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 서거 100주년
아,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③
– 뼈로 만든 것처럼 거칠고 가혹하게
내 의뢰인은 서두르지 않는다
말년의 가우디는 삼중고에 시달렸다. 기부금에만 의존해야 했기에 공사는 지지부진했고, 평생을 함께해 온 동료와 후배들이 하나둘 곁을 떠나갔으며, 설상가상으로 오랫동안 육체를 짓눌러왔던 류머티즘을 비롯한 각종 지병에다 예상치 못한 감염병까지 더해져 도무지 일에 몰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1911년 그는 브루셀라증에 걸렸다. 채식주의자인 가우디가 어쩌다 이런 병에 걸렸을까? 그는 양상추에 우유를 뿌려 견과류와 같이 먹는 걸 무척 좋아했다. 따라서 살균되지 않은 우유 때문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가우디는 의사의 권유를 받아들여 일을 중단하고 피레네산맥에 있는 푸이그세르다로 거처를 옮겨 요양에 전념했다.
시간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수난의 파사드 설계에 박차를 가했다. 탄생의 파사드가 예수의 강생을 축하하는 환희로 가득하다면, 수난의 파사드는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애달파하는 비애가 넘쳐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우디는 수난의 파사드를 보며 사람들이 고통과 공포를 느끼길 바랐다. 그가 “마치 뼈로 만든 것처럼 거칠고 가혹해야 한다.”라고 특별히 명시한 이유다. 이때 완성한 가우디의 소묘는 앙상한 뼈들로 이루어진 골고타 언덕 자체다. 그러나 장식은 후임자들이 알아서 할 수 있도록 밑그림만 그려놓는 자상함을 보여주었다.
가우디는 공사가 더디다며 답답해하는 사람들에게 종종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의 의뢰인은 신, 즉 하느님이었다. 신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은 다르기에 신은 서두르지 않을지 몰라도 가우디는 서둘러야 했다. 자신이 없어도 후임자들이 성당 건축을 차질 없이 이어가려면 정확한 설계도와 모형을 만들어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불의의 사고로 갑자기 그가 주어진 시간을 모두 써버렸을 때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고작 15~25%가 완성된 상태였다.
공사가 재개된 건 1950년대 들어서였다. 가우디의 후배들이 그가 남긴 설계 도면을 복구하면서 재기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1954년에 수난의 파사드 건축이 시작되었고, 1976년에 이르러 타원형 평면 위에 종탑이 완공되었다. 1986년부터는 수비라치가 이끄는 팀이 파사드를 장식할 조각 작업에 돌입했다. 다재다능한 예술가였던 수비라치는 당시 카탈루냐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가였지만, 가우디 뒤를 이어 수난의 파사드를 조각한다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고뇌를 거듭한 끝에 그가 의뢰를 수락하면서 요구한 조건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성당 근처 작은 아파트에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가우디를 모방하는 게 아니라 자기 스타일로 작품을 만들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우상인 가우디를 정말 닮고 싶었지만, 그의 그늘에 갇히거나 그의 품에 안주하고 싶지는 않았다. 수비라치는 계속해서 가우디를 좇으면서도 끝없이 가우디에게서 벗어났다.
파사드를 받치고 있는 여섯 개의 기울어진 기둥은 가우디의 다른 작품에서 봤던 기둥들과 다르다.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분위기다. 그 위에는 가시나무 관을 연상케 하는 열여덟 개의 뼈가 보이고, 상단에 피라미드 형태의 페디먼트가 올려져 있다. 페디먼트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못 박힌 십자가 명패에 적혀있던 라틴어 문장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나자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 커다랗게 새겨져 있다.
수난의 파사드를 통해 성당 안으로 출입하는 문은 세 개이고, 가운데 복음사가의 문은 둘로 나뉜다. 문으로 향하기 전 사람들은 기둥에 묶여 채찍질 당하는 예수상을 먼저 맞닥뜨린다. 고대 로마에서 십자가형을 받는 죄수에게 사용한 채찍에는 곳곳에 쇠구슬과 쇳조각 등을 박아 넣었다. 이런 채찍으로 전신을 난타당하면 살이 찢기고 터져나가 골격과 근육까지 드러났다. 예수 역시 무자비한 채찍질에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몸이 망가졌을 것이다.
