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공개매수제 도입, 한국 자본시장의 득과 실 [최성수의 똑똑한 자본시장]
IMF 사태 폐지된 증권거래법 기초
유럽·일본도 제도 회피·분쟁 이어져
소수주주 보호만 강조 땐 기업 부담
유럽·일본도 제도 회피·분쟁 이어져
소수주주 보호만 강조 땐 기업 부담
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결국 지배주주만이 경영권 프리미엄을 독점하고, 소수주주는 상대적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이는 우리 자본시장에서 소수주주 보호 장치가 미흡함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최근 의무공개매수제 도입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
다시 눈 뜬 의무공개매수제
최근 자본시장법 개정과 관련한 의무공개매수제는 2022년 금융위원회가 주도해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해외 입법례를 조사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당시 마련된 안은 상장사 지분 25% 이상을 취득할 경우 50%+1주까지 공개매수를 의무화하는 것이었다. 이는 약 30년 전인 1997년 입법화됐다가 이듬해 외환위기(IMF) 속에 상장사 M&A 활성화를 이유로 폐지된 증권거래법 규정을 기초로 한 것이다.1997년 당시에는 소수주주 보호 목적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반투자자의 상장사 지분 소유 제한(10%) 제도 폐지 이후 대기업 상장사가 적대적 M&A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상황을 막고자 하는 취지도 있었다. 현재 국회 논의는 최초 금융위가 검토한 입법안보다 한층 강력하다. 25% 이상 지분을 확보하면 모든 주주의 지분 100%를 공개매수 하도록 하는 방안까지 제시되고 있다.
유럽과 일본은 보통 30% 이상 지분을 확보하면 100%까지 매수 의무가 발생하는 의무공개매수제를 운영해 소수주주도 경영권 프리미엄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유럽과 일본 제도는 상장사 M&A를 어렵게 해 결과적으로 기존 지배주주의 경영권을 보호하려는 사회·문화적 배경도 작용한 면이 있다.
선제 도입한 유럽·일본도 부작용 존재
한국에서 유럽과 일본 방식의 의무공개매수제를 도입할 경우 여러 우려가 제기된다. 첫째, 100% 의무공개매수는 상장폐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경영권을 인수한 주주가 상장을 유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상장폐지 후 구조조정을 거쳐 재상장을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상장 또는 재상장 절차가 유럽이나 일본만큼 신속하고 유연한지는 숙고가 필요하다.둘째, 의무공개매수를 회피하기 위해 지분을 25% 미만으로 분산 보유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 실제로 유럽이나 일본에서도 발생하는 일이다. 이 경우 경영권 주체가 불분명한 상태가 장기화되면서 제조업이나 정보기술(IT), 성장기업처럼 빠른 투자와 결단이 필요한 산업에서는 기업가치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
셋째, 공동보유자 규정 역시 문제다. 특정 투자자들이 공동보유자로 간주되면 공개매수 의무가 발동되는데, 이를 둘러싸고 금융당국과 시장 참여자 간 분쟁이 잦아질 수 있다. 실제로 일본과 유럽에서도 공동보유자 해석 문제는 자본시장의 주요 분쟁 요소로 꼽힌다.
M&A 뒤흔드는 정책엔 빈틈 없어야
제도의 근본 목적은 소수주주 보호다. 그러나 소수주주 보호 장치만 강조해 이익 형량의 균형을 잃으면 자본시장의 역동성과 기업의 투자 결단력이 위축될 수 있다. 미국은 의무공개매수제 없이도 회사 경영진이 경영권 변동 과정에서 소수주주의 이익을 침해할 경우 충실의무 위반 소송을 통해 막대한 배상을 부과한다.한국도 최근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의 충실의무를 강화한 바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이 미국식 충실의무 모델을 택할 것인지, 유럽·일본식 의무공개매수 모델을 채택할 것인지는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의무공개매수제는 단순한 제도 변경이 아니라 한국 자본시장 M&A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중대한 정책이다. 소수주주 보호와 기업가치 유지·제고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도록 정교하고 균형 잡힌 제도 설계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