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의뢰인은 서두르지 않는다

말년의 가우디는 삼중고에 시달렸다. 기부금에만 의존해야 했기에 공사는 지지부진했고, 평생을 함께해 온 동료와 후배들이 하나둘 곁을 떠나갔으며, 설상가상으로 오랫동안 육체를 짓눌러왔던 류머티즘을 비롯한 각종 지병에다 예상치 못한 감염병까지 더해져 도무지 일에 몰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1911년 그는 브루셀라증에 걸렸다. 채식주의자인 가우디가 어쩌다 이런 병에 걸렸을까? 그는 양상추에 우유를 뿌려 견과류와 같이 먹는 걸 무척 좋아했다. 따라서 살균되지 않은 우유 때문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가우디는 의사의 권유를 받아들여 일을 중단하고 피레네산맥에 있는 푸이그세르다로 거처를 옮겨 요양에 전념했다.

시간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수난의 파사드 설계에 박차를 가했다. 탄생의 파사드가 예수의 강생을 축하하는 환희로 가득하다면, 수난의 파사드는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애달파하는 비애가 넘쳐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우디는 수난의 파사드를 보며 사람들이 고통과 공포를 느끼길 바랐다. 그가 “마치 뼈로 만든 것처럼 거칠고 가혹해야 한다.”라고 특별히 명시한 이유다. 이때 완성한 가우디의 소묘는 앙상한 뼈들로 이루어진 골고타 언덕 자체다. 그러나 장식은 후임자들이 알아서 할 수 있도록 밑그림만 그려놓는 자상함을 보여주었다.
가우디의 구상에 따라 수난의 파사드는 뼈로 만든 것처럼 거칠게 완성되었다. 페디먼트에는 예수의 십자가 명패에 적혔던 ‘나자렛 예수, 유대인의 왕’ 문장이 라틴어로 쓰여있다. / 사진. © 김혜경
가우디의 구상에 따라 수난의 파사드는 뼈로 만든 것처럼 거칠게 완성되었다. 페디먼트에는 예수의 십자가 명패에 적혔던 ‘나자렛 예수, 유대인의 왕’ 문장이 라틴어로 쓰여있다. / 사진. © 김혜경
신은 가우디에게 탄생의 파사드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 더 허락했다. 기적적으로 그의 병세가 호전된 것이다. 현장으로 돌아온 그는 남아 있는 동료들과 함께 작업을 서둘렀다. 그러면서 틈틈이 기부금을 모금하러 다녔다. 그는 건축가인지 자선사업가인지 모를 정도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모금을 독려했다. 1925년 가을에는 아예 숙소를 작업실이 있는 성당 지하로 옮겼다. 가우디는 생의 마지막 불꽃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건축의 제단에 아낌없이 바쳤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그는 구호품을 받아 생계를 이어갔다.

“내 의뢰인은 서두르지 않는다.”

가우디는 공사가 더디다며 답답해하는 사람들에게 종종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의 의뢰인은 신, 즉 하느님이었다. 신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은 다르기에 신은 서두르지 않을지 몰라도 가우디는 서둘러야 했다. 자신이 없어도 후임자들이 성당 건축을 차질 없이 이어가려면 정확한 설계도와 모형을 만들어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불의의 사고로 갑자기 그가 주어진 시간을 모두 써버렸을 때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고작 15~25%가 완성된 상태였다.

