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벽 밀고 당기고…래미안의 넥스트 홈 가보니

이동 가능한 '넥스트 월'과 '넥스트 퍼니처', 모듈형 바닥인 '넥스트 플로어'가 설치된 모습.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아파트 안방 안에 세워진 붙박이장을 가볍게 밀자 옆 방과의 경계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방과 거실, 복도 등 집 안을 나누던 공간의 경계를 거주자가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바꿀 수 있게 됐다.

지난 26일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경기 용인시 기흥구에 마련한 국민 평형(전용면적 84㎡) 규모 '넥스트 홈' 테스트 베드는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감탄사로 가득 찼다. 3베이, 4베이 등 한 번 정해지면 미동도 없이 고정돼 있던 주택 평면이 입주자의 삶에 맞춰 이동하는 유기적인 진화를 이뤄냈다는 변동규 주택기술혁신팀장의 설명이 나온 직후였다.

넥스트 홈은 2023년 8월 삼성물산이 '래미안 더 넥스트'를 주제로 청사진을 제시한 후, 2년간의 기술 개발과 검증을 거쳐 탄생한 미래 주거 모델이다. 주거 공간 내 기둥을 모두 없애고 벽체를 자유롭게 옮기면서 원하는 평면을 구성하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삼성물산은 이러한 넥스트 홈을 테스트 베드에 실물로 구현해 선보였다.

기존 아파트는 건물의 하중을 버티는 기둥이 주거 공간 내에 자리 잡고 있다. 라멘구조와 달리 벽식 구조 아파트는 기둥이 눈에 띄지 않지만, 일부 벽이 그 역할을 한다. '내력벽'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러한 기둥은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하는 경우에도 굳건하게 제 자리를 지킨다. 이는 결국 획일화된 아파트 구조에 입주자가 맞춰 생활해야 한다는 의미다.

삼성물산은 이러한 기둥을 주거 공간에서 모두 없애는 도전에 나섰다. 수직 기둥에 수평 부재인 보를 더한 '넥스트 라멘' 구조를 통해 건물 기둥을 주거 공간 밖으로 빼낸 것이다. 지상 3층, 연면적 554㎡ 규모 테스트 베드는 넥스트 라멘 구조로 만들어져 모든 기둥이 건물 외벽으로 나왔다.

기둥과 벽 없이 텅 비어버린 주거 공간은 바닥과 벽체 등 모듈형 건식 자재로만 구성된 '넥스트 인필' 시스템으로 공간을 구성한다. 모듈형 조립식 건식 벽체인 '넥스트 월'은 바닥과 천장에 고정된 기존 벽체와 달리 자유롭게 이동과 재배치가 가능하다. 벽체를 옮긴 뒤에는 탈부착이 가능한 벽체 마감재로 다양한 인테리어를 연출할 수 있다.

가구 자체가 하나의 벽이 되는 '넥스트 퍼니처'도 있다. 테스트 베드에는 옷장과 장식장 등 다양한 형태의 넥스트 퍼니처가 방과 방 사이 경계를 가르는 벽으로 쓰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가구 하단에 특수 모터와 바퀴가 달려 있다.

삼성물산 '넥스트 홈' 테스트 베드에서 벽체 역할을 하던 '넥스트 퍼니처'를 밀어 옮기는 모습.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그 덕분에 고정장치를 풀면 여성도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손쉽게 넥스트 퍼니처를 옮겨 자유롭게 공간을 분리하거나 통합할 수 있었다. 입주자 취향에 따라 방 2개를 1개로 총합하는 등 주거 공간 내 벽을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는 셈이다.

바닥도 모듈형 조립식 형태로 변화했다. 삼성물산은 '넥스트 플로어'를 통해 바닥 하부에 배관 공간을 마련해 주방이나 욕실과 같이 물을 사용하는 장소를 주거 공간 내 어느 곳이라도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도록 했다. 배관이 불필요한 공간은 바닥 높이를 낮춰 최대 30㎝의 천장 높이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해체와 이동, 재설치도 가능해 향후 실내 공간을 바꿔야 할 때도 유연하게 대응한다.

고품질 모듈형 욕실인 '넥스트 배스'도 도입했다. 외부 공장에서 사전 제작한 욕실을 옮겨와 설치하기에 현장에서 수작업으로 시공하는 욕실과 비교해 품질에 편차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완성도 측면에서도 기존 고급 욕실과 비교해 부족한 부분 없이 빼어났다. 테스트 베드는 이러한 기술을 활용해 전용면적 84㎡ 주거 공간 2곳을 각각 1~2인 가구 스튜디오 타입과 3~4인 가구 패밀리 타입으로 조성했다.

변 팀장은 "기존 아파트는 바닥에 콘크리트 타설과 보양 작업을 하는데, 그 기간에는 아무도 출입하지 못한다"며 "넥스트 홈은 그렇게 보양을 기다릴 필요가 없는 데다 공장에서 모듈로 생산한 부재를 조립하는 방식이기에 기존 대비 공사 기간을 4~5개월 단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초고층 건물일수록 바닥을 양생하는 시간이 길어지기에 넥스트 홈의 공기 단축 효과가 더 크게 드러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사 기간을 줄이고 품질도 높이면서 입주자 필요에 따라 공간 재배치도 가능하지만, 단점도 있다. 아직 대량생산을 통한 규모의 경제가 갖춰지지 않았기에 각 모듈의 생산 단가가 높다는 문제다. 삼성물산은 타 건설사에도 문호를 개방해 '넥스트 홈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방침이다.

변 팀장은 "새로운 공법은 높은 비용으로 인해 시장에 정착하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기술이 보급되면 공사비는 내려간다"며 "현대건설이나 대우건설, DL이앤씨 등 다른 건설사들을 대상으로도 넥스트 홈 공법에 대해 소개하는 등 관련 생태계 구축을 위한 노력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넥스트 홈이 보급되면 기존 공법과 공사비 차이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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