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의 평균율로 지새운 2025년의 정점이었던 그 하루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평균율 전곡 연주
사람들이 한 해가 저물어간다는 표현을 쓰니 아마 한 해 중 가장 밝고 혹은 무언가 가장 높은 날도 있을 것입니다. 상반기 공연의 마지막 날이었던 6월 29일을 그렇게 의미해 보자면 한 해라는 하루의 정오라고 표현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올해 6월 마지막 주에는 바흐의 평균율 전곡 연주에 이르기 전, 한 번은 국내 오케스트라가 다른 한 번은 해외 오케스트라가 산과 바다를 각각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무대감독 일을 하면서 일을 마치기 전 한 번은 보고 싶었던, 단 한 번의 음악회로 표현되는 바흐의 평균율 전곡 연주를 앞서기에 좋은 음악들이었습니다. 순수 음악회로 4시간 33분의 시간을 기록한 이 음악회를 무대 곁에서 지켜보며 조금은 감성이 터졌습니다. 공연을 마치고 그 감성에 음악회를 정리한 짧은 내용을 일단 소개해 봅니다.
“그 시간의 음악회이면, 한 사람의 생각이 무너지고, 새로운 생각이 태어나며, 음악으로 사람이 바뀔 수도 있다는 그 놀라움의 서광이 살짝 비치었던......”
서로 다른 네 대의 건반악기로 작품을 연주하는 결정에 더해 피아니스트는 작품의 연주 순서도 1722년 만들어진 평균율 제1권을 연주한 후 1744년의 평균율 제2권을 연주하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상승하는 조성에 따라 연주를 이어갔지요. 제1권 C장조의 전주곡과 푸가에 이어 c단조의 전주곡과 푸가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제2권 C장조의 전주곡과 푸가로 연주되는 방식으로요. 평균율 작품을 깊게 깊게 사랑하시는 청중이시라면 연주가 진행되는 시간 동안 틈만 나면 22년이란 짧지 않은 간극을 때로는 기쁨으로 혹은 슬픔으로 아니면 감탄으로 받아들이고 계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잠깐 건반악기의 이야기들을 하고 돌아오겠습니다.
가장 먼저 피아노입니다. 17세기의 세기말 또는 18세기의 힘찬 시작 그즈음 발명되었다고 전해지는 피아노의 첫 이름은 ‘여리고 강한 소리를 낼 수 있는 하프시코드’ 였습니다. 가죽으로 만든 채(Quill)라고 하는 작은 고리(hook)가 현을 뜯어서 소리를 내는 쳄발로는 건반에 가해지는 연주자 타건의 힘에 따라 소리의 크기가 달라지는 역할을 해내지 못했습니다. 아마 이런저런 이유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피아노 발명자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트포리의 현존하는 세 개의 피아노 중 하나는 그래서 그 외형만큼은 쳄발로를 닮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클라비코드가 얼마나 예민한 악기인지 세 번의 무대 첫 곡을 시작하는 클라비코드의 연주가 진행될 때마다 마음 졸이며 함께 하는 조율사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악기는 음량은 작을지언정 건반에 가해지는 힘에 비례해 음의 세기 역시 표현되는 악기라는 것 역시 알게 되었습니다. 바흐 역시 자신이 창의하는 작품의 시작, 작곡의 전개, 최종 작품의 기본적인 확인을 이 악기로 진행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육을 목적으로 작곡되었다고 전해지는 평균율을 클라비코드와 함께 열심히 작곡하는 바흐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도 무대 곁에서 해볼 수 있는 즐거운 상상 중 하나였습니다. 굳이 각 무대의 첫 곡을 클라비코드로 선택한 피아니스트 역시 이 곡의 연주에서 클라비코드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를 마음속에 간직한 것인가 궁금증이 들기도 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오르간을 중세 로마카톨릭교회의 타락의 상징으로 여겨 싫어하였고 교회에서 추방하였다. 특히 쯔빙글리나 칼뱅은 오르간을 악마의 도구(Teufelswerk)라고 하여 파괴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루터는 비교적 관용적 태도였으나 예배 중 오르간 연주는 금하였다.’
오르간 음악들이 가끔 위압적 혹은 미묘하거나 복잡한 감정선을 보이는 측면들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유명한 피아니스트에게도 혹은 종교개혁자들에게도 역시 마찬가지로 들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음악회 당일의 절정 - 가단조 제1권 BWV.865 & 제2권 BWV.889
네 시간 반이 넘은 음악회였으니 그 음악회만의 절정 역시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1권 a단조 푸가의 마지막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임현정 피아니스트 역시 이 두 작품을 연주하는 건반악기로 오르간을 택했습니다. 제1권의 푸가가 그 무섭고 괴물 같은 지속음으로 무대를 호령한 후 거의 동시에 제2권이 연주되기 시작했습니다. 교향곡이나 협주곡의 악장과 악장 사이가 쉼 없이 이어지는 긴박한 아타카 같았습니다. 제1권의 전주곡과 푸가와 제2권의 전주곡과 푸가가 빠르게 전개되어 8분을 조금 넘긴, 오르간만의 연주로 펼쳐졌던 두 작품의 시간과 공간이 이 음악회 전체를 절정으로 이끌었던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피아노 건반 그림 / 그림. AI로 생성한 콘텐츠
앞서 오스트리아 도시 빈에 자리한 제체시온 미술관에 전시된 클림트의 작품 베토벤 프리즈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 그 결론 같던 이야기를 다시 한번 소환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한 옥타브의 매력은 유한하며 닫혀 있지만 순환하는 것이기에 연속성과 확장성 역시 가질 수 있다.’ 평균율은 자연음 도에서 시작해 자연음 시에 오르는 지난한 과정의 등산과 닮았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또는 한 옥타브 12개 음이 하나의 파도가 되어 전 세계로 확장하며 순환하는 바다와 같은 작품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음악회 당일 네 개의 건반악기를 열심히 순환하는 피아니스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떠오른 생각 같기도 합니다.
거대한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짧은 48개 더 세분하자면 96개의 피아노 작품이 모여 위대한 이야기를 만드는, 더 나아가서는 서양 클래식 음악 전체의 성서라고 표현되는 작품을 4시간 33분 만에 몸과 마음과 머릿속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일을 하면서 만날 수 있는 가장 큰 행운 같기도 합니다.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는 뉴욕의 인터뷰 영상 마지막에 바흐는 그저 우리 중 한 명이지만 최고의 한 명, 위에 소개한 책의 저자 역시 바흐는 그저 수많은 음악가 중 한 명이지만 최고일 수 있다는 취지의 구절을 소개하고 있는데, 두 이야기를 두 권의 평균율에 대입해 보자면 이렇게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의 그저 평범한 작품이지만 최고의 작품이며, 그의 수많은 작품 중 그저 하나이지만 최고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