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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are you?”

이 질문은 빠르게 답하는 것이 쉽다. 이름이나 출신지만 말해도 되니까. 그런데 만약 누군가 신중히 생각해 보라고 덧붙인다면 이 질문의 무게는 꽤 묵직해진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전부 해보라는 걸까? 아니면 인간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라는 것일까? 그럼에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대부분은 내가 하는 일로 설명된다. 즉 나는 누구인가? 는 나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가 된다.

그런데 만약 그 일이 배우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촬영 현장 속에 놓인 배우라면 이 질문에 스피드 퀴즈를 하듯 빠르고 명쾌하게 답해야 할 것이다.

‘후 아 유?’
‘세상을 정복하려는 미치광이 과학자!’
‘후 아 유?’
‘성공의 정점에서 권태의 골짜기로 추락한 한 남자’


답은 간단하지만, 그 답을 보여주는 것이 어렵다. 배우는 그때그때 다른 인물이 되기 위해 가면을 써야만 한다. 벤 스틸러는 이 <세브란스: 단절>로 제77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연출상 후보에 올랐지만, 여전히 배우로서의 모습이 낯익다. 테이블 위에 엎드려있는 한 여자에게 던져지는 장대한 이야기의 시작을 여는 단 한마디가 바로 이 ‘후 아 유?’다. 어쩌면 벤 스틸러가 연기를 시작하는 매 순간, 스스로에게 던졌던 마법의 한마디였던 건 아닐까?
벤 스틸러 / 사진출처. ©Fandom, Inc.
벤 스틸러 / 사진출처. ©Fandom, Inc.
배우들과 달리 자기 자신으로만 살아가면 되는 이들에게 ‘연기’는 부정적 행위다. 그건 가면을 쓰고 꾸며내는 것, 남을 속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가 삶을 더 뜨겁게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부조리한 인간이라면 배우의 연기를 감상하는 것을 멈추고 직접 그 연기 속으로 뛰어 들어가야 하며 또한 모든 삶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부조리 그 자체를 살아가기로 결심한 철학자가 아니어도 살아가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연기는 필요하다. 또 스스로에게 ‘후 아 유?’라고 물으며 내가 원하는 인물을 연기해 낼 페르소나를 내면의 무대 공간에 불러들인다면 자신의 정체성이 태어날 때부터 고정적이라는 믿음 속에 살아가는 것보단 훨씬 더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세브란스: 단절>의 ‘이니’들은 연기를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오로지 일하기 위해서만 만들어진,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는커녕, 이름조차 모른 채 테이블 위에서 삶이 시작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인격의 분리를 다룬 이야기에서 그 주체가 되는 건 주로 주인격이지만, 여기서 주도적으로 액션을 취하고 사건에 변화를 일으키는 인물들은 주인격인 아우티(일상적 자아)가 아닌 부인격인 이니(일하는 자아)다. 지옥 같은 사무실에서 태어난 이니들이 그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무기력한 반격을 반복하는 것이 바로 이 이야기의 핵심 기둥이다.
Apple TV 드라마 '세브란스: 단절' 스틸컷 / 사진출처. IMDb
Apple TV 드라마 '세브란스: 단절' 스틸컷 / 사진출처. IMDb
한 영화나 드라마가 숨겨놓은 서브텍스트를 읽어내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야기의 주동자를 파악하는 것이다. <세브란스: 단절>은 아우티의 서사와 이니의 서사가 뒤섞여 있고, 특히 시즌 2에서는 중심 서사가 마크의 아내인 ‘제마 구하기’가 되기에 아우티가 중심인물인 듯 보일 수도 있지만 두 시즌의 결말에서 액션을 취하는 쪽이 언제나 이니라는 점, 또 두 인격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위기를 일으키고 적대자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우티이기에 이 <세브란스: 단절>은 이니들의 이야기라고 보아야 한다.

