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시내에서 20km가량 떨어진 곳에 있기에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이 콜로니아 구엘 성당이다. 종교 건축의 진수를 체험하고 싶다면 반드시 이곳을 방문하는 게 좋다. 에스파냐 광장 역에서 카탈루냐 자치정부 철도(FGC)를 타면 콜로니아 구엘 역까지 20여 분이면 도착한다. 콜로니아 구엘 역에는 역무원이 없다. 하지만 걱정할 건 없다. 콜로니아 구엘로 가는 길이 바닥에 발자국 모양으로 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마을로 들어서자 세 가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 높이 솟은 커다란 굴뚝이 보였다. 가우디 건축물 옥상에서 본 굴뚝이 아니라 공장에서 마구 뿜어져 나오는 연기를 배출하는 육중한 굴뚝이었다. 길가에 늘어선 플라타너스는 그라시아 거리에서 본 것들과 차이가 없었다. 여기저기 소나무 군락지도 있었다. 건물도 예사롭지 않았다. 개인 주택이든 공공건물이든 허투루 지은 집이 보이지 않았다. 중세의 어느 멋진 마을로 시간 여행을 온 것 같았다.
구엘이 바르셀로나 근교에 만든 산업 단지 안에 세워진 콜로니아 구엘 성당 전경.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이 성당은 구엘의 죽음으로 공사가 중단되면서 미완성 상태로 남았다. / 사진. © 김혜경
구엘이 바르셀로나 근교에 만든 산업 단지 안에 세워진 콜로니아 구엘 성당 전경.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이 성당은 구엘의 죽음으로 공사가 중단되면서 미완성 상태로 남았다. / 사진. © 김혜경
이 마을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게 되었을까? 바르셀로나 중심부에 공장을 지으려면 큰 비용이 들었고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교외 지역에 공장을 짓고 노동자들이 모여 살 수 있는 마을을 만들었다. 이렇게 조성된 산업 단지를 ‘콜로니아(Colònia)’라고 불렀다. 구엘 역시 산츠에 있던 직물 공장을 1890년 산타 콜로마 데 세르벨로로 이전했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이 생활할 마을을 건설했는데, 이 단지를 콜로니아 구엘이라고 한다. 악덕 자본가는 콜로니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교묘히 착취하면서 열악한 환경 속에 살도록 방치했지만, 구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높은 사회주의적 이념을 실천하고자 했다. 노동자들의 가족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큰 방과 넓은 창문이 있는 주택을 건축하는 것은 물론, 누구나 문화예술을 즐기고 종교 활동을 할 수 있게끔 극장, 도서관, 학교, 병원, 공원, 성당 등을 짓고자 했다.

마을에는 구엘 가족이 콜로니아에 머무는 동안 거주했던 농가가 있었고, 집 오른쪽에는 고통의 성모 소성당이 딸려있었다. 그러나 공장 건물이 하나둘 늘어나고 단지 조성이 진척되면서 주민 수가 많아지자 다 같이 모여 미사를 드리기에는 소성당이 너무 협소했다. 구엘은 가우디에게 규모가 큰 새 성당을 건축해달라고 부탁했다. 1898년의 일이다. 가우디는 마을을 둘러본 뒤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언덕 위의 땅을 부지로 지목했다. 가우디는 콜로니아의 설립 취지에 맞고 주변 자연환경과도 조화를 이루는 어머니 품처럼 따뜻한 성당을 도면 위에 그려냈다. 그런데 가우디가 건축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0년 뒤인 1908년이었다.

