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 중인 수많은 해외 게스트 중 이태리 영화감독 파르시팔 레파라토는 단연코 눈에 띄는 인물이다. 그의 신작 <SHE>는 삼성전자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를 조명한 다큐멘터리로 올해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되었다. 작품의 한국배급과 한국과의 합작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그와 만나 <SHE>의 도전적이고도 흥미로운 제작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SHE>의 감독 파르시팔 레파라토(Parsifal Reparato) / 사진. 한국경제신문 김범준 기자▷ 이 인터뷰가 감독에게는 처음으로 한국의 독자를 만나는 장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본인을 소개한다면?
“나는 영화 제작자, 감독이면서 인류학자이기도 하다. 이제껏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베트남을 포함한 남동 아시아 지역에서 주로 영화 작업과 연구를 병행해왔다. 나의 작품들은 대부분 인권과 공장 노동자에 관한 것이다. 물론 이 주제는 학자로서의 나의 관심사와도 일치한다. 베트남에서의 작업이 많았던 이유는 이 지역이 대기업, 특히 한국과 같은 선진국의 대기업의 공장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SHE>는 나의 첫 다큐멘터리 <민첩한 손> (Nimble Fingers, 2017)에 이은 두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이자, 노동자 인권에 대한 영화적 기록이다.”
▷ <SHE>는 베트남에 있는 삼성전자 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을 인터뷰 대상으로 하고 그들의 작업 환경에 대한 현실을 공유하는 프로젝트다. 그들이 모두 기업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프로젝트 자체가 도전적인, 어떤 각도에서는 위험한 시도이기도 하다. 영화에 참여하는 인터뷰 대상자들은 어떻게 선정했는가.
“일단 영화를 찍기 전에 공장 노동자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에서 그들과 함께 어울리는 시간을 오래 가졌다. 사실 이 과정이 좋아서 이 일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들과 친구가 되고, 마음을 열고, 그들의 현실 그리고 그 현실을 만드는 사회적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연대할 수 있는 이슈에 연대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그들과 가까워지면서 많은 이들이 다큐멘터리에 참여한다고 약속했지만 정작 인터뷰에 응했던 사람들은 (보시다시피) 열 명 안팎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열 명 안팎의 여성 노동자들은 엄청난 용기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그들의 열악한 조건에 대한 고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베트남에서 여성 노동자, 그리고 어머니로 살아가는 이야기, 공장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그들이 결정적으로 하고 싶어 하는 일 등 이 공장에서의 삶이라는 챕터를 통해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이다.”
“(삼성)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80퍼센트가 여성이다. 물론 나머지 20퍼센트 중 남성 노동자를 골라 포함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여성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었다. 공장에서 여성을 선호하는 이유는 그들이 임금이 더 낮고, 그들의 표현으로는 “컨트롤하기 쉽기 때문”이다. 부당한 일이 생겨도 여성 노동자들은 쉽게 겁을 먹고 함구하거나 협박에도 (매니저에 의한) 쉽게 순응한다. 공장 노동자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내가 공장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이 이 영화의 약점이지만 그것을 강점으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몇 달을 궁리했고, 이러한 방식의 ‘시뮬레이션’을 생각해 냈다. 일종의 극영화 같은 방식 말이다. 동시에 나는 참여자들에게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해도 좋다고 했다. 공장에서 매일 하는 일을 (재현) 하되, 마음에 응어리 진 것들, 예를 들면 매니저에게 부당함을 이야기하거나 일을 멈추거나 뭐든 그들이 하고 싶은 것들 말이다. 그러한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하면서 찍은 부분이 이 대목이다.”
“매우 그러했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했다. 쉬는 날을 간신히 잡아 놓으면 갑자기 공장에서 연락이 와서 불려 나가거나 하는 일이 태반이었다. 그럼에도 궁극적으로 참여자들은 모두 이 다큐멘터리가 완성되길 바랐다. 영화를 만드는 나만큼이나 그들 역시 열정적이었고, 이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특히 이들은 다음 세대가 같은 일들을 겪기를 원치 않았다. 노동자들의 희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프로젝트다.”
▷ 영화의 참여한 노동자들은 이 영화가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사실을 알고 있나?
“물론이다. 초청을 받자마자 알렸고 모두들 너무나도 기뻐했다. 이 영화를 찍었을 때 노동자였던 한 분은 지금 건강 식품 사업을 하고 있다. 다들 자신의 삶에서 약간의 변화가 일어났지만, 이 영화에서 함께 한 시간만큼은 분명히 그들에게 큰 부분으로 남아있는 듯했다.”
▷ 로카르노에서의 관객 반응은 어땠나.
“열정적이었다. 관객들에게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어떻게 베트남의 이런 (열악한) 노동 컨디션에 대한 도움을 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내가 관객분들에게 준 답변은 주변을 돌아보라는 것이다. 노동 착취와 성, 인종 차별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은 우리 주변, 이태리에도 프랑스에도 영화제가 열린 스위스에서도, 한국에서도. 지구 전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우리가 주변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갖는다면 연대하거나 도움을 줄 수 있는 루트는 너무나도 많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주변을 꼭 돌아봐달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 <SHE>는 노동자 삼부작(trilogy)의 두 번째 파트라고 알고 있다. 다음 프로젝트는 어떤 것인가.
“이번에도 전자 분야 공장 노동자의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반도체나 전자 분야에 집중하는 것은 이 분야가 가장 관심을 받는 (투자자에게도 노동자에게도) 분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체계나 노동 환경 기준의 맥락에서 가장 스탠다드한 분야라고 볼 수 있다. 다음 프로젝트는 베트남이 아닌 전 세계에 있는 공장들, 그리고 노동자를 기점으로 좀 더 글로벌하게 돌아볼 생각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SHE>의 감독 파르시팔 레파라토(Parsifal Reparato) / 사진. 한국경제신문 김범준 기자
부산국제영화제의 30주년 축제만큼이나 흥겹게 시작되었던 인터뷰는 궁극적으로 이번 영화제에서 봤던 그 어떤 영화보다도 더 숭고한 분위기로 끝이 났다. 동시에 영화제가 이 사회, 그리고 구성원들에게 할 수 있는 사명까지도 레파라토 감독의 인터뷰가 말해 준 것 같았다. 화려함의 이면에는 반드시 고통이 있고, 고통의 이면에는 희망이 있었다. 노동자의 고통을 이해하지 않는 사회는 무능하고 해악한 사회다. 베트남에 있는 한 한국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담긴 이 작은 다큐멘터리가 로카르노 영화제를 통해 공개되고, 영화를 본 관객들이 조금씩 사회를 바꿔나가고 있다. 30주년을 맞는 부산국제영화제 역시 밟아 나가야 할 영화제의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