공사가 재개된 건 1950년대 들어서였다. 가우디의 후배들이 그가 남긴 설계 도면을 복구하면서 재기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1954년에 수난의 파사드 건축이 시작되었고, 1976년에 이르러 타원형 평면 위에 종탑이 완공되었다. 1986년부터는 수비라치가 이끄는 팀이 파사드를 장식할 조각 작업에 돌입했다. 다재다능한 예술가였던 수비라치는 당시 카탈루냐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가였지만, 가우디 뒤를 이어 수난의 파사드를 조각한다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고뇌를 거듭한 끝에 그가 의뢰를 수락하면서 요구한 조건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성당 근처 작은 아파트에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가우디를 모방하는 게 아니라 자기 스타일로 작품을 만들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우상인 가우디를 정말 닮고 싶었지만, 그의 그늘에 갇히거나 그의 품에 안주하고 싶지는 않았다. 수비라치는 계속해서 가우디를 좇으면서도 끝없이 가우디에게서 벗어났다.
수난의 파사드 종탑 전망대 구름다리에 서면 황금색으로 칠해진 예수상을 볼 수 있다. 형언할 수 없는 고난을 받아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부활 후 승천하는 예수를 표현했다. / 사진. © 김혜경
수난의 파사드 종탑 전망대 구름다리에 서면 황금색으로 칠해진 예수상을 볼 수 있다. 형언할 수 없는 고난을 받아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부활 후 승천하는 예수를 표현했다. / 사진. © 김혜경
진리가 무엇이냐?

파사드를 받치고 있는 여섯 개의 기울어진 기둥은 가우디의 다른 작품에서 봤던 기둥들과 다르다.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분위기다. 그 위에는 가시나무 관을 연상케 하는 열여덟 개의 뼈가 보이고, 상단에 피라미드 형태의 페디먼트가 올려져 있다. 페디먼트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못 박힌 십자가 명패에 적혀있던 라틴어 문장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나자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 커다랗게 새겨져 있다.

수난의 파사드를 통해 성당 안으로 출입하는 문은 세 개이고, 가운데 복음사가의 문은 둘로 나뉜다. 문으로 향하기 전 사람들은 기둥에 묶여 채찍질 당하는 예수상을 먼저 맞닥뜨린다. 고대 로마에서 십자가형을 받는 죄수에게 사용한 채찍에는 곳곳에 쇠구슬과 쇳조각 등을 박아 넣었다. 이런 채찍으로 전신을 난타당하면 살이 찢기고 터져나가 골격과 근육까지 드러났다. 예수 역시 무자비한 채찍질에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몸이 망가졌을 것이다.
기둥에 묶여 채찍질 당하는 예수상이 놓인 복음사가의 문 입구. 뒤쪽에 빌라도가 예수에게 던진 질문 “I QUÈ ÉS LA VERITAT?(진리가 무엇이냐?)”가 황금색으로 칠해져 있다. / 사진. © 김혜경
기둥에 묶여 채찍질 당하는 예수상이 놓인 복음사가의 문 입구. 뒤쪽에 빌라도가 예수에게 던진 질문 “I QUÈ ÉS LA VERITAT?(진리가 무엇이냐?)”가 황금색으로 칠해져 있다. / 사진. © 김혜경
6m 높이의 문짝 두 개에는 예수의 마지막 이틀을 기록한 복음서의 구절들이 카탈루냐어로 새겨져 있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글자 하나하나가 반듯한 정자체가 아니다. 채찍에 맞은 듯 온통 상처투성이다. 오른쪽 문에 황금색으로 칠해진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I QUÈ ÉS LA VERITAT?” 빌라도 총독이 자기 관저에서 예수를 심문할 때 던졌던 질문으로 “진리가 무엇이냐?”라는 뜻이다. 빌라도는 예수를 보자마자 당신이 유대인들의 왕이냐고 물었다. 예수가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고 대답하자 빌라도는 곧바로 예수에게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런 다음 그는 예수에게 대답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복음사가의 문은 두 개다. 마태오 복음서부터 요한 복음서까지 예수의 마지막 이틀을 기록한 구절들이 카탈루냐어로 새겨져 있다. 글자 하나하나가 고난을 떠올리듯 상처투성이다. / 사진. © 김혜경
복음사가의 문은 두 개다. 마태오 복음서부터 요한 복음서까지 예수의 마지막 이틀을 기록한 구절들이 카탈루냐어로 새겨져 있다. 글자 하나하나가 고난을 떠올리듯 상처투성이다. / 사진. © 김혜경
총독 관저에서 빌라도 앞에 선 예수. 오른쪽은 턱을 괸 채 고민에 빠진 빌라도. 그는 예수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했으나 폭동이 일어날까 두려워 유다인들에게 넘겨주었다. / 사진. © 김혜경
총독 관저에서 빌라도 앞에 선 예수. 오른쪽은 턱을 괸 채 고민에 빠진 빌라도. 그는 예수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했으나 폭동이 일어날까 두려워 유다인들에게 넘겨주었다. / 사진. © 김혜경
왼쪽 문은 겟세마니의 문이다.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겟세마니는 예수가 가끔 제자들과 같이 올라 기도하던 동산이다. 위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 겟세마니에서 근심과 번민에 휩싸여 기도에 전념하는 예수가, 아래에는 스승의 신신당부를 까맣게 잊은 채 잠들어 있는 제자들이 조각되어 있다. 곯아떨어진 세 명의 제자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다.

