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향유하기에 가장 좋은 때가 있다. 바로 지금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위해 현재를 헌신한다. 꿈을 위해 즐거움을 미루기도 한다. 예술을 누리는 일같은 건 삶에 여유가 생긴 다음에 해봐야지 다짐해본다. 물론 눈 앞의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일은 더없이 소중하다. 지금 내게 예술은 사치라고 말하는 분들도 그 선택과 집중을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가 예술에 다가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향유의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 가봤던 전시회에서 뭔가 어색했던 느낌, 그림 앞에 몇 초나 서있어야 하지? 이 그림은 도대체 무슨 뜻이야! 뭐가 뭔지 몰라 불편했던 기분. 기나긴 전시 서문을 읽어봐도 잘 모르겠다. 나는 아직 때가 아니구나, 좀 더 여유가 생길 때까지 예술 향유는 미뤄둔다.

지난 5월에 서유럽 예술 여행을 다녀왔다. 보름간 이탈리아부터 남프랑스를 도는 예술 향유 대장정이었다. 함께 간 분들은 평균 연령이 퍽 높았다. 평생 열심히 일만 하고 살아온 분들, 성실한 주름이 얼굴 가득한 분들, 그리 살아온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서 여행을 떠나온 분들, 특별한 예술을 누리기 위해 평생 기다려온 분들이다. 우리 일행은 의욕에 가득차 눈을 반짝이며 미술관에 입장했다. 미술관에 대해서는 미리 배포한 자료들로 이미 꼼꼼히 공부를 마친 후였다.
오르세 미술관 입구, 진격하는 사람들 / 사진. © 임지영
오르세 미술관 입구, 진격하는 사람들 / 사진. © 임지영
현지 도슨트가 미술관의 역사와 주요 작품들을 열심히 설명했고 꽤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수많은 계단들, 너무 많은 작품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사람들, 우리는 초단위로 지쳐갔다. 게다가 나이가 있다보니 허리와 다리가 수시로 비명을 질러댔다. 근사한 예술 좀 누리자고 비싼 여행을 왔는데 이렇게 무너질 순 없어! 쇠공을 매단 것 같은 다리를 끌며 사람들을 비집고 기어이 명화 앞에 섰다. 특히나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는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그림도 엄청나게 많았다. 너무 많다는 건 제대로 보기 힘들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있는 고흐 그림 앞에서 누군가 감탄 대신 한숨을 쉬었다.

불현듯 깨달았다. 이건 예술 향유가 아니다. 기를 쓰고 악착을 떨며 그림은 보는둥 마는둥 인증 사진만 남기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전시를 즐기려면 중간 중간 쉬기도 하고, 나만의 기록도 남기며, 컨디션을 조절해야 한다. 무리해서 다니면 예술이고 뭐고 뇌가 힘든 기억만 남긴다. 예술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컨디션이다. 제아무리 오르셰여도 무리하는 것은 향유보다 노동에 가까운 일이다. 나는 바로 관람을 멈추고 밖으로 나왔다. 노천 카페에 앉아 신선한 오렌지 쥬스를 시켰다. 센 강을 바라보며 오월의 파리를 눈과 가슴에 담았다. 그제서야 삶에 푸른 바람이 스미고 마음엔 다정이 깃들었다. 그야말로 제대로 된 인생 향유였다.

