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영웅을 예우하지 않는 사회
화마 현장 주저없이 뛰어가
국민 목숨 살리는 소방관들
'고귀한 희생에 국가가 보답'
첫 소방병원 개원 앞뒀지만
지방 기피에 의사 못 구해
의료계 자발적 지원 절실
이지현 바이오헬스부 차장
국민 목숨 살리는 소방관들
'고귀한 희생에 국가가 보답'
첫 소방병원 개원 앞뒀지만
지방 기피에 의사 못 구해
의료계 자발적 지원 절실
이지현 바이오헬스부 차장
성스러운 종교의식 같은 집 청소도 마찬가지다. 출근한 뒤 혹여나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고가 생길까 봐 미리 대비하는 것이다. 나 대신 누군가 어질러진 집을 보며 슬픔과 회한을 키울까 봐 걱정돼 버릇 같은 배려가 몸에 배었다. 마음 한편에 늘 ‘죽음’을 품고 살다 보니 살림은 자연히 단출해졌다. A씨뿐만이 아니다. 소방관들에겐 이런 행동이 낯설지 않다. A씨는 “소방서 개인 관물대에 유서를 써서 보관하거나 컴퓨터 바탕화면에 남기고 싶은 말을 저장해두는 소방관도 많다”고 했다.
현장에서 마주한 공포와 절망, 무력감, 상실감은 쌓여 병이 됐다. 가장 흔한 것은 수면장애다. 눈을 감으면 잊고 싶은 기억이 떠올라 잠을 이루지 못한다. 고통을 지우려 술에 의존하거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같은 트라우마를 앓는 사람도 많다. 소방관 10명 중 4명 이상이 정신건강 문제를 호소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조직 내에서 건강 상담 프로그램, 심리치료 지원 등을 늘리고 있지만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다. 수시로 울리는 우레 같은 사이렌 소리에 노출돼 난청은 ‘직업병’이 됐다. 타인의 생명을 살리느라 바빠 정작 자신의 건강은 살피지 못하는 소방관도 많다. 출동 탓에 끼니를 제대로 챙기기도 쉽지 않은 데다 제때 병원에 못 가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키우는 일이 흔하다.
이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공간이 올해 6월 충북 음성에 정식으로 문을 연다. 국내 첫 국립소방병원이 지난해 말 시작한 시범운영을 마치고 정상 가동에 들어가면서다. 국내엔 경찰을 위한 경찰병원은 있었지만 소방관을 위한 병원은 없었다. 병원 설립에 든 비용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했다. 현대자동차 등 기업들도 고압산소 치료기, 로봇재활 기기, 특수구급차 등을 기부해 힘을 보탰다. 의료진 구성 등 운영은 서울대병원이 맡았다.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에서 구급대를 도와 환자 생명을 지키던 곽영호 병원장이 새 병원을 이끈다. 소방관들이 많이 호소하는 정신질환은 물론 화상, 재활 치료 분야에 초점을 맞췄다. 소방관과 가족들은 이곳에서 무료로 진료받을 수 있다. 국민을 위해 애써온 이들을 위해 국가와 기업이 보답에 나선 것이다.
좋은 취지지만 벌써부터 고민이 크다. 극심한 지역병원 의료 인력난 탓이다. 이 병원 근무 의사 상당수는 서울대병원 교수로 채용한다. 사택으로 신축 아파트까지 내걸었지만 지원자를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같은 필수과 등의 의사 9명을 채워 겨우 개원 최저 인원만 맞춘 상태다.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아직 구하지도 못했다.
의사 채용 목표는 48명. 일각에선 이를 두고 ‘꿈 깨야 한다’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온다. 의사보다 사정이 낫지만 간호사와 의료기사 등도 구인난이 심하긴 마찬가지다. 완전한 정상 가동은 요원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에 추가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소방관은 우리 시대의 영웅이다. 이들을 보살피는 일 자체로도 의미 있고 고귀한 보답이다.” 곽 병원장의 말이다. 의료인들의 자발적 지원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