오른쪽 문은 가시나무 관의 문이다. 로마 군인들이 예수를 조롱하는 장면과 예수가 갈릴래아 분봉왕인 헤로데 안티파스와 빌라도 총독 앞에서 각각 심문당하는 장면이 부조로 표현되어 있다. 두 손이 묶인 채 옆으로 선 예수의 모습이 꼭 가우디를 닮았다. 예수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넘겨준 천국으로 가는 열쇠와 순례자의 의미를 담은 가리비 등 여러 가지 상징이 알 듯 모를 듯 조각되어 있다. 양손으로 긁은 자국이 선명한 문손잡이도 인상적이다.
첫 번째는 최후의 만찬 장면이다. 제자들의 표정에 수심이 가득하다. 예수의 오른편에 앉은 요한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뒤에서 보면 마치 목이 없는 것 같다. 오른쪽 아래에는 유다가 스승이 준 빵을 건네받고 고개를 떨군 채 괴로워하고 있다. 뒤돌아 앉은 예수의 어깨와 등이 한없이 무겁고 외로워 보인다. 유다의 발밑에 놓인 돌에 요한복음서 13장 27절이 적혀있다. “EL QUE ESTÁS FENT FES-HO DE PRESSA.” 빵을 포도주에 적셔 유다에게 건네며 예수가 했던 말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이다. 카탈루냐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무슨 일을 하든 빨리해라.”라는 의미다. 여러 가지 함축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
구체적인 것은 건축이 끝나야 알 수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 그리고 최후의 심판에 초점이 맞추어질 것으로 보인다. 인간으로 태어나 가난한 사람들과 동고동락하다 십자가 위에서 처참하게 생을 마감했으나 그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했으며 많은 사람에게 이를 증명한 뒤에 승천했다. 이 모든 게 인류 구원을 위한 신의 계획이었고 이를 통해 신의 영광이 드러난다는 것을 영광의 파사드에서 보여주게 된다. 주 출입문의 현관에는 제단 발다키노를 장식했던 것과 같은 성령의 은사를 기리는 일곱 개의 기둥인 지혜, 슬기, 경륜, 용기, 지식, 공경, 경외의 큰 기둥이 세워지고, 기둥 꼭대기에는 일곱 가지 천상의 미덕인 친절, 근면, 인내, 자선, 절제, 겸손, 순결이 묘사되며, 기둥 아래에는 일곱 가지 대죄인 탐욕, 정욕, 교만, 폭식, 게으름, 분노, 시기가 표현될 것이다. 영광의 파사드 앞은 마요르카 거리(Carrer de Mallorca)다. 대성당 정면과 마요르카 거리에는 지하 통로가 건설된다. 현관에 도달하려면 악마, 우상, 거짓 신, 이단, 분열 등으로 장식된 땅속의 길을 건너가야만 한다.
영광의 파사드를 완성하려면 마요르카 거리와 연결되는 지하 통로를 만들어야 하고, 큰 중앙 계단도 설치해야 하며, 앞길을 주 출입구에 걸맞게 정비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건물이 들어서 있다. 바르셀로나시와 가톨릭교회는 물론 지역 주민들과도 원활한 소통과 협의가 이루어져야 풀릴 수 있는 문제다. 가우디가 성당을 설계할 때는 주변이 허허벌판에 가까운 공터였다. 따라서 지하 통로와 거대한 계단 등을 구상할 수 있었다. 난제가 해소되어 가우디 서거 100주기가 되는 2026년 영광의 파사드와 예수 그리스도의 환기 탑이 완성된다 해도 세부적인 장식과 후속 작업까지 마무리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슬프게도 내 손으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 내 뒤를 이어 완성할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고, 이러한 과정에서 성당은 장엄한 건축물로 탄생할 것이다. 시대와 함께 유능한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남기고 사라져 갔다. 그렇게 해서 아름다움은 빛을 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