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추천 뉴스
연인 떠나보낸 천경자...1년간 울며 아프리카 초원을 그렸다
부암동 석파정 서울미술관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
200점 넘는 작품 통해 천경자 집중 조명
미인도 위작 사건에 가린
20세기 최고 스타 작가의 진면목을 보다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
200점 넘는 작품 통해 천경자 집중 조명
미인도 위작 사건에 가린
20세기 최고 스타 작가의 진면목을 보다
1991년 벌어진 ‘미인도 위작 사건’이 모든 걸 바꿨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을 두고 천 화백은 “내 그림이 아니다”고 했다. 미술관은 진품이라며 맞섰다. 여러 사람들의 욕망과 이권, 자존심이 미인도를 중심으로 얽히며 충돌했다. 결과는 파국이었다. 사법부가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결론을 내린 뒤에도 논란은 계속됐다. 천 화백은 활동을 접고 미국으로 떠나 그곳에서 숨을 거뒀다. 관련 논쟁은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천 화백을 언급하거나 재조명하는 일이 부담스러워진 탓에 그는 점점 대중에게 잊혀갔다.
서울 부암동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는 천경자 사후 사실상 처음으로 작가를 제대로 조명하는 전시다. “용기 있는 시도”라는 게 미술계 평가다. 미인도 위작 사건 관련자들이 아직도 논쟁을 벌이며 소송전을 불사하는 상황에서, 자칫 전시를 잘못 기획했다가는 다툼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안진우 서울미술관 이사장은 “미인도 위작 사건은 천경자의 삶과 예술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한데 이로 인해 작가의 업적 자체가 잊히는 상황이 안타까웠다”며 “전시를 말리는 이들도 많았지만,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서 10주기를 맞아 전시를 열었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 수는 채색화만도 80여점에 달한다. 화가의 업적에 집중하기 위해 논란의 중심인 ‘미인도’는 포함하지 않았다. 150여점의 삽화와 책 표지 등에 그린 표지화, 가족에게 보낸 편지와 사진 등 관련 자료도 한자리에 모았다.
전시의 중심은 천경자의 전성기로 꼽히는 1960~1970년대 작품이다. 이 시기 가장 중요한 사건은 연인이었던 김남중과 1973년 헤어진 것이다. 첫번째 남편을 전쟁통에 잃고 두 아이를 홀로 키우던 천경자는 전쟁 후 김남중을 만나 두 아이를 낳았지만, 사실 그는 유부남이었다. 오랫동안 고통받던 천경자는 마침내 그와 결별한 뒤 삶의 새로운 장을 열기로 결심했다. 화풍을 바꿨고,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으며, 홍익대 미대 교수를 그만둔 뒤 아프리카 여행을 떠난 게 1974년이다.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 작품 상당수를 소장하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이 그를 조명하는 상설전시에 붙였던 제목이다. 그 말대로 천경자는 자신을 열렬히 사랑하는 나르시시스트였다.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기쁜 것은 매우 기쁘게, 슬픈 것은 사무칠 정도로 슬프게 감지하는 성향이었다”고 표현했다. 자신이 보고 느끼는 모든 것과 내면의 감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포착해 캔버스에 담아내는 것. 천경자 작품 특유의 매력은 여기서 나온다.
이 밖에도 다채로운 작품들이 나왔다. 해외여행이 어려웠고 TV조차 흑백이던 시절, 유럽·미국·남미를 오가며 그린 천경자의 그림과 신문 연재는 한국인에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심어줬다. 베트남 전쟁에 종군 화가로 참여해 그린 기록, 병풍에 그린 금붕어와 개구리 그림 등 천경자 작품세계의 다양한 면모를 만날 수 있다. 책 표지 그림과 편지, 연보를 정리한 추모공간도 흥미롭다. 추석 연휴 내내 문을 연다. 전시는 내년 1월 25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