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보르스카를 따라, 다시 만난 쇼팽

새해를 앞두고 틀림없이 좋은 일이 생기는 비밀을 하나 공유해본다. 좋아하는 예술가들이 공통으로 좋아한다고 밝히거나 언급하는, 하지만 아직 자신에게 낯선 작가의 작품을 접해보는 것이다. 나에게는 폴란드의 시인 쉼보르스카가 그중 한 명이었다. 시는 아직 어렵다며 미적거리면서도 쉼보르스카의 책들을 뒤적이며 조금씩 스며들던 중 그의 서평집 『읽거나 말거나』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남몰래 쇼팽을 사랑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물론 짝사랑이다.” 이건 보란 듯한 ‘최애의 최애’ 소재가 아닌가. 역시 애호의 가계도를 따르다 보면 즐거운 일이 뒤따른다.
1996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1923~2012) / 사진. ⓒJacek Bednarczyk, 출처. ⓒFundacja Wisławy Szymborskiej
1996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1923~2012) / 사진. ⓒJacek Bednarczyk, 출처. ⓒFundacja Wisławy Szymborskiej
“아무튼 내가 그를 사랑하는 건, 그가 행운아였기 때문이 아니라, 행운을 누리는 가운데서도 자기 자신에 대해 냉철하게 거리를 둘 줄 알았고, 타인의 문제에 대해서는 늘 따뜻한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_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읽거나 말거나』

이것이 시인이 쇼팽을 사랑한다고 밝힌 이유다. 쉼보르스카가 어떤 구체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쇼팽의 성품을 한 문장으로 꿰어 확신했는지는 알기 어렵다. 오래전 세상을 떠난 사람이 어떤 이였는지 간단하게 정의하는 건 쉽지 않다. 누구의 관점에서 그 인물을 회상하느냐, 그의 생애 중 어떤 시기에 초점을 맞추느냐 등에 따라 상당히 상반된 특징이 발견되기도 하고 한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다면적으로 그려지는 때도 있다. 하긴, 이것은 산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지만.

사실 쇼팽에 관한 여러 기록을 살펴보면 그가 교습하다가 의자를 던질 정도로 제자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거나, 머릿속에 떠올랐던 곡을 정확하게 악보로 옮기지 못해서 방에서 울부짖고 펜을 부러뜨려 상대를 쩔쩔매게 했다는 식의 일화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쇼팽을 예민하고 감정 기복이 심하고 자기중심적인 인물이었다고만 정의할 수는 없다. 그에게 ‘자기 자신에 대해 냉철하고 타인에게 따뜻한’ 면 또한 분명히 엿보이기 때문이다.

쇼팽을 평생 따라다닌 ‘떠나온 자의 죄책감’

쇼팽은 스무 살 무렵, 당시 지배국이던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일촉즉발이던 불안한 정세 속에서 자신의 음악적 미래를 위해 폴란드를 떠났다. 그리고 그가 빈에 도착한 지 일주일 후, 바르샤바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쇼팽과 함께 떠나왔던 친구는 고국으로 돌아가 혁명 세력에 합류하기로 했지만, 어찌할지 모르던 쇼팽은 친구의 설득 끝에 빈에 남았다. 그는 이후로도 줄곧 타지에 머물며 고국의 비극적인 소식들을 접했다. 이러한 상황의 지속은 쇼팽이 자신 지독하게 괴롭히도록 만들었다.

“아마 이젠 내겐 어머니도 없고, 아마 어떤 러시아 놈이 어머니를 살해했을지도 모른다. 누이들은 미친 듯 저항하고 아버지는 절망에 빠지고 아버지가 하실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고. 그런데 나는 여기 있어.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_ 바르샤바 함락 소식을 듣고 슈투트가르트에서 쓴 쇼팽의 일기 중, 제러미 니콜러스 『쇼팽, 그 삶과 음악』
19살 쇼팽의 모습 / 사진 출처. picryl
19살 쇼팽의 모습 / 사진 출처. picryl
타인에게 사려 깊은 동시에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들은 대게 수치심이나 자기비판에 취약하다. 다른 사람의 감정과 고통을 세심하게 느끼면서 ‘내가 더 잘할 수는 없었을까’ ‘뭔가 도울 수는 없었을까’ 하는 잣대를 자신에게 들이대기 때문이다. 쇼팽에게도 그런 면이 있었다. 그래서 음악적인 명성이 차츰 높아지고 화려한 파티와 연주회 속에서 보내는 나날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고국에서 죄 없이 상처 입거나 죽어갈 이들을 자주 떠올리던 그에게, 눈앞의 성공은 씁쓸하고 혼란스러웠는지도 모른다.

타지에서 폴란드의 정서를 가득 담은 작품들을 끊임없이 써 내려간 것 또한 고국의 사람들에게 커다란 위로와 응원이 되었을 것이다. 폴란드의 민요와 리듬은 늘 마주르카, 폴로네즈 안에 살아있었고, 바르샤바를 뒤흔든 혁명에 대한 자책감과 울분은 에튀드 c단조 Op.10-12 '혁명'에, 떠들썩한 사교계 한복판에서 느낀 혼란은 발라드 제1번 g단조 Op.23에(『쇼팽』, 김주영) 새겨졌다. 그럼에도 그는 종종 자신의 무력감에 눌렸고, 그 비통함을 때로 편지나 일기에 남겼다. 쉼보르스카가 말한 “자기 자신에 대한 냉철한 거리두기”의 면모는 이런 지점에서 선명해진다.

