임에 몰입합니다. 환경 문제에 대해 즐거운 놀이 과정을 거치며, 캔이 단순한 쓰레기가 아닌 가치 있는 자원임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됩니다. 버려진 알루미늄 캔이 디지털 기술과 결합해 유쾌한 예술 콘텐츠로 업사이클된 사례를 체험하는 현장입니다.
[위] <모바일카> [아래] <캔-티랙스> / 사진. ⓒ최영식
일상의 소박함이 예술이 된 사례도 있습니다. 시장에서 흔히 보는 플라스틱 바구니는 정성스러운 실 자수를 입어 우아한 오브제가 되었고, 바람이 빠져 버려졌던 스포츠 센터의 짐볼에도 자수를 둘러 안락한 의자로 변신했습니다. 버려진 것들로부터 위로받는 역설적인 경험입니다. 전시장을 나와 쉼터로 향하면 10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주 특별한 작품이 발길을 붙잡습니다. 바로 뻥튀기를 소재로 만든 명품 가방입니다.
"명품의 화려함도 결국 한순간의 '뻥'일 수 있다"는 작가의 유쾌한 풍자가 담긴 이 작품은, 별도의 화학 처리 없이 봉인만으로 10년의 세월을 견뎌왔습니다. 바스러지기 쉬운 뻥튀기가 긴 시간 보존되어 온 생명력은 그 자체로 업사이클의 놀라운 가치를 대변하는 듯합니다.
<명품샵> / 사진. ⓒ최영식
거창하고 화려한 미술관의 문턱을 넘지 않아도, 숟가락 하나와 폐청바지 조각이 살아있는 고래가 되고 캔 하나가 즐거운 게임이 되는 현장은 그 자체로 특별한 경험입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환경 보호라는 무거운 숙제 대신, 창의적인 놀이를 통해 자원의 소중함을 스스로 깨닫는 살아있는 교육의 장이 되어줍니다.
주말 오후, 가벼운 마음으로 서울 근교의 이 특별한 공간을 방문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광명동굴의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역사를 되새기고, 이어지는 아트센터에서 일상의 쓰레기가 예술로 응답하는 순간을 마주하다 보면, 버려진 것들로부터 따뜻한 위로를 받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