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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하며 창조하고 끊어내고 다시 잇는 해머 '나'를 때리다
알렉산데르 에크만과 예테보리오페라 댄스컴퍼니 '해머'
무채색 세상에 색깔 옷을 입은 무용수
시선 잡는 환상적 미장센 놓치지 않아
무대와 객석 '한계' 무너뜨리는 파격
관객 의자 위 올라가며 참여자로 유도
개인주의·나르시스를 향한 통렬한 일침
웃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에크만식 위트
무채색 세상에 색깔 옷을 입은 무용수
시선 잡는 환상적 미장센 놓치지 않아
무대와 객석 '한계' 무너뜨리는 파격
관객 의자 위 올라가며 참여자로 유도
개인주의·나르시스를 향한 통렬한 일침
웃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에크만식 위트
관객까지 전염시킨 공동체 감성
이번 작품 해머에서도 ‘에크만식 통렬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머가 걸리고 작품이 시작되면 무용수들은 누드톤의 미니멀한 의상을 입고 나와 군무를 펼친다. 이 장면은 인류 역사가 시작되는 때로 볼 수 있다. 그때 그곳에 쌓아놓은 벽돌을 무너뜨리며 화려한 색채를 입은 여성이 등장한다. 이 무채색 세상에 나타난 무용수들은 저마다의 색과 움직임으로 개성과 자유로움을 드러내며 춤을 춘다. 하지만 자기 자신만 내세우는 게 아니라 함께 어우러지는 공동체 감성을 드러낸다. 경계를 세운 벽돌은 모두 무너졌고, 그들 안에는 웃음과 서로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있다. 에크만은 이 장면을 히피들이 지닌 공동체적 성격을 모티브로 제작했다고 이야기했다.
그 감성은 급기야 객석까지 점유한다. 1막 마지막 장면에서 무용수들은 무대에서 내려와 객석 의자 위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무대와 객석을 나누는 ‘프로시니엄 극장’의 한계를 무너뜨리는 시도는 최근 부쩍 늘어나긴 했지만, 객석 통로가 아니라 관객이 앉아 있는 의자로 올라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 관객 사이에 깊게 개입해 들어가는 시도는 관객을 무대의 방관자가 아니라 작품을 완성하는 적극적인 참여자로 둔갑시킨다. 관객도 이 공동체의 일원이 돼 무용수들과 사진을 찍는 등 유례없는 유쾌한 상황이 연출된다.
현대판 나르시스를 향한 해머의 일침
해머 2막에서 우리는 웃음을, 색을, 자유를, 개성을, 공동체 감성을 잃어버린다. 성형으로 과하게 자신의 몸을 부풀리고 해체시킨 사람들은 연신 카메라로 자신을 찍어댄다. 하지만 ‘사진을 찍으며 자신을 전유하는’ 행위는 손태그 말처럼 ‘가짜 전유’이자 세계에 대한 이해와 거리가 멀다. 1막에서는 가깝게 밀착된 두 사람의 얼굴이 무대 바닥을 장식했지만 2막이 시작되면서 그 모습은 뜯어지고 매끄러운 바닥이 번쩍인다. 우리 모습을 비추는 바닥은 마치 나르시스가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연못과 같다. 타인과의 밀접한 관계성은 사라지고 자기애만 남은 현실의 은유가 무대 바닥을 통해 드러난다. 일렬로 무대 앞을 보고 선 무용수들이 상대방을 견제하고 자기가 돋보이려고 자꾸 앞으로 나오는 장면도 이 점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한다. 나만 중요하고 나만 돋보이고 싶다는 의지가 그 장면에서 표출된다. 절정은 토크쇼 장면이다. 과잉된 자기표현이 드러나는 이 장면은 ‘위트에 담긴 통렬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1막 마지막 장면에서 ‘함께 찍는’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결국 ‘나 자신만 찍기’ 시작하며 우리는 이웃을 잃고 관계를 잃고 나 자신을 잃는 상황이 연출된다.
개인주의가 엄습한 그곳에 ‘해머의 파괴’가 일어난다. 2막 후반부에 한 사람이 벽돌을 계속 옮기며 길을 만들어주고 다른 사람이 그 위를 걸어가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이 2인무는 타인과 나, 혹은 가짜 자아와 진짜 자아의 춤으로도 볼 수 있다. 높게 쌓아 올린 벽돌을 어떻게든 무너뜨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으로,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다 무너져 버리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그곳에서 사람들은 진짜 웃음을 찾는다. 시선은 다시 타인에게로 향하고 서로에게 향한다. 이 장면에는 에크만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함축돼 있다. 다 깨지고 무너진 폐허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 있다는 점에서 해머가 주는 희망과 상징을 읽을 수 있다.
2022년 예테보리 오페라 댄스컴퍼니와 손잡고 초연한 이 작품은 현재 이 컴퍼니의 인기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웃다가 우리를 돌아보게 되는 해머의 통렬함은 한국에서도 통했다. 우리에게는 아직 해머가 있다. 새로운 시작은 때로는 과감한 파괴를 담보로 한다. 해머는 웃음과 춤, 용기와 희망으로 포장된 통찰적 메시지다.
이단비 무용 칼럼니스트·<발레, 무도에의 권유>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