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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철의 산맥 위에 해와 달이 뜬다
[arte] 홍지수의 공예 완상
철판을 자르고 세워 만든 새로운 공감각
김승희 -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철판을 자르고 세워 만든 새로운 공감각
김승희 -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사극 속 궁궐, 어좌 뒤편 낯익은 그림의 이름은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Sun, Moon and Five Peaks)다. 왕실의 영원한 번영, 국왕의 유일성을 자연의 형상에 빗댄 그림이다. 왼쪽 위에는 하얀 달이, 오른쪽 위에는 붉은 해가 그려져 있다. 동양에서 해와 달은 음양의 화신이다. 달은 지구의 주위를 도는 조그만 위성이다. 해는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이다. 어떻게 스스로 밝음과 에너지를 발산하는 해와 지구의 위성에 불과한 달이 음양의 짝을 이뤄 한 화면에 있는 걸까? 그것은 달이 작은 위성에 불과하지만, 해의 역할에 못지않게 지구의 생명에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음양의 이치로 움직이는 자연을 생명의 근원으로 여긴 옛사람들은 일찍이 우리의 인생의 기본적인 틀과 삶의 방식도 음양오행에서 찾았다. 해와 달 그리고 태양계의 다섯 행성이 우리 우주의 틀이요, 생명의 근원으로 여긴 옛사람의 사유체계가 집약된 그림이 일월오봉도다.
특히 조선은 건국 이래 성리학 이념에 입각한 사회를 새우려고 했다. 공자, 맹자의 가르침에 따라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실현하는 도덕적인 삶을 통해 도덕적인 사회를 이룩하고자 했다. 당연히 통치자인 임금도 개인의 수양과 진리 탐구의 바탕 위에 인의예지를 실천하는 도덕적 삶고 모범을 보여야 나라 역시 도덕적 사회가 된다고 믿었다. 따라서 왕의 그림 일월오봉도는 조선시대 왕의 권위와 통치이념을 상징하는 그림이자 용상의 배경이니 왕의 권위와 장수, 자연과 인간 그리고 우주와 왕권의 조화를 상징하는 관념을 도식화했다. 일월오봉도의 도상은 오행을 상징하는 오봉(五峯), 해와 달, 물결이 넘실거리는 수면, 그 위로 떨어지는 대칭의 폭포, 그리고 네 그루의 소나무가 엄격하게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다. 해와 달은 양인 왕(陽)과 음(陰)인 왕비를, 다섯 산봉우리는 영구한 생명력과 국토 불변의 질서를, 소나무는 비바람을 견디는 무성한 번영을, 파도와 폭포는 끊임없이 흐르는 물과 같은 영속성을 의미한다.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조선 19세기 중후반, 섬유(견)에 채색, 세로 213.5cm, 가로 151.5cm, 가로 127.3cm, 가로 93.2cm ©국립중앙박물관
최근 K-컬쳐 특히 케데헌의 큰 유행으로 까치호랑이와 일월오봉도, 무녀도, 갓모자 같은 전통 이미지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전통 유행 속에서도 일월오봉도는 예술가, 디자이너들이 다양하게 재해석하고 응용해온 인기 도상이다. 현대미술에서는 일월오봉도를 현대적인 감각과 유쾌한 위트로 더해 팝아트로 변신시키기도 하고, 관객이 입체적으로 실감나게 일월오봉도의 도상을 유람하거나 관객의 동작에 따라 화면 속 도상이 움직이고 반응하는 미디어아트 소재로도 활용중이다. 공예에서 일월오봉도는 나전칠기 도안이나 문방구, 굿즈, 포장 디자인 도안으로 자주 활용했다. 그러나 제주공예박물관에서 전시한 금속공예가 김승희의 일월오봉도의 해석은 다르다.