가우디는 10년 동안 무엇을 한 것일까? 필생의 역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건설하던 그로서는 수수께끼 하나를 해결해야만 했다. 그것은 돌을 쌓아서 만든 높다란 건물의 하중을 거뜬히 견뎌낼 수 있는 현수선 아치의 비밀을 밝혀내는 것이었다. 현수선은 밀도가 균일한 선이 양 끝만 고정되어 자체 무게만으로 드리워진 곡선이다. 이를 뒤집은 형태가 현수선 아치다. 현수선 아치는 모든 하중이 압축 응력으로만 작용해 인장 응력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가장 견고한 구조물을 만들 수 있다. 가우디는 높이 4m가량의 다중 케이블형 아치 모형을 설치한 다음 천장에 성당 평면도를 그려놓고 기둥과 벽이 교차하는 지지점에 케이블카 끈과 산탄총 총알이 든 자루를 치렁치렁 매달았다. 천장에 매달린 끈은 자연스럽게 쇠사슬 모양의 곡선을 만들어냈다. 가우디는 이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뒤집음으로써 자신이 원했던 기둥과 아치의 구조를 그려냈다. 콜로니아 구엘 성당 건축 과정에서 현수선 아치에 대한 광범위한 실험과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에 똑같은 설계를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성당 건축을 위해 설치된 다중 케이블형 아치 모형. 이 실험을 통해 가우디는 건물의 무게를 완벽히 지탱하면서도 곡선의 미학을 충분히 살린 자신만의 선을 만들 수 있었다. /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성당 건축을 위해 설치된 다중 케이블형 아치 모형. 이 실험을 통해 가우디는 건물의 무게를 완벽히 지탱하면서도 곡선의 미학을 충분히 살린 자신만의 선을 만들 수 있었다. /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건축 그리고 성스러움

방문자 서비스 센터에서 조금만 가면 소나무 숲 한가운데 콜로니아 구엘 성당이 나타난다. 지하층만 지어진 채 미완성으로 남았기 때문에 도시에 있는 웅장한 성당만 본 사람들은 규모가 너무 작아 당혹스러울 수도 있고 기존 성당과는 완전히 다른 파격적인 형태에 당황할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콜로니아 구엘 성당을 ‘크립타 가우디(Cripta Gaudi)’라고 부르기도 한다. 스페인어로 ‘Cripta’는 ‘지하 성당’, ‘지하 봉안당’, ‘지하 묘지’라는 뜻이다.

“건축은 빛과 벽돌이 짓는 시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현무암 기둥과 벽돌 기둥이 종려나무 잎처럼 활짝 펼쳐져 있는 포치(Porch)에 서자 건축가 김수근이 남긴 이 말이 생각났다. 한국 현대 건축을 대표한 인물로 꼽히는 그는 붉은 벽돌을 건축 재료로 많이 사용했다. 좌우에 늘어선 기둥과 천장 그리고 건물 외벽에 사용된 벽돌은 말끔한 벽돌도 있지만, 열을 과하게 가해 검게 태운 과소(過燒)벽돌도 보였다. 축조 방식이 전부 다른 벽돌들이 매끈하게 다듬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현무암과 새까만 화산암과 어우러져 원시의 신비감을 발산하고 있었다. 태고미(太古美)였다. 속(俗)의 세계에서 성(聖)의 세계로 가는 통로에 가우디가 숨겨둔 은유와 상징이 가득했다.
사선의 기둥들이 종려나무 모양으로 펼쳐져 있는 포치(Porch). 계단 아래는 벤치가 위에는 현관이 이어져 있고, 천장에는 콜로니아 구엘을 뜻하는 ‘C’와 ‘G’가 모자이크되어 있다. / 사진. © 김혜경
사선의 기둥들이 종려나무 모양으로 펼쳐져 있는 포치(Porch). 계단 아래는 벤치가 위에는 현관이 이어져 있고, 천장에는 콜로니아 구엘을 뜻하는 ‘C’와 ‘G’가 모자이크되어 있다. / 사진. © 김혜경
포치는 작은 계단을 사이에 두고 두 공간으로 나뉜다. 아래쪽은 쉬는 곳이다. 무거운 짐과 번뇌를 내려놓는 곳이기도 하다. 야트막한 담장과 거친 기둥이 잡석과 벽돌로 만들어져 있고, 양쪽에 기다린 의자가 놓여 있다. 천장을 보면 모자이크된 알파벳 ‘C’와 ‘G’가 눈에 띈다. 콜로니아 구엘의 머리글자다. ‘X’ 모양도 보인다. 성 안드레아의 십자가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이자 베드로의 동생이었던 그는 그리스에서 X자형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X자형 십자가를 선택한 건 그리스어 X는 ‘그리스도’라는 단어의 첫 글자이기 때문이다. 이후 X는 성 안드레아의 표식이 되었다. 그리스 문자의 첫 번째 자모 ‘A(알파)’와 마지막 자모 ‘Ω(오메가)’도 있다. 흰색 알파는 시작, 생명, 빛을 검은색 오메가는 끝, 죽음, 어둠을 의미한다. 어떤 오메가는 나비 모양으로 된 것도 있다. 밑에서 줄을 당겨 양쪽으로 여닫을 수 있게 만든 창문과 스테인드글라스도 나비를 연상시키는 형태다. 알과 유충 단계를 거쳐 성장을 거듭한 끝에 화려한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는 나비는 불완전과 추함에서 완전과 아름다움으로의 대전환을 의미하기에 죽음을 이기는 부활을 상징한다.