마크와 달리 헬리의 서사에서는 이 부분이 좀 더 명확하다. 헬리는 처음부터 자신을 가축이냐고 물으며 자신을 특수한 목적으로 키워진 복제인간으로 의심한다. 그런 헬리에게 ‘넌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하며 자신이 적대자임을 공고히 하는 것은 헬리의 아우티다. 이 한마디는 헬리뿐만 아니라 마크를 비롯한 모든 인물에게 존재론적 위기를 선사하고 이 시점에서부터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와 맞서기 시작한다.

어떤 꿈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다

가끔 한 작품이 표방하는 리얼리즘은 오로지 표현 양식에만 존재하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말하는 것은 오히려 판타지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반면, 한 작가의 머릿속에서 펼쳐진 환상의 세계, 때론 쓰디쓴 악몽 같은 그 세계가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보일 때도 있다. 오웰과 헉슬리가 그린 악몽들이 예언적이라는 평을 듣는 것처럼 말이다. 논픽션이 아닌 그들의 상상이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건 현실 세계의 서브텍스트라 할만한, 그 이면에 감춰진 구조를 읽어내고 여기에 자신의 상상을 덧대어 세계와 평행을 이루는 또 다른 세계를 재구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요즈음의 SF 장르에서는 와우 팩터나 신선 지수가 가장 중요하기에 그런 세계를 만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하지만 이 <세브란스: 단절>은 근래에 등장한 SF 장르 중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악몽을 냉혹한 대비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Apple TV 드라마 '세브란스: 단절' 스틸컷 / 사진출처. IMDb
Apple TV 드라마 '세브란스: 단절' 스틸컷 / 사진출처. IMDb
많은 철학자가 인간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라고 했지만, 현대 사회는 행복한 삶을 위한 수단이어야 할 일을 목적화하고 반대로 인간은 수단화했다. 직장에서 이루어지는 역량에 관한 대화 속에서 인간을 사물화하는 묘사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몸을 카페인이나 당을 충전하면 일시적으로 성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엔진이나 프로세서처럼 말하는 광고들은 말할 것도 없고, 몸이 아픈 것이 아니라 고장 난 것 같다고 말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러니 이 <세브란스: 단절> 속의 인물들만큼은 아니겠지만 얼마간은 우리도 스스로를 착취하고 살아간다.

공간이 그리는 냉혹한 대비

<세브란스: 단절>이 현실을 보다 더 냉혹하게 그리는 방법 중 하나는 바로 공간이다. 서리가 끼어든 차 안에서 울고 있는 남자, 차에서 내린 그는 광활한 눈밭을 걸어가기 시작한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그를 미약한 점으로 만들어버린다. 그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에는 건물이라기보다 우주선처럼 보이는 물체가 있다.
루먼 인더스트리 사옥으로 등장하는 <Bell Labs Holmdel Complex> / 사진출처. IMDb
루먼 인더스트리 사옥으로 등장하는 <Bell Labs Holmdel Complex> / 사진출처. IMDb
루먼 인더스트리의 사옥으로 등장하는 건물은 뉴저지에 있는 <Bell Labs Holmdel Complex>다. 거대한 볼륨감으로 눈밭을 걷는 마크의 실루엣을 초라하게 만들어버리는 그 위압적 면모는 내부 공간에서도 이어진다.

그러다 마크가 단절 층으로 들어서는 순간 달리줌 기법이 사용되는데, 히치콕이 처음 사용해서 버티고샷이라 불리기도 하는 오래된 기법이지만 광각과 망원렌즈가 압축하는 공간의 차이를 활용한 이 기법이 두 개의 인격이 전환되는 순간에만 활용되면서 마치 새로운 기법처럼 느껴진다. 마치 두 인격이 세상을 인식하는 감각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듯 말이다.
[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공간과  [아래] <세브란스: 단절>의 공간 / 사진출처. IMDb
[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공간과 [아래] <세브란스: 단절>의 공간 / 사진출처. IMDb
어둡고 위압적인 외부 공간과 달리 단절 층의 공간은 모든 것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듯 인공적이고 지루하다. 여기에서는 대칭구도가 자주 활용되는데 스탠리 큐브릭이 <2001: A Space Odyssey/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나 <The Shining/샤이닝>(1980)에서 대칭구도를 활용하듯 <세브란스: 단절>에서도 이 시각적 균형을 흐트러뜨리고 싶은 인간의 본성을 이용해 인물들의 불안한 내면을 그린다.

