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추천 뉴스
[백승현의 시각] 누구를 위한 정년연장일까
우연일까. 세밑 한파가 몰아치는 요즘 자고 나면 뉴스에서는 산업계 전반의 희망퇴직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1960년대생이 일거에 정리됐다는 기업의 임원 인사 소식은 별나라 얘기로 치더라도, 고작 만 45세면 이미 정리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그런가 하면 농어촌이나 뿌리산업 공장을 주로 보여주는 TV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근로자는 대부분 70대다.
정년 채우고 퇴직 17.3%뿐
지난달 국회에서는 눈길을 끄는 행사가 있었다. 국회미래연구원이 주최한 인구포럼이었는데, 주제가 정년 연장이었다. 발제에 따르면 지난해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52.9세였고, 퇴직자 중 법정 정년을 채운 비율은 17.3%에 불과했다. 전체 퇴직자가 100명이라면 정년을 채운 사람은 17명뿐이고, 80% 이상의 퇴직자가 권고사직이나 명예퇴직 등 비자발적 사유로 일터를 떠났다는 얘기다. 그뿐만 아니라 정년퇴직자의 33.6%는 1000명 이상 대기업 출신이며, 50인 이상 사업체 소속 근로자가 74.6%에 달했다.민주당 정년연장특별위원회는 최근 현행 만 60세인 법정 정년을 2028∼2029년부터 8∼12년간 65세까지 단계적으로 연장하되, 65세가 되기 전에 정년을 맞는 사람은 퇴직 후 1~2년간 재고용하는 내용의 세 가지 안을 제시했다. 2028년 정년 연장을 시작해 2036년까지 2년에 1년씩 늘리자는 1안, 2029년 시작해 2039년까지 10년간 늘리되 61·62세로는 3년에 1년씩, 63·64세로는 2년에 1년씩 늘리는 2안, 2029년 시작해 2041년까지 12년간 3년에 1년씩 늘리는 게 3안이다.
대다수 근로자엔 '그림의 떡'
노사 모두의 반대로 일단 논의는 답보 상태지만, 정년 연장 논의의 핵심이 시기나 숫자의 문제가 돼선 안 된다. 정년을 아무리 늘려놔 본들 17.3%만 혜택을 보는, 그것도 고액 연봉을 받는 대기업과 공공부문 근로자들만의 얘기일 뿐이다. 2023년 기준 전체 사업체 종사자 2000만 명 가운데 30인 미만 사업장에 근무하는 사람이 1100만 명(55%)이다. 30인 미만 기업 중 정년제도를 두고 있는 비율은 20%에도 못 미친다.정년 연장은 2033년 국민연금 수급 연령 상향(63→65세)에 따른 소득 공백을 해소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올해 기준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은 월 67만원, 아무리 오래 가입했더라도 월 200만원을 넘기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들로 하여금 계속 고용하게 해 월 수백만원의 임금을 주도록 하겠다는 게 정년 연장이다. 연금개혁 실패를 기업에 전가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가뜩이나 부족한 청년 선호 일자리가 더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는 나 몰라라 하고, 노동시장 최상단 근로자만을 위한 노후 보장 논의는 첫 단추부터 잘못 채운 것이다. 정년을 연장하면 누가 혜택을 보고, 누가 피해를 입고, 누가 부담을 지는지, 이제는 솔직해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