제주공예박물관의 <십장생, 곶자왈을 거닐다>(2024)는 국내 1세대 금속공예가의 김승희의 대규모 금속설치 작품이다. 금속공예라면 금, 은, 주석 등을 두드려 만든 공예기나 커트러리, 브로치, 반지 등 주얼리를 떠올릴테지만, 김승희의 금속 작업은 공예뿐 아니라 평면, 설치로도 범위가 넓다. 1970년대 유학 후 금속공방을 직접 운영하며 금속공예 특유의 완결성과 정밀함, 예술성과 공예의 대중성과 범용성을 잃지 않는 작품을 제작해왔다. 대학에서도 후학들에게 금속공예의 지나친 실험성의 추구와 예술성의 추구를 경계하고 본연을 주지시켜왔다.
김승희의 <십장생, 곶자왈을 거닐다> 전경, 2024, 제주공예박물관 ©김승희
김승희는 2000년대를 기점으로 전통미술에 깃든 미적 특질과 조형요소들을 금속 회화로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색종이를 가위로 오리고 평면 위에 요리조리 배치하듯 금속판재를 자르고 다채로운 색을 칠한 면을 선과 교차시키며 자연을 단순화한 기하학적 형태 혹은 풍경화처럼 공간 속에 배치하였다. 마치 회화를 단단한 금속의 언어로 바꿔 공간에 일으켜 세운 듯한 새로운 표현이었다.
이후 철판과 용접을 직접 하며 크기와 구조를 확장한 <금속으로 그린 그림> 연작은 김승희가 금속공예의 한정과 편견을 벗어나 공예, 회화, 조각을 아우르는 총체적 예술을 시도한 작업다. 전통회화 그리고 청동기시대(기원전 1000년경 전후)와 철기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이어져온 한국 금속공예의 유산을 한국미의 산맥 속에서 찾아 새로운 금속조형의 언어로 확장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2006년 <축복의 사계>과 <풍경>부터 그는 민화, 수묵에서 전통적 소재를 가져왔고 2024년 제주공예박물관에의 <십장생, 곶자왈을 거닐다>(2024)는 일월오봉도를 설치미술로 시도했다.
김승희의 <십장생, 곶자왈을 거닐다> 세부, 2024, 제주공예박물관 ©김승희
<축복의 사계>과 <풍경>은 사각형의 화면 바깥에 도상이 있다. 화면과 현실의 구분을 무이(無二)로 만든다. 동양미술에서 자연과 나를 분리하지 않는 이원론적 사고의 표현이다. <십장생, 곶자왈을 거닐다>는 아예 관람객이 작품으로 들어가 작품과 하나가 된다. 관객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오감으로 작품을 만지고, 그 사이를 걸으며 경험을 극대화한다. 작가는 큰 철판과 황동 판재를 자르고 용접하여 일월오봉도의 다양한 자연 도상과 영물들을 만들고 금박과 은박 그리고 금속착색기법으로 제작해 표면을 마감했다. 도상의 기운을 살펴 공간 속에 서로가 조응하듯 세웠다 달과 해는 벽에 매달아 통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만난다. 새 입구에서 시작한 길은 동선의 끝인 통창까지 이어진다. 통창 너머에는 태고적 자연인 곶자왈이 보인다. 그 앞에 선 순간 나와 자연은 일월오봉도의 형상들 그리고 창밖의 자연은 하나가 된다. 보이지 않는 사잇길을 걸으며 동양의 일원적 사고를 몸으로 느낀다.
김승희, <축복의 사계> 2006, 80×180cm, 철, 적동, 황동, 폴리+안료 ©김승희
일월오봉도의 도상이 현실로 튀어나온 듯한 금속 장막의 풍경은 원본과는 전혀 다르다. 이 시도는 작가가 전통미술의 미적 특질을 모방하거나 응용하는 차원을 넘는다. 작가가 일월오봉도를 선택한 것은 음양오행의 덕을 상징하는 그림이고 그림이 표방하는 음양오행의 기운이 조화로운 세계, 맑고 깨끗한 기운으로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세계를 표방하기 때문이다. 전통에는 관습, 문화, 설화와 같은 변하지 않는 것들, 가치 있는 것들이 깃들어있다. 그것은 마치 공기와 같아서 형태가 달라져도, 시대가 달라도 우리의 몸과 정신이 실체를 판단할 수 있고 우리가 알아채지 못해도 매개로 작동할 수 있다. 단, 전통의 외관보다는 실체를 공유해야 통용될 수 있다는 전제가 있다.