오른쪽 문은 가시나무 관의 문이다. 로마 군인들이 예수를 조롱하는 장면과 예수가 갈릴래아 분봉왕인 헤로데 안티파스와 빌라도 총독 앞에서 각각 심문당하는 장면이 부조로 표현되어 있다. 두 손이 묶인 채 옆으로 선 예수의 모습이 꼭 가우디를 닮았다. 예수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넘겨준 천국으로 가는 열쇠와 순례자의 의미를 담은 가리비 등 여러 가지 상징이 알 듯 모를 듯 조각되어 있다. 양손으로 긁은 자국이 선명한 문손잡이도 인상적이다.
[좌] 왼쪽은 겟세마니의 문이다. 위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 근심과 번민에 휩싸여 기도하는 예수가, 아래에는 스승의 당부를 잊은 채 잠들어 있는 제자들이 조각되어 있다. [우] 오른쪽은 가시나무 관의 문이다. 상단에는 로마 군인들이 예수를 고문한 후 조롱하는 장면이, 하단에는 예수가 헤로데와 빌라도 앞에서 심문당하는 장면이 부조로 표현되어 있다. / 사진. © 김혜경
[좌] 왼쪽은 겟세마니의 문이다. 위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 근심과 번민에 휩싸여 기도하는 예수가, 아래에는 스승의 당부를 잊은 채 잠들어 있는 제자들이 조각되어 있다. [우] 오른쪽은 가시나무 관의 문이다. 상단에는 로마 군인들이 예수를 고문한 후 조롱하는 장면이, 하단에는 예수가 헤로데와 빌라도 앞에서 심문당하는 장면이 부조로 표현되어 있다. / 사진. © 김혜경
극단의 비통함과 두려움은 모든 언어를 집어삼킨다. 주체할 수 없는 오열과 몸서리쳐지는 절규 앞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수난의 파사드 전체에 흐르는 기조는 이와 같다. 아무런 장식도 없는 열두 개의 조각들이 왼쪽 아래에서부터 S자 형태로 위를 향해 이어져 있다.

