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를 대표하는 음악가라면 단연 스메타나와 드보르작을 꼽는다. 그렇다면 체코를 대표하는 화가는 누구일까? 단연 알폰스 무하(Alfons Mucha 1860-1939)이다. 그의 작품은 미술서적이나 포스터 등과 같은 출판물 형태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의 삶은 인생 역전의 드라마였다. 체코 동부 모라비아 지방에서 태어난 그는 프라하 미술학교에 지망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술적 재능이 없다’는 이유로 낙방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 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장식미술가로 일하다가 독일 뮌헨을 거쳐 프랑스 파리로 건너갔다.
파리의 ‘스타’가 된 체코 청년
1890년대 파리는 예술가들의 실험실이었다. 인상파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상징주의와 아르누보(Art Nouveau)의 감각적 그림이 도시를 감쌌다. 바로 그 한가운데 무명의 체코 청년 알폰스 무하가 등장했다. 당시 그는 단지 인쇄소에서 일하던 일러스트레이터였지만, 한순간의 우연이 그의 운명을 바꾸었다. 배우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 주연의 연극 ‘지스몽다(Gismonda)’를 홍보하기 위해 1894년 12월에 급히 제작된 포스터가 파리 거리에서 시민들의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은 것이다. 이 연극 포스터는 기존의 화려하고 짧은 선전물과 달리, 길고 우아한 형식에 여성의 신비한 시선을 담았다. 미묘한 파스텔 톤, 꽃과 곡선이 얽힌 장식, 그리고 성화처럼 정적인 구성. 파리 시민들은 “이건 단순한 광고가 아니라 예술”이라 평했다.
알폰스 무하, <지스몽다(Gismonda)> (1895) 포스터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그날 이후 무하는 단숨에 ‘아르누보의 스타’가 되었다. ‘무하 스타일’이라 불리는 이 양식은 1890~1900년대 유럽 전역을 휩쓸며 장식 예술의 새로운 언어가 되어 포스터뿐 아니라 보석, 포장지, 인테리어, 심지어 벽화까지—무하의 선은 일상의 모든 사물에 생명처럼 스며들었다.
그의 대표작들은 대부분 여성의 형상에서 출발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지는 4부작 시리즈, ‘황도 12궁(Zodiac)’, ‘꽃의 계절’ 같은 작품들은 자연과 여성을 동일선상에 두었다. 무하에게 여성은 단순한 모델이 아니라, 생명과 조화, 그리고 우주의 리듬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알폰스 무하, <사계> (1896) / 사진출처. Acts Management Ltd. 제공 ⓒ MuchaTrust2025 민족의 기억을 그린 예언자
하지만 화려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무하의 마음은 언제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던 조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프랑스 시민들이 그를 ‘유럽적인 예술가’로 칭송하는 동안에도, 스스로를 ‘모라비아 지방 출신의 체코인’이라 불렀다.
그가 1910년, 모든 명예를 뒤로하고 고국으로 돌아간 것은 단순한 귀국이 아니라 예술적 소명이었다. 그가 평생의 역작으로 삼은 〈슬라브 서사시〉(1912–1926)는 그 의지를 상징하는 대작으로 체코뿐만 아니라 형제 민족인 다른 슬라브 지역의 역사까지 포괄하며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성취를 역사적 시각 속에서 조명했다. 총 20점에 이르는 초대형 캔버스는 슬라브 민족의 신화, 전쟁, 해방, 영광의 순간들을 그린 일종의 역사 대서사였으며 민족의 자긍심을 회복하려는 상징적 선언이었다.
무하는 이 작품을 통해 “예술은 민족의 영혼을 비추는 거울”임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그의 예술적 활동은 300년 가까이 외세의 지배를 받아온 조국에 기여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신념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그는 이 대작 시리즈를 1928년, 체코슬로바키아 독립 10주년을 기념해 조국에 헌정했다. 20개의 웅장한 교향곡 같은 이 대작 시리즈는 거의 50년 동안 모라비아 지방의 작은 도시 모랍스키 크룸로프에서 전시하고 있다.
<슬라브 서사시> 중 마지막 작품인 ‘슬라브족의 신성화’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프라하에서 만나는 무하
오늘날 프라하를 걷다 보면, 곳곳에서 무하의 숨결을 만날 수 있다. 그중 가장 감동적인 장소는 단연 성 비투스 대성당이다. 이 고딕 대성당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 창 하나는 무하가 1931년에 제작한 걸작이다. 그는 성녀 루드밀라와 그의 손자이자 체코의 수호성인인 성 바츨라프의 일화를 화려한 색조 속에 담아냈다. 전통적인 종교적 도상에 아르누보적 감수성을 불어넣은 이 작품은, 신앙과 민족의 정체성을 하나의 빛으로 승화시켰다. 빛이 유리 조각 사이로 스며들 때마다, 무하가 평생 추구한 ‘신성한 조화’가 성당 내부를 물들인다.
프라하의 무하 하우스 내부 / 사진출처. ACTS Management Ltd.
세속의 명예보다는 자유로운 영혼과 조국의 독립을 예술로 증언한 그는 1939년 체코를 침공한 나치에 의해 체포되어 심문을 받은 지 몇 달 후인 7월 4일에 세상을 떠났다. 모든 체코사람들의 애도 속에 그는 스메타나, 드보르작 등 체코의 국가유공자들이 묻힌 비셰흐라트 묘지에 안장되었다.
무하는 파리에서 예술의 혁신을 이루었고, 프라하에서는 예술의 영혼을 완성했다. 그의 삶은 두 도시 사이의 긴 여정이었다—한쪽에는 우아한 선과 미의 찬미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고통과 희망, 그리고 민족의 기억이 있었다.
서울의 알폰스 무하
이제 서울에서도 알폰스 무하를 만날 수 있다. 한국-체코 수교 35주년을 기념하여 여의도의 ‘더현대서울 ALT.1’에서 11월 8일부터 내년 3월 4일까지 <알폰스 무하, 빛과 꿈> 전시회가 대대적으로 열리는데, 일반인들에게는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체코의 국보로 지정된 11점(무하트러스트 소장)도 선보인다. 체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작품들을 한국에서 만나볼 수 있으니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