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로스(Adolf Loos)는 흔히 ‘장식은 범죄다’라는 문장으로 회자된다. 이 문장만 보면 그가 추구한 공간은 아무 장식 없이 구조만을 드러내는 새하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모던한’ 공간이어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정확히 얘기하면 그는 '장식과 범죄'라는 에세이에서 장식을 뒤처짐이나 퇴화현상, 노동력과 자본의 낭비라고 했으며1) 그가 '장식'이라 칭한 것들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또 다른 에세이 ‘피복의 원리’에서 “바닥용 양탄자도 벽걸이용 양탄자도 제대로 된 자리를 잡아 줄 구조적인 뼈대가 필요하다. 이 뼈대를 만들어낸 것이 건축가의 두 번째 과제다.”2) 라고 하며 벽을 세우는 행위보다 재료를 고려하는 것을 건축이 가야 할 올바른 길의 앞에 둔다. 뿐만아니라 “나무는 모든 색으로 칠해도 되지만 나무색은 안 된다”며3) 재료의 진실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손에서 탄생한 몇몇 공간들은 처음 보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화려하다. "장식은 범죄라더니?"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곳에는 정말로 장식이란 없다. 그가 중요시한 '진실한 재료'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1930년에 완공된 체코 프라하의 '빌라 뮬러(Villa Müller)'는 이러한 로스의 생각이 집대성된 걸작이다. 3인 가족을 위해 설계된 이 집은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하부에는 거실과 식당 등의 공적 공간을, 상부에는 침실과 같은 사적 공간을 배치하여 공간의 위계에 따른 재료의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구조의 밀도와 불투명성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내부를 일련의 피복(linings)으로 경험한다”는4) 해설처럼, 이 건물에서 공간 경험은 형태와 구조보다 재료의 피복이 만들어내는 표면의 효과에 의해 먼저 설명된다.
빌라 뮬러 거실. / 사진 출처. 프라하 시립 박물관 홈페이지 캡처
이곳에 재료가 적용된 방식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공적–사적의 축이다. 빌라 뮬러의 중심이자 가장 공적인 성격이 강한 거실에는 녹색 줄무늬가 선명한 치폴리노(Cipolin) 대리석을 세로결로 시공해 높은 천장의 수직성을 극대화한다. 북매칭 방식으로 (무늬가 좌우대칭이 되도록 시공하는 방식) 형성된 이 대리석의 강렬한 패턴은 보는 이의 시각을 압도하는데, 바닥에 오크 수종의 마루를 헤링본 패턴으로 시공함으로써 이 화려함을 안정감 있게 받아준다. 이 거실과 시각적으로 연결된 다이닝룸은 어두운 마호가니가 천장부터 벽과 가구까지 지배해 거실과는 또 다른 화려함과 무게감을 형성한다.
반면 가장 사적인 공간인 침실에는 낭만적인 풍경을 보여주는 패턴의 벽지가 사용되어 방에 한 편의 이야기가 떠다니는 것 같은 인상을 형성하며 공적공간과는 다른 아늑함을 형성한다. 또 다른 사적공간인 부인의 방(Boudoir)과 드레스룸들에는 레몬 나무, 오크, 단풍나무(Maple)처럼 마호가니보다 훨씬 가볍고 밝은 색감과 무늬의 나무들이 공간의 표면을 형성하고 있다.