흥미로운 점은 그들이 반란을 도모할 때마다 이 대칭 구도가 깨질 뿐만 아니라 무채색 일색이던 공간이 다채로운 색을 지닌 공간으로 변모한다는 점이다. CG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이처럼 다양한 연출 효과를 보여준 것은 이야기의 흐름에 따른 공간 디자인이 잘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외부 세계와 대비되는 이 단절 층의 공간적 특성은 이 이야기가 말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 중 하나다.

한번은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살면서 한번은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는 불멸의 문학 작품들을 우리가 매일 접하는 콘텐츠들과 한 플랫폼에 넣어두고 오직 섬네일과 두세 줄의 로그 라인으로만 선택받도록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미 그곳에 있는 것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을 것이다. 불멸의 문학작품들에도 다양하고 셀 수 없는 살인들, 또 셀 수 없이 많은 문제적 사랑, 부조리한 사회 구조를 악용하는 인물들과 음모들, 이로부터 세상을 구해낼 초인적 능력은커녕 오히려 신경증에 시달리는 나약한 주인공들이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건 작품을 감상하는 이에게 질문을 던지느냐 그렇지 않느냐이다.

섬네일과 로그 라인의 경쟁에서는 사건이 얼마나 도발적이냐가 관건이지만 시간의 세례를 견디는 경쟁에서는 그 작품이 던지는 질문의 묵직함이 관건이다.

동일한 도발적 사건에서 출발하더라도 그것이 그 질문을 던지기 위한 초석이었던 것인지, 미끄러지는 엄지의 선택을 받기 위한 것인지에 따라 그 사이에는 난공불락의 경계가 세워진다.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며 삶이란 것을 한번 제대로 살아보겠다고 결심했거나 혹은 그런 시도를 해본 사람에게는 이 질문은 문장이 아니면 이미지로, 또 이미지가 아니라면 그 어떤 형태로라도 이미 내면에 존재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겐 그 질문들을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삶이며, 뇌 속의 흐르는 전류를 잠시 증폭시켜 줄 뿐인 도발적 사건의 강도보다 한 작품이 던지는 질문의 묵직함에서 더 큰 쾌감을 느낄 것이다.

<세브란스: 단절>은 빠른 속도로 갱신되고 채워지는 수많은 썸네일과 도발적 로그 라인들 사이에서 드물게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이야기다. 이 시리즈의 첫 대사가 ‘후 아 유’이듯, 또 이니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데에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가상의 책 제목이 ‘당신 다운 당신(The you, you are)’이듯이 이 이야기는 분명 보는 이가 스스로 정체성을 탐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가상의 책 제목 <당신 다운 당신/The you, you are> / 사진출처. IMDb
가상의 책 제목 <당신 다운 당신/The you, you are> / 사진출처. IMDb
그 질문은 러닝타임 내내 이어진다. 그렇기에 여기에는 요즈음 SF 장르라면 마땅히 제공해야 할 처음 만나는 신선함도, 방대한 세계와 모험을 멈추지 않는 매력적인 주인공도 없지만 느리고 긴 호흡을 통해 묵직한 스트레이트 같은 질문을 내 명치에 꽂아 넣는다.

‘후 아 유?’

이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이 질문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인물들과 그 투쟁을 함께하는 것은 지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리고 그 즐거움은 두툼한 문학 작품의 책장을 뒤적일 때만큼이나 강렬하다.

박정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