첫 번째는 최후의 만찬 장면이다. 제자들의 표정에 수심이 가득하다. 예수의 오른편에 앉은 요한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뒤에서 보면 마치 목이 없는 것 같다. 오른쪽 아래에는 유다가 스승이 준 빵을 건네받고 고개를 떨군 채 괴로워하고 있다. 뒤돌아 앉은 예수의 어깨와 등이 한없이 무겁고 외로워 보인다. 유다의 발밑에 놓인 돌에 요한복음서 13장 27절이 적혀있다. “EL QUE ESTÁS FENT FES-HO DE PRESSA.” 빵을 포도주에 적셔 유다에게 건네며 예수가 했던 말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이다. 카탈루냐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무슨 일을 하든 빨리해라.”라는 의미다. 여러 가지 함축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
열두 개의 조각 중 첫 번째 작품인 최후의 만찬. 오른쪽 아래 유다가 빵을 받고 고개를 숙인 채 괴로워하고 있다. 뒤돌아 앉은 예수의 어깨와 등이 한없이 무겁고 외로워 보인다. / 사진. © 김혜경
열두 개의 조각 중 첫 번째 작품인 최후의 만찬. 오른쪽 아래 유다가 빵을 받고 고개를 숙인 채 괴로워하고 있다. 뒤돌아 앉은 예수의 어깨와 등이 한없이 무겁고 외로워 보인다. / 사진. © 김혜경
다음 작품은 예수에게 다가가 입 맞추는 유다를 묘사했다. 예수를 체포하려는 군인들과 성전 경비병들은 그의 얼굴을 알지 못했다. 이에 유다가 자신이 입 맞추는 사람이 예수라고 그들에게 미리 일러두었다. 유다가 예수에게 다가가 인사하며 입 맞추자 이를 신호로 군인들과 성전 경비병들이 예수를 체포했다. 유다 뒤쪽의 뱀은 배신을 상징한다. 왼쪽에는 마방진(魔方陣, Magic Square)이 만들어져 있다. 마방진은 자연수를 정사각형 모양으로 나열하여 가로, 세로, 대각선으로 배열된 각각의 숫자 합계가 모두 똑같게 만든 것이다. 어느 쪽으로 수를 더하든 합은 33이다. 이 숫자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의 나이를 가리킨다.
예수에게 다가가 입 맞추는 유다. 이를 신호로 군인들이 예수를 체포했다. 유다 뒤쪽의 뱀은 배신을 상징한다. 왼쪽의 마방진(魔方陣, Magic Square)은 예수의 나이를 가리킨다. / 사진. © 김혜경
예수에게 다가가 입 맞추는 유다. 이를 신호로 군인들이 예수를 체포했다. 유다 뒤쪽의 뱀은 배신을 상징한다. 왼쪽의 마방진(魔方陣, Magic Square)은 예수의 나이를 가리킨다. / 사진. © 김혜경
맨 위쪽에서는 예수의 죽음과 매장에 이어 부활이 이루어진다. 예수가 매달린 십자가 아래서 슬피 우는 여인들은 성모 마리아와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다. 예수는 우아하게 조각되지 않았다. 천 조각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 상태다. 십자가형에 처하는 죄수들에게는 옷을 입히지 않았다. 차마 나체로 그리거나 조각할 수 없어 천으로 가려왔을 뿐이다. 수비라치는 이를 과감하게 걷어냈다. 못도 손바닥이 아닌 손목에 박혀있다. 이로 인해 수비라치는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덕분에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이 완결되었다.
아래는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는 시몬과 예수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준 베로니카, 위쪽은 나체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와 슬피 우는 여인들. 가장 처절하고 비극적인 장면이다. / 사진. © 김혜경
아래는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는 시몬과 예수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준 베로니카, 위쪽은 나체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와 슬피 우는 여인들. 가장 처절하고 비극적인 장면이다. / 사진. © 김혜경
바르셀로나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화룡점정, 남쪽에 자리할 영광의 파사드는 어떤 모습일까?

구체적인 것은 건축이 끝나야 알 수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 그리고 최후의 심판에 초점이 맞추어질 것으로 보인다. 인간으로 태어나 가난한 사람들과 동고동락하다 십자가 위에서 처참하게 생을 마감했으나 그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했으며 많은 사람에게 이를 증명한 뒤에 승천했다. 이 모든 게 인류 구원을 위한 신의 계획이었고 이를 통해 신의 영광이 드러난다는 것을 영광의 파사드에서 보여주게 된다. 주 출입문의 현관에는 제단 발다키노를 장식했던 것과 같은 성령의 은사를 기리는 일곱 개의 기둥인 지혜, 슬기, 경륜, 용기, 지식, 공경, 경외의 큰 기둥이 세워지고, 기둥 꼭대기에는 일곱 가지 천상의 미덕인 친절, 근면, 인내, 자선, 절제, 겸손, 순결이 묘사되며, 기둥 아래에는 일곱 가지 대죄인 탐욕, 정욕, 교만, 폭식, 게으름, 분노, 시기가 표현될 것이다. 영광의 파사드 앞은 마요르카 거리(Carrer de Mallorca)다. 대성당 정면과 마요르카 거리에는 지하 통로가 건설된다. 현관에 도달하려면 악마, 우상, 거짓 신, 이단, 분열 등으로 장식된 땅속의 길을 건너가야만 한다.