빌라 뮬러 거실. / 사진 출처. 프라하 시립 박물관 홈페이지 캡처
빌라 뮬러 사적공간인 부인의 방. / 사진 출처. 프라하 시립 박물관 홈페이지 캡처
두 번째 축은 당시의 통념에 기반한 남성성–여성성의 구분이다. 라이브러리는 다이닝룸과 동일하게 어두운 마호가니를 전체 공간에 사용해 남성적 위상을 부여하고, 중앙의 난로에는 델프트 타일(Delft tiles)을 사용하여 무거운 분위기에 위트를 더했다. 반면 바로 옆인 부인의 방에는 밝은 레몬 나무와 플라워 패턴의 직물을 사용해 여성의 공간임을 암시하였다. 이와 같은 구분은 드레스룸에도 적용하여 일견 비슷해 보이는 공간이지만, 남성의 공간에는 잘 가공된 오크를, 여성의 공간에는 그보다 밝은 색감의 단풍나무를 사용했다,
빌라 뮬러 내부의 서재. / 사진 출처. 아돌프 로스 홈페이지
위에서 설명한 두 축과 무관하게 아이 방에는 빨강-노랑-파랑의 강렬한 원색을 사용하여 아이의 공간임이 단번에 느껴질 수 있도록 하였다. 이곳은 문보다 낮은 높이에서 색의 적용을 마감했는데, 이는 높은 천장고에 비해 아이가 실제로 느끼는 공간의 높이를 낮게 함으로써 안정감을 느끼게 하려는 배려였을 것이다. 또한 바닥 여기저기에 많이도 깔린 오리엔탈 카펫들의 화려함은 그보다 강렬한 공간에 녹아들며 나무와 돌의 텍스쳐가 너무 강하게 전달되는 것을 완화함으로써 공간에 오히려 안정감을 부여한다.
빌라 뮬러 내부의 아이방. / 사진 출처. 아돌프 로스 홈페이지 캡처
공간별로 이토록 독립적인 재료의 사용을 보여주는 이 집은 각 공간이 구성되는 방식에서도 독립성을 가진다. 라움플랜(Raumplan) 방식으로 설계된 공간은 개별공간들이 고유한 높이와 위치를 확보하도록 계획되어 층 단위의 2차원적 구성이 아닌 3차원적 배열을 통한 공간 조직을 보여준다. 이처럼 독립성이 강한 공간들의 조합은 전체 공간이 원활한 흐름을 가지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으나, 이곳에는 중앙에 보이드를 두어 (심지어 천창으로 자연광이 들어오는) 각 공간의 연결성과 물리적, 시각적인 흐름을 원만하게 해결하였다. 이로써 독립적으로 보이는 공간들이 사실은 서로 잘 이어지며 오히려 공간마다 변화하는 재료의 시퀀스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공간 중앙에 천장으로 자연광이 들어오는 보이드를 두었다. / 사진출처. 프라하 시립 박물관 홈페이지
그러나 이 견고한 집에도 비극은 찾아왔다. 194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주의 쿠데타 당시 집은 국유화되었고, 이후 국영 출판사와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로 쓰이는 과정에서 가벽이 세워지고 다른 재료들이 덧칠해지며 공간은 훼손되었다. 하지만 집의 안주인이었던 밀라다 뮬러오바(Milada Müllerová)는 가구와 예술품을 미술관에 기증 및 판매해 이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했고, 자신은 가장 작은 방에 머무르면서도 끝까지 집을 떠나지 않았다. 지금의 빌라뮬러는 그녀의 이러한 필사적인 노력 덕분에 완전히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1997년이 되어서야 프라하시의 주도로 빌라 뮬러의 복원작업이 진행되었다. 이때 공간에 덧씌워진 재료들을 걷어내고 본래의 물성을 그대로 회복하는 것이 복원작업의 핵심이었다고 한다. 그 결과 현재 빌라 뮬러는 박물관이자 문화유산으로 시민들에게 제한적으로나마 그 문을 열고 있다.
아돌프 로스가 범죄 취급을 했던 장식은 헛되이 노동력을 착취하고 시대착오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얼핏 보면 화려해 보이는 빌라 뮬러는 그러한 장식이 아닌, 돌과 나무가 자연의 시간을 품어 빚어낸 무늬들로 채워진 가장 진실한 장소였다. 역사적 격변과 비극을 견디고서도 이 집이 끝내 본래의 존엄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시간을 버텨낸 재료들의 단단한 진실함이 그 집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배세연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조교수
1) Loos, A. (2021). 장식과 범죄 (이미선 역). 민음사. pp. 107-108. 2) 위의 책, p. 160 3) 위의 책, p. 164 4) van Duzer, L., & Kleinman, K. (1994). Villa Müller: A work of Adolf Loos. Princeton Architectural Press. p.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