예술을 누리기 위해 기다릴 것 없다. 미뤄서도 안된다. 굳이 먼 나라까지 갈 것도 없다. 당장 내 삶 안에서 찾아야 한다. 특히 지금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향유를 유예해선 안된다. 그러다가 오르세 미술관에서 한숨 쉬는 사태가 일어나는 것이다. 나도 좀 교양있게 예술을 누리고 싶은데, 이제 좀 사는 것처럼 살고 싶은데, 마음은 굴뚝같은데 몸은 삐걱거린다. 그 동안 열심히 살아온 날들이 스쳐지나간다. 사느라 바빠 집 앞 미술관도 가본 적 없는 시간들, 아예 예술에 무관심했던 날들. 내가 무엇을 놓친 것일까.
오르세 미술관의 명화 앞, 밀도 높은 사람들 / 사진. © 임지영
오르세 미술관의 명화 앞, 밀도 높은 사람들 / 사진. © 임지영
몰랐을 뿐이다. 예술을 너무 어렵게 여기고 멀리 두었을 뿐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보기 나름이고 마음 먹기 나름이다. 인생이라는 주제, 일상이라는 소재, 시간과 마음으로 구현하는 우리의 순간 순간들. 이 또한 생의 조각들이겠다. 우린 모두 자기 앞의 생을 부단히 매만지는 예술가인 것이다. 이 만만한 생각이 내가 예술을 보는 관점이다. 물론 예술에 담긴 거대한 담론이나 근사한 화두 또한 깊이 수긍한다. 인간이란 깨달음을 위해서 이다지도 애쓰는 존재구나 연민과 긍휼이 솟아오른다. 하지만 예술 자체를 성역화하거나 그를 다루는 이들이 선민 의식을 갖는 건 아이러니하다. 예술은 우아한 교양이기 보다 오히려 처절한 삶의 언어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름답기보다 불편할 수 있고, 향유 또한 그걸 직면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예술이 교양, 우아, 지식 중심으로 홍보된다. 오르세 정도는 가봐야 예술 좀 누린다고 할 수 있죠. 론 뮤익 전시는 꼭 봐줘야 교양있는 인류가 되죠. 은근히 열등감을 건드리고 비교격으로 자극한다. 그런데 다행히도 강의를 하고 여행을 하며 일반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훨씬 더 많이 본다. 론 뮤익 안 본 분들, 김환기도 모르는 분들, 몰라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고, 해맑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 이런 분들에게 예술을 교양으로 접근하는 것 자체가 폭력적이란 생각이다. 예술없이 살아온 날들을 교양없음으로 만들어버리니까.
오르세 미술관에서 가장 예술을 향유하고 있는 프랑스 소녀, 작은 공책에 그림 그리고 글 쓰고 있다 / 사진. © 임지영
오르세 미술관에서 가장 예술을 향유하고 있는 프랑스 소녀, 작은 공책에 그림 그리고 글 쓰고 있다 / 사진. © 임지영
그래서 예술 강의를 하며 웃기게도, 예술 중요하지 않아요. 내 삶이 가장 중요합니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예술은 교양이 아니라 내 삶을 재밌고 의미있게 만드는 매개, 좋은 콘텐츠라고 말한다. 그걸 주체적으로 누리자고 옆구리 콕콕 찌르는 것이다. 미술사 공부 안해도 되고, 전시 서문 안읽어도 되고, 뭔말인지 몰라 주눅들지 않아도 되고, 일단 그냥 우선 맞닥뜨려보자고 선동하는 것. 그림 앞에서 어깨 쫙 펴기, 키득키득 웃기, 뭉클하기 등 자유롭게 감각하기부터 연습하자고 부르짖는다. 궁금하면 나중에 파고들어 공부해도 되고, 정보는 챗지피티한테 물어봐도 된다.

그러므로 예술을 향유하기 가장 좋은 때는 지금이다. 아홉 살은 아홉 살의 눈으로, 서른 살은 서른의 마음으로, 쉰 살은 쉰의 깊이로 보면 되는 것. 어느날 갑자기 오르세에 갔다고 예술 향유자가 되진 않는다. 미술사 많이 들었다고 교양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마음에 공간이 있고 여유가 있어야 한다. 오르세 미술관 안가봐도 되니, 일단 당장 집근처의 미술관부터 알아보자. 편한 차림으로 산책가듯 미술관에 가자. 예술, 만만하게 누려야 한다. 향유, 가깝고 쉬워야 한다. 그래야 예술도 살고 우리도 산다.

임지영 예술 칼럼니스트·(주)즐거운예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