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반도를 덮는 계절에 남국으로 잠시 떠났다. 기내 창문으로 쏟아지는 날것의 햇빛을 느끼며 박솔뫼 소설집 『영릉에서』를 읽었다. 누가 여행과 잘 어울리는 소설을 물으면 우선 떠오르는 작가의 이름 중에는 항상 박솔뫼가 들어 있는데, 소란 없이 계속 걷는 인물이 마주하는 낯설고 한가로운 풍경들이, 꼭꼭 씹어서 천천히 삼키는 소박한 미식들이 늘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일전에 그의 소설을 읽고 왠지 부산이 가고 싶어져 번화가가 내려다 보이는 작은 관광호텔에 묵으며 중국식 새우 요리를 먹은 기억도 있다. 걷기와 먹기, 그러면서 읽게 되는 인물의 피로와 흥분, 기대, 씩씩함, 혹은 쓸쓸함 같은 것이 박솔뫼 소설의 감각으로 남아 있다.
“움직임이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그때까지 스스로 의식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제가 이 주제에 대해 알고 싶어 하고 나의 움직임이라는 것을 해결하고 싶어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16쪽)
이번 소설집 『영릉에서』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축해서 설명하자면, 움직임에 관한 책이었다고 말해보고 싶다. 생각과 몸의 불협화음을 발견하고, 천천히 움직임을 바라보면서 신체에 나를 완전히 떨어뜨려 관찰하거나, 완전히 일치해서 밀착해보는 경험들이 들어 있었다. “마음이 급한 것 같아요. 그래서 빨리 움직이는 것 같은데 저한테 막 빠른 건 아니에요. 저는 더 빨리 할 수 있어요. 마음으로는”(109쪽).
박솔뫼 소설집 『영릉에서』(민음사, 2025)
새삼스럽게 알아가는 자신의 걸음을 따라 익숙한 거리의 낯선 풍물들도 알아갔다. 개별적인 것 같으면서도 모두 한 장면 속에 있어서 그 의미를 갖기도 했다. 움직임 연구소가 있고 칼국수를 사 먹는 현재의 중부시장과 1950년대 휴전 이후 미군 물건을 떼다가 팔면서 시작된 중부시장의 중첩이, 지금 보드를 연습하는 훈련원 공원과 이순신 장군이 훈련하던 터 사이의 연결이 대단한 비약이나 의미 부여 없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복잡하지 않은 생각 속에서 삶의 미스터리한 장면들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호소력 있게 전달하는 박솔뫼의 특장이 잘 살아 있는 소설집 『영릉에서』. 박솔뫼의 소설을 사랑하는 당신들과 이 책을 읽고 어디에 먼저 가고 싶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을지로였는지, 아오모리였는지, 혹은 영릉이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