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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스스로 죽음을 설계하다, 비로소 삶을 완성하다
내가 죽는 날
애니타 해닉 지음 / 신소희 옮김
수오서재 / 348쪽│2만원
죽음 준비하며 되찾은 통제권
무력함이 의미있는 마무리로 전환
조력 사망 현장을 기록한
문화인류학자의 색다른 시선
애니타 해닉 지음 / 신소희 옮김
수오서재 / 348쪽│2만원
죽음 준비하며 되찾은 통제권
무력함이 의미있는 마무리로 전환
조력 사망 현장을 기록한
문화인류학자의 색다른 시선
책을 쓴 애니타 해닉은 미국 브랜다이스대 인류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인 문화인류학자다. 저자는 조력 사망이 합법화된 오리건주 등에서 수년간 현장을 동행하며 존엄사 제도를 연구했다.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로 일하며 임종을 앞둔 이들 곁에 머물거나 환자와 가족, 의료진과 함께 삶의 마지막 순간을 동행하는 참여관찰자로서 그들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목소리를 기록했다.
책은 조력 사망을 단순히 치사량 약물을 삼키는 행위로 보지 않는다. 이 책에 등장하는 환자들은 자신이 죽을 시간과 장소를 선택하고, 관계를 정리하고, 유산을 분배하며, 마지막까지 자신답게 살고자 애쓴다. 이는 환자뿐 아니라 남겨진 이들에게도 애도와 준비의 시간을 제공한다. 자신이 원하는 마지막을 연출하는 과정은 무력한 죽음을 의미 있는 마무리로 전환시킨다.
오히려 죽음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환자는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설계하고, 인간으로서의 통제권을 되찾는다. 환자들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이 반드시 육체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실존적 고통, 즉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고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감정이야말로 삶을 지속할 수 없게 하는 결정적 요인일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답게 존재하고자 애쓰는 과정은 단지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존엄과 주체성을 말하는 일이다.
책은 조력 사망이 자살과 동일시되며 낙인이 덧씌워지는 현실을 지적한다. 언어는 사고의 도구이자 사회적 인식의 틀이다. 조력 사망을 자살로 부르면 환자는 결정을 숨기고, 유족은 죄책감 속에 슬픔을 감내하게 된다.
그렇다고 조력 사망 필요성을 강조한 책은 아니다. 조력 사망이 ‘난치병 말기 환자와 비슷한 제약 속에서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을 암묵적으로 평가 절하한다’는 관점도 소개한다. 저자는 또 존엄성의 정의 역시 환자 본인의 몫이라고 강조한다. 호흡기와 연명치료를 선택하든, 고요한 이별을 택하든, 모든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역설적으로 남은 삶을 소중히 여기게 한다.
저자는 ‘좋은 죽음’이 현대인의 또 다른 과제가 돼선 안 된다는 경고도 빼놓지 않는다. 웰다잉이 여력 있는 일부 사람의 특권처럼 기능해선 안 되며, 순수한 권리로서 다양한 선택지 중 하나로만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죽음을 말하지만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되묻는 책이다. 죽음의 언어가 빈약한 사회에서 이 책은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를 사유하게 만든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