현관 중앙 쐐기돌에는 삼위일체 모노그램이, 그 아래에는 사추덕(四樞德)이 새겨져 있고, 성 안드레아의 순교를 상징하는 X 모양의 십자가 13개가 각각 다른 색으로 장식되어 있다. / 사진. © 김혜경
현관 중앙 쐐기돌에는 삼위일체 모노그램이, 그 아래에는 사추덕(四樞德)이 새겨져 있고, 성 안드레아의 순교를 상징하는 X 모양의 십자가 13개가 각각 다른 색으로 장식되어 있다. / 사진. © 김혜경
꽃과 나비를 연상시키는 스테인드글라스. 알과 유충을 거쳐 아름다운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는 나비는 불완전에서 완전으로의 전환을 의미하기에 죽음을 이기는 부활을 상징한다. / 사진. © 김혜경
꽃과 나비를 연상시키는 스테인드글라스. 알과 유충을 거쳐 아름다운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는 나비는 불완전에서 완전으로의 전환을 의미하기에 죽음을 이기는 부활을 상징한다. / 사진. © 김혜경
석회암을 다듬어 만든 문설주와 상인방을 지나 성당 내부로 들어섰다. 로마 제국 시절 박해를 피해 그리스도인들이 숨어들었던 비밀 지하 묘지 카타콤으로 향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 비명인지 감탄인지 모를 외마디가 절로 터져 나왔다. 그러고 나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전율이 느껴졌다. 신은 어느 곳에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가슴속에서는 바로 이곳이야말로 신이 임재(臨在, Presence)해 있는 공간이라는 감흥이 일었다. 진짜 성(聖)의 세계로 발을 내디딘 것이다.
붉은 벽돌과 빛이 어우러진 원시 동굴 같은 성당 내부. 중앙 제단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오른쪽 제단은 몬세라트의 성모 마리아에게, 왼쪽 제단은 성가정 전체에게 헌정되었다. / 사진. © 김혜경
붉은 벽돌과 빛이 어우러진 원시 동굴 같은 성당 내부. 중앙 제단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오른쪽 제단은 몬세라트의 성모 마리아에게, 왼쪽 제단은 성가정 전체에게 헌정되었다. / 사진. © 김혜경
이리저리 고개를 돌릴 틈도 없이 기둥 옆에 놓인 나무 의자에 앉았다. 가우디가 디자인한 2인용 의자였다. 피곤함과 산만함이 일거에 빠져나간 듯 편안하고 아늑했다. 눈을 감았다. 기도에 몰입했다. 무아의 경지라는 게 이런 것인가. 눈을 떴다. 앞 의자 뒤쪽에 가로로 된 평평한 나무가 달려 있었다. 밑으로 내렸다. 무릎을 꿇고 기도할 수 있게 만든 받침대였다. 다시 눈을 감았다. 얼마 만에 무릎을 꿇은 채 기도하는 것인지 몰랐다. 가우디의 기존 의자는 나무로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콜로니아 구엘 성당의 의자는 나무와 철을 조합해서 만들었다. 가우디가 목수를 시켜 만든 의자는 스무 개 남짓이었는데, 현재는 열세 개가량 남아 있다고 한다. 오늘날 성당 안에 있는 의자들은 복제품들이다. 무릎 받침대는 훗날 복제하면서 추가되었다. 의자 기둥들을 쇠로 만들었기에 무릎 받침대를 덧붙일 수 있었을 것이다.