김승희, <풍경(Landscape)>, 2006, 480×160cm, 철,백동, 적동, 황동, 폴리+안료. 사진_박광춘 ©김승희
옛 일월오봉도와 달리 <십장생, 곶자왈을 거닐다>는 시간에 따라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 그리고 시간과 바깥 날씨에 따라 금속이 공간에 드리우는 그림자의 방향과 농도가 시시각각 달라진다. 오래 공간 속에 머물수록 작가가 시공간 속에 금속의 물성과 색, 형상을 설치하고 구현하려는 공감각적 요소가 이런 것이구나 실감난다. 이처럼 금속 공예가들에게 금속은 재료이지만 동시에 자기 정체성을 표현하는 절체절명의 언어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다. 작고 세밀하며 반짝이는 공예품으로도 우리에게 생활 속 미적 경험을 줄 수 있지만, 작가가 익히 다루던 재료와 수법에 변화를 시도하고 생각을 달리하면 우리에게 새로운 감각과 알지 못했던 세계를 보여주는 통로가 된다. 분명 금속공예가들이 보여줄 수 있는 세계, 감각이 있다.
홍지수 공예 평론가•미술학 박사•CraftMIX 대표
특히 조선은 건국 이래 성리학 이념에 입각한 사회를 새우려고 했다. 공자, 맹자의 가르침에 따라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실현하는 도덕적인 삶을 통해 도덕적인 사회를 이룩하고자 했다. 당연히 통치자인 임금도 개인의 수양과 진리 탐구의 바탕 위에 인의예지를 실천하는 도덕적 삶고 모범을 보여야 나라 역시 도덕적 사회가 된다고 믿었다. 따라서 왕의 그림 일월오봉도는 조선시대 왕의 권위와 통치이념을 상징하는 그림이자 용상의 배경이니 왕의 권위와 장수, 자연과 인간 그리고 우주와 왕권의 조화를 상징하는 관념을 도식화했다. 일월오봉도의 도상은 오행을 상징하는 오봉(五峯), 해와 달, 물결이 넘실거리는 수면, 그 위로 떨어지는 대칭의 폭포, 그리고 네 그루의 소나무가 엄격하게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다. 해와 달은 양인 왕(陽)과 음(陰)인 왕비를, 다섯 산봉우리는 영구한 생명력과 국토 불변의 질서를, 소나무는 비바람을 견디는 무성한 번영을, 파도와 폭포는 끊임없이 흐르는 물과 같은 영속성을 의미한다.
제주공예박물관의 <십장생, 곶자왈을 거닐다>(2024)는 국내 1세대 금속공예가의 김승희의 대규모 금속설치 작품이다. 금속공예라면 금, 은, 주석 등을 두드려 만든 공예기나 커트러리, 브로치, 반지 등 주얼리를 떠올릴테지만, 김승희의 금속 작업은 공예뿐 아니라 평면, 설치로도 범위가 넓다. 1970년대 유학 후 금속공방을 직접 운영하며 금속공예 특유의 완결성과 정밀함, 예술성과 공예의 대중성과 범용성을 잃지 않는 작품을 제작해왔다. 대학에서도 후학들에게 금속공예의 지나친 실험성의 추구와 예술성의 추구를 경계하고 본연을 주지시켜왔다.
이후 철판과 용접을 직접 하며 크기와 구조를 확장한 <금속으로 그린 그림> 연작은 김승희가 금속공예의 한정과 편견을 벗어나 공예, 회화, 조각을 아우르는 총체적 예술을 시도한 작업다. 전통회화 그리고 청동기시대(기원전 1000년경 전후)와 철기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이어져온 한국 금속공예의 유산을 한국미의 산맥 속에서 찾아 새로운 금속조형의 언어로 확장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2006년 <축복의 사계>과 <풍경>부터 그는 민화, 수묵에서 전통적 소재를 가져왔고 2024년 제주공예박물관에의 <십장생, 곶자왈을 거닐다>(2024)는 일월오봉도를 설치미술로 시도했다.
홍지수 공예 평론가•미술학 박사•CraftMIX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