[조성진, 쇼팽 에튀드 c단조 Op.10-12 '혁명']

오직 인간에게만 주어진 부끄러움

“대머리 독수리에게는 자신을 스스로 비판할 거리가 아무것도 없다.
검은 표범에게는 양심의 가책이란 말이 낯설기만 하다.
피라니아는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는 데 일말의 의혹도 품지 않는다.
방울뱀은 무조건 자기를 추켜세운다.
(후략)”
_ 「자아비판에 대한 찬사」 중,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끝과 시작』

쇼팽과 시대는 달랐지만, 쉼보르스카 역시 고국 폴란드가 제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며 아우슈비츠라는 전무후무한 비극을 겪는 모습을 지켜본 세대였다. 전체주의와 파시즘 정권 아래에서 ‘자아비판’은 종종 본래의 의미를 잃고 악용되기도 했다. 민중을 손쉽게 지배하기 위해, 자신의 가치관을 부정하고 자신을 비난하게 함으로써 심리적으로 무력화하고자 자아비판을 강요한 것이다.

그러나 위의 시에서 쉼보르스카가 얘기하는 자아비판은 타인의 압력에 의해 강제로 이뤄지거나 무언가를 잃을까 두려워서 억지로 행하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는 외부의 어떤 매개체 없이도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더 나아지고 싶다는, 무언가 더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의 인력을 마주하게 된다. 한강 작가가 『소년이 온다』에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이라 명명했던 것, 그것을 계속 살아 숨 쉬게 하는 힘은 자신이 자신을 스스로 바라보는 순간들에서 온다.

이 섬세한 감정의 능력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것이라 말하는 시인은 쇼팽을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충분한 성공 가운데서도 자신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잃었는지를 끝없이 되짚어보던 사람, 음악 속에 담긴 분노와 절규의 맨 끝에 결국 자기 자신을 세워두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그의 음악 속 처연함은 단편적인 슬픔이나 자기 연민 속에서만 허우적대지 않는다. 내면의 붉은 곳을 끊임없이 인식했기에, 그의 음악은 결국 우리 안에 있는 투명한 무언가를 자꾸만 건드린다. 그것이 우리가 쇼팽의 음악을 듣고 또 들으면서도 끝없는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누군가는 그 부끄러움에 맞서 직접적인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고 묻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쇼팽은 파리에 머물며 혁명에 무관심하다는 의혹을 받은 적도 있고, 살아있는 동안 귀국의 관문이 열렸음에도 방문을 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쇼팽은 말년에 “바르샤바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를 가장 두려워했을 만큼(알프레드 코르토, 『쇼팽을 찾아서』) 그의 마음 한켠에는 고국과 폴란드 사람들에 대한 부채감 같은 것이 늘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쇼팽이 음악으로 해낸 일과, 혁명에 더 가까이 뛰어드는 일 중 어느 쪽이 더 가치 있다고 누가 어떤 기준으로 재단할 수 있을까.
쇼팽이 1842년에 남긴 폴로네즈 A♭장조 Op.53의 자필 악보 /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쇼팽이 1842년에 남긴 폴로네즈 A♭장조 Op.53의 자필 악보 /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우리 안의 가장 깨끗한 무엇’의 재발견

경쟁 과잉의 시대에 자신을 돌아보고 주춤대는 일은 종종 약점처럼 여겨진다. 조금이라도 더 돋보여야 하고, 끊임없이 성장하기 바쁜 흐름 속에서 자신감과 당당함만이 유리한 생존 기술로 취급된다. 나 역시 스스로 탓하고 후회하며 흘려보내는 시간을 자주 아까워하곤 했다. 그러고서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의 크기에 비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일은 너무 작아 보인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져 그 감정을 책장처럼 급히 덮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쇼팽의 편지 속 절절한 기록과 쉼보르스카의 시를 읽는 동안, 나를 못미더워하게 만들고 위축시키던 자책감이라는 감정을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됐다. 이것은 다른 어떤 생명체도 갖지 않은, 내가 인간임을 가장 강력하게 증명해 주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떤 자책도 느끼지 못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돌아보는 대신 처지만 비관하거나, 매사에 타인이나 외부 환경에 대해서만 탓하며 나를 완벽히 합리화할 미래를 가장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물론 자기비판의 기준은 각자가 살아온 세계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 그 감정이 지나치면 자신을 파괴하게 만들기도 하고, 자책감에만 머무른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도 가능하다. 이것이 어떻게 잘 다뤄져야 하는가에 대한 숙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럼에도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기가 점점 희소해지는 것 같은 요즘, 스스로 들여다보고, 때로는 탓해보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귀한가 싶어진다. 구깃한 마음 한구석을 모른 척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진 수많은 가능성의 빛을 본다. 이 마음의 작용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묵직한 과제를 새해의 나에게 건네보려 한다.

김수미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