눈을 떴다. 지하 성당은 붉은 벽돌과 빛이 어우러진 원시 동굴 같았다. 천장에서 쏟아져 내릴 듯 쌍곡면 포물선으로 이어진 돌들의 향연 속으로 신의 음성이 들려올 것만 같았다.
가우디가 디자인한 의자. 나무와 철을 조합해 만든 이 의자에 앉으면 저절로 기도가 나온다. 앞 의자 뒤쪽에 달린 평평한 나무를 밑으로 내리면 무릎을 꿇은 채 기도할 수 있다. / 사진. © 김혜경
가우디가 디자인한 의자. 나무와 철을 조합해 만든 이 의자에 앉으면 저절로 기도가 나온다. 앞 의자 뒤쪽에 달린 평평한 나무를 밑으로 내리면 무릎을 꿇은 채 기도할 수 있다. / 사진. © 김혜경
제단 뒤 성가대석에서 바라본 실내 모습.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의 형태가 하나도 같은 게 없이 제각각이다. 여기서 성가대가 찬미가를 부르고 실내악단이 악기를 연주했다. / 사진. © 김혜경
제단 뒤 성가대석에서 바라본 실내 모습.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의 형태가 하나도 같은 게 없이 제각각이다. 여기서 성가대가 찬미가를 부르고 실내악단이 악기를 연주했다. / 사진. © 김혜경
온기와 야성미

제단은 모두 세 개다. 왼쪽 제단은 성 가족에게 헌정되었다. 예수와 요셉과 마리아 형상이 세워져 있다. 오른쪽 제단은 성모 마리아에게 바쳐졌다.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봤던 ‘라 모레네타’가 보인다. 가우디는 힘겹게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안식처인 이 성당에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은 검은 성모 조각상을 배치함으로써 카사 밀라 꼭대기에 성모 마리아 조각상을 세우려다 뜻을 이루지 못한 쓰라린 기억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중앙의 메인 제단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천장 양쪽에서 내려온 가느다란 줄에 매달린 작은 십자고상이 보인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몬세라트 산타 코바 성당 정면 아치 속에서 본 예수다. 가우디는 카사 밀라에 이어서 콜로니아 구엘 성당에도 몬세라트를 옮겨 놓았다.
햇살 가득한 창 아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조각돼 있다. 가시 면류관을 쓴 채 고개를 떨군 예수의 옆구리에는 창에 찔린 자국이 선명하다. 거친 나무의 질감이 처연함을 더한다. / 사진. © 김혜경
햇살 가득한 창 아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조각돼 있다. 가시 면류관을 쓴 채 고개를 떨군 예수의 옆구리에는 창에 찔린 자국이 선명하다. 거친 나무의 질감이 처연함을 더한다. / 사진. © 김혜경
1914년에 이르러 구엘에게 여러 가지 재정적인 문제가 생긴데다 설상가상으로 제1차 세계 대전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구엘 공원 건설이 중단되었고 콜로니아 구엘 성당 건축 역시 더는 진척될 수 없었다. 구엘은 가우디에게 진행 중인 공사에 자금을 지원할 수 없게 되었다고 털어놓았고 가우디는 이를 받아들였다.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났으니 구엘의 사업이 회복되었더라면 미루어졌던 공사를 재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해 구엘이 유명을 달리함으로써 모든 가능성은 사라져버렸다. 끝내 공사는 미완성 상태로 남았다.

