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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년 전 이집트 달력 뜯어보니…‘오늘의 운세’ 뺨친다
[arte] 박소연의 영국 소장품 아카이브
英소장품으로 본 달력의 역사
인간은 언제나 신을 이해하려 했다
파피루스 달력에는 상세한 행동지침
'밖에 나가면 안되는 날' '해지면 뒤돌아 보지 말 것' 등
英소장품으로 본 달력의 역사
인간은 언제나 신을 이해하려 했다
파피루스 달력에는 상세한 행동지침
'밖에 나가면 안되는 날' '해지면 뒤돌아 보지 말 것' 등
새해가 시작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달력을 바꾼다. 오늘날 날짜와 시간은 스마트폰이나 전자 기기를 통해 자동으로 바뀌기 때문에 달력이 하나의 ‘사물’이라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하지만 박물관의 소장품들을 들여다보면, 달력은 단순한 날짜 표가 아니라 시간을 이해하고 관리하려는 인간의 사고가 담긴 장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역사 속 인류가 만든 몇 가지 달력을 영국의 소장품들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에서 시간이 어떻게 사물의 형태로 구현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18세기 영국에서 제작된 율리우스력과 그레고리력이 담긴 만년형 달력.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나라들은 윤년을 세는 그레고리력을 따르고 있다. / 이미지 출처. 영국 과학박물관/© The Board of Trustees of the Science Museum
인류의 달력은 선사시대부터 사용된 흔적이 보이지만, 이들은 오늘날의 일정 관리 도구와는 성격이 다르다. 영국박물관에 소장된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 달력에는 각 날짜가 ‘좋은 날’과 ‘나쁜 날(빨간 글씨)’로 구분되어있다. 나쁜 날의 예시로는 ‘밖에 나가지 말 것. 해가 질 때 뒤를 돌아보지 말 것.’ 등이 적혀 있고, 좋은 날에는 ‘이날은 신이 그의 마음을 얻은 날이다. 잔치를 여는 날이다’ 등이 쓰여 있다. 여기서 시간은 균등하게 흘러가는 단위가 아닌 신의 의지와 길흉으로 나뉜 질서였다. 이때의 달력은 날짜 기록을 위한 도구이기보다 행동을 판단하는 기준서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후기 고대 이집트 문명 시기에 제작된 파피루스 달력, 기원전 1225년 경. / 이미지 출처. 영국박물관/© The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중세와 근대를 거치며 인류는 점차 계산이 가능해진 달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영국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17세기 독일에서 제작된 회전식 만년형 달력 메달은 앞, 뒤, 가운데, 총 세 겹의 금속 원판으로 제작되어 있으며, 판을 돌리면서 날짜와 요일, 절기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제일 바깥에 위치한 원판의 빈 부분에 내부 원판의 내용을 맞춰가며 조정할 수 있다. 첫 번째 면에는 큰 원 테두리 속 내부 원판의 7개의 숫자를 볼 수 있고, 그 위에는 일주일이 표로 새겨져 있다. 내부 원판에는 숫자 1부터 31일이 새겨져 있어 돌려가며 해당 주의 날을 조정할 수 있다. 두 번째 면에서는 다섯 개의 원 안에 축제일, 월, 별자리, 낮과 밤, 일출과 일몰 시간이 12개로 나뉘어 새겨져 있으며 위에 다섯 칸, 아래에 두 칸을 한 번에 볼 수 있게 설계되었다. 이 메달 달력은 손으로 직접 조작하며 들고 다닐 수 있는 휴대성이 큰 장점이 있으며, 시간을 더 이상 고정한 채 확인하는 것이 아닌, 개인이 소장하며 다룰 수 있는 휴대성 정보로 전환하였다.
회전식 만년형 달력 메달 (Perpetual calendar medal), 17세기 독일. 여러 겹의 금속 원판을 돌려 날짜와 절기를 조절할 수 있도록 제작된 은판 메달. 가운데 나사로 고정되어 있다. / 이미지 출처. 영국박물관 공식 홈페이지. © The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또한 산업화와 함께 삶의 리듬이 점차 표준화되면서, 시간은 더 이상 자연에 맡겨진 것이 아니라 계산되고 관리되어야 할 대상이었다. 특정 연도에 한정되지 않고 날짜와 요일을 직접 조정할 수 있도록 설계된 만년형 달력은, 시간의 흐름을 ‘보는 것’에서 ‘활용하는 것’으로 지속적인 사용을 전제로 한 실용적인 달력이었다. 영국 과학박물관이 소장한 만년형 탁상 달력을 보면, 이 시기의 만년형 달력은 주로 사무용으로 만들어졌으며, 실용적으로 쓸 수 있도록 탁상형 또한 많이 제작되었다. 실용적인 측면이 부각되면서 인기를 끌었고, 점차 화려한 장식이 더해지며 선물용이나 장식용으로 발전해나갔다.
만년형 탁상 달력, 1915-1935년 추정, 영국 과학박물관 소장. 나무 프레임 안에 월·일·요일이 각각 회전하는 구조로 제작되어, 사용자가 직접 날짜를 조정하며 활용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매년 혹은 매월 교체하는 종이 달력과 달리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이미지 출처. 영국 과학박물관 © The Board of Trustees of the Science Museum
서로 다른 시대의 달력들을 통해, 시간은 결코 자연 그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끊임없이 해석하려 노력한 대상임을 확인하게 된다. 천체의 주기를 관찰해 길흉을 구분하던 고대 문명의 달력부터 현재 우리가 스마트폰을 통해 사용하는 달력에 이르기까지, 달력은 언제나 시간을 이해하고 관리하려는 인간의 태도를 담아 왔다. 디지털 화면 속 시간과 달리, 물리적인 달력은 한 번 더 시간을 인식하고 조정해야 하는 과정을 필요로한다. 다양한 달력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진 시간 개념을 다시 한번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박소연 테이트 미술관 수장고 코디네이터
박소연 테이트 미술관 수장고 코디네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