영광의 파사드를 완성하려면 마요르카 거리와 연결되는 지하 통로를 만들어야 하고, 큰 중앙 계단도 설치해야 하며, 앞길을 주 출입구에 걸맞게 정비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건물이 들어서 있다. 바르셀로나시와 가톨릭교회는 물론 지역 주민들과도 원활한 소통과 협의가 이루어져야 풀릴 수 있는 문제다. 가우디가 성당을 설계할 때는 주변이 허허벌판에 가까운 공터였다. 따라서 지하 통로와 거대한 계단 등을 구상할 수 있었다. 난제가 해소되어 가우디 서거 100주기가 되는 2026년 영광의 파사드와 예수 그리스도의 환기 탑이 완성된다 해도 세부적인 장식과 후속 작업까지 마무리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성당의 옆면을 따라 세워진 탑 꼭대기에는 열두 가지 과일과 포도, 밀이 다채롭게 모자이크되어 있다. 과일은 성령의 열매를, 포도와 밀은 포도주와 빵, 즉 성체 성사를 상징한다. / 사진. © 김혜경
성당의 옆면을 따라 세워진 탑 꼭대기에는 열두 가지 과일과 포도, 밀이 다채롭게 모자이크되어 있다. 과일은 성령의 열매를, 포도와 밀은 포도주와 빵, 즉 성체 성사를 상징한다. / 사진. © 김혜경
복음사가들의 탑 중앙에 172.5m 높이의 예수 그리스도의 탑이 완공되면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당이 된다. 현재까지 제일 높은 성당은 161.5m의 독일 울름 대성당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 11m 더 높다. 가우디는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높은 몬주익 언덕이 177.72m이므로 성당은 이보다 더 낮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의 창조물인 자연보다 인간이 만든 건축물인 성당이 높으면 안 된다고 여긴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탑이 세워지면 그전까지 고딕 양식의 성당에서 주로 사용하던 벽을 지지해 주는 버팀목인 버트레스나 플라잉 버트레스가 없이 건축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당이 될 것이다.
여섯 개의 환기 탑이 하나씩 완성되어 가고 있다. 날개 달린 네 명 복음사가의 탑은 135m, 별 모양 성모 마리아의 탑은 138m, 중앙에 세워지는 그리스도의 탑은 172.5m다. / 사진. © 김혜경
여섯 개의 환기 탑이 하나씩 완성되어 가고 있다. 날개 달린 네 명 복음사가의 탑은 135m, 별 모양 성모 마리아의 탑은 138m, 중앙에 세워지는 그리스도의 탑은 172.5m다. / 사진. © 김혜경
가우디의 건축을 건축의 차원에서만, 건축가의 시선으로만 보고 평가하고 이해하려 한다면 많은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 도무지 풀리지 않는 난해한 문제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가우디 생전에 함께 건축에 참여했던 주셉 프란세스크 라폴스와 프란세스크 폴게라는 자신들이 공동 집필한 책 『GAUDI 1928』에서 가우디 건축을 이해하는 법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가 믿음의 눈을 벗어나 가우디를 본다면, 그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무신론자가 사랑하는 것은 어쩌면 그의 작품의 한 모습일 뿐, 그것의 종합된 상태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전망대에서 내려가는 나선형 계단. 거대한 달팽이 속처럼 보인다. 천천히 걸으며 내가 어떻게 걸어왔고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를 향해 걸어가야 할지 묵상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 사진. © 김혜경
전망대에서 내려가는 나선형 계단. 거대한 달팽이 속처럼 보인다. 천천히 걸으며 내가 어떻게 걸어왔고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를 향해 걸어가야 할지 묵상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 사진. © 김혜경
바르셀로나에 머무는 동안, 밥 먹는 시간보다 더 오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주변을 맴돌았고, 성당 내부를 샅샅이 훑고 다녔다. 다리가 아프면 어디든 앉아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때마다 유언과도 같은 가우디의 목소리가 종소리처럼 귓가에 은은히 울려 퍼졌다.

“슬프게도 내 손으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 내 뒤를 이어 완성할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고, 이러한 과정에서 성당은 장엄한 건축물로 탄생할 것이다. 시대와 함께 유능한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남기고 사라져 갔다. 그렇게 해서 아름다움은 빛을 발한다.”

유승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