가우디의 의도대로 성당 건축이 완료되었다면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가우디가 1910년에 그린 성당 동쪽 정면 도면.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이대로 완공되었으면 세계 건축사와 교회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 되었을 것이다. /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가우디가 1910년에 그린 성당 동쪽 정면 도면.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이대로 완공되었으면 세계 건축사와 교회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 되었을 것이다. /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가우디는 지하 성당 위쪽에 미사를 드릴 수 있는 본당을 만들고 그 위에 여러 개의 탑을 세운 뒤 40m 높이의 돔으로 지붕을 씌울 계획이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축소판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훨씬 더 소박하고 자연스러웠을지 모른다. 포치 위쪽으로 계단이 이어져 현재 테라스에 세워진 석회암으로 만든 문설주와 상인방을 지나 본당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포치와 지하 성당은 어두운 색깔 위주로 장식되었다. 지상 본당과 탑과 돔은 하늘과 조화를 이루는 밝은 색깔을 사용했을 터이다. 가우디는 이 성당을 통해 지상에서 천상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가는 종교적 의미의 승천을 구현해내려 했기 때문이다. 탑 꼭대기에는 흰 비둘기가 세워졌을 게 틀림없다. 마을 이름 산타 콜로마는 성스러운 비둘기를 뜻하는 까닭이다. 가우디는 구엘 공원에 적용했던 것처럼 지하 성당은 예수의 무덤에 헌정하고, 지상 성당은 골고타 언덕에 헌정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종탑은 가우디가 세상을 떠난 후에 만들어졌다. 종신에 타종하면 종소리가 아치를 통해 마을 전체에 울려 퍼진다. 성당 위층 테라스에 올라 종탑과 미완의 출입문인 문설주와 상인방을 바라보면서 가우디를 생각했다. 콜로니아 구엘 성당은 가우디가 증축이나 개축이 아닌 백지상태에서 부지 선정부터 시작한 최초의 성당 건축이었다. 건축주가 구엘이었기에 그는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자신의 철학과 신앙을 하나의 건축물에 온전히 투영할 수 있었다. 철학자들은 말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으나 가우디는 손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해냈다.
성당 외벽과 종탑. 짙은 색 벽돌과 돌이 불규칙하게 배열된 벽에 덮개가 붙은 물방울 모양의 커다란 창문들이 나 있다. 금세라도 뎅그렁뎅그렁 종소리가 울려 퍼질 것만 같다. / 사진. © 김혜경
성당 외벽과 종탑. 짙은 색 벽돌과 돌이 불규칙하게 배열된 벽에 덮개가 붙은 물방울 모양의 커다란 창문들이 나 있다. 금세라도 뎅그렁뎅그렁 종소리가 울려 퍼질 것만 같다. / 사진. © 김혜경
예명인 이타미 준으로 더 많이 알려진 재일교포 건축가 유동룡은 바람의 건축가로 불린다. 그는 그리움의 땅 제주에 포도호텔, 수풍석박물관, 방주교회 같은 작품을 남겼다. 본질에 집중하며 근원을 탐구했던 그는 현대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적 요소가 빠져있다고 토로한 적 있다. 그가 지적한 것은 ‘인간의 온기’와 ‘건축의 야성미’였다. 미완의 성당 테라스에 올라 카탈루냐의 광활한 자연을 마주하면서 가우디의 마음을 읽어내려던 찰나 유동룡이 떠오른 것은 그가 말한 인간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온기와 건축에서만 알아챌 수 있는 야성미를 바로 이 성당에서 감지한 덕분이리라. 나는 오래도록 그 자리에 서 있고 싶었다. 스스로 가우디가 만들어놓은 온기와 야성미의 정수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축은 자연 위에 군림하지 않고 자연 속에 스며들어야 한다. 단 하나의 소나무도 베지 않고 성당을 지음으로써 가우디는 건축과 인간과 자연 사이에 놓여 있던 경계를 허물었다. / 사진. © 김혜경
건축은 자연 위에 군림하지 않고 자연 속에 스며들어야 한다. 단 하나의 소나무도 베지 않고 성당을 지음으로써 가우디는 건축과 인간과 자연 사이에 놓여 있던 경계를 허물었다. / 사진. © 김혜경
유승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