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전주의 시대의 여신 조각상이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1954~)의 조각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아르테미스 여신 조각이 활을 단단히 쥔 채 움베르토 보치오니(Umberto Boccioni, 1882~1916)의 풍경화를 응시하고 있기도 하고. 마치 작품끼리 서로 관찰하거나 대화라도 나누고 있는 듯하다. 시대가 달라도 한참 다른 작품을 한 공간에 전시하면서 미술관이 부린 ‘재치’ 탓이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런 조합은 관람객을 미소 짓게 만든다. 나도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입꼬리가 올라갔다. 여러 시대의 작품을 함께 전시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매체가 다른 작품을 한 곳에서 보여주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작품끼리 서로 소통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은 흔하지 않다. 이탈리아 로마국립현대미술관(Galleria Nazionale d’Arte Moderna e Contemporanea)은 늘 이런 보기 드문 풍경을 관람객에게 선사한다.
아니쉬 카푸어 조각과 신고전주의 여신상 / 사진. ⓒ김선경
아니쉬 카푸어 조각과 신고전주의 여신상 / 사진. ⓒ김선경
움베르토 보치오니 풍경화와 아르테미스 / 사진. ⓒ김선경
움베르토 보치오니 풍경화와 아르테미스 / 사진. ⓒ김선경
로마국립현대미술관은 1883년에 문을 열었다. 이탈리아가 통일을 이룩한 뒤 ‘근대 국가 이탈리아’의 문화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설립했다. 이 미술관은 19세기 중반부터 21세기 초를 아우르는 컬렉션을 갖고 있다. 여느 국립미술관이 그렇듯 이 미술관도 처음에는 자국 작가 작품을 중심으로 컬렉션을 꾸렸다. 그러다가 점차 여러 나라 작가의 작품으로 수집 범위를 넓혔다. 미술관은 트레비 분수 근처의 임시 전시 공간에서 시작해서 여러 건물을 옮겨 다녔다. 지금 건물에 자리 잡은 것은 지난 1915년이다. 이탈리아 건축가 체사레 바자니(Cesare Bazzani, 1873~1939)가 설계한 건물이다. 신고전주의와 아르누보 양식을 섞어 디자인했다.

로마국립현대미술관에 처음 방문했을 때 입구 계단에 써 놓은 흰색 문구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바람만큼 나를 잘 빗겨주는 것은 없다 (Nessuno Mi Pettina Bene Come Il Vento)’는 문구였다. 이탈리아 시인 알다 메리니(Alda Merini, 1931~2009)의 시이다. 계단에 쓴 문구는 방문객에게 미술관이 던지는 첫 번째 메시지이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2024년 2월이었다. 미술관은 이 문구를 주기적으로 바꾼다고 한다. 2016년 미술관을 크게 정비한 뒤 다시 열었을 때는 ‘시간은 뒤틀려 있다 (Time is out of joint)’라는 문구였다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햄릿’에 나오는 대사이다.
사진. ⓒ김선경
사진. ⓒ김선경
로마국립현대미술관은 ‘시간은 뒤틀려 있다’는 문구가 딱 어울리게 전시하고 있다. 전통적 시간 개념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는 말이다. 미술관은 작품을 특정 학파나 사조 혹은 연대에 따라 배치하는 방식을 버렸다. 그 대신 작품이 어우러져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도록 배치하는 것이다. 작품을 색감이나 형태 또는 주제와 같은 다양한 공통점을 바탕으로 묶는 시도이다. 이러한 새로운 전시 방법은 색다른 관람 경험을 준다. 대표적 예는 미켈레 캄마라노(Michele Cammarano, 1835~1920)의 회화 두 점과 알베르토 뷔리(Alberto Burri, 1915~1995)의 추상 작품 그리고 릴리아나 모로(Liliana Moro, 1961~ )의 조각을 함께 전시한 것이다.

캄마라노의 대형 작품은 둘 다 전쟁을 주제로 한 것이다. <도갈리 전투 (La Battaglia di Dogali)>(1896)는 1887년 이탈리아와 에티오피아 간의 전투를 주제로 삼았다. <산 마르티노의 전투 (La Battaglia di San Martino)>(1883)는 1859년 이탈리아 독립 전쟁 때의 중요한 전투를 그린 작품이다. 함께 전시한 뷔리의 추상 작품 <거대한 붉은색 18번 (Grande Rosso n. 18)>(1964)은 그가 1960년대에 제작한 ‘플라스티크(Plastiche)’ 시리즈이다. 산업용 플라스틱을 불로 태우고 녹일 때 그 표면에 생기는 파열을 활용한 작품이다. 작품은 피를 흘리는 살결이나 화상 자국처럼 보이기도 했다.
(왼쪽부터) <산 마르티노의 결투>, <언더독>, <도갈리 전투> / 사진출처. tripgo 사이트
(왼쪽부터) <산 마르티노의 결투>, <언더독>, <도갈리 전투> / 사진출처. tripgo 사이트
모로의 조각은 <언더독 (Underdog)>(2005)이다. 이 작품은 실물 크기 도고 아르헨티노 다섯 마리로 이루어져 있다. 개 한 마리는 쓰러져 있고 두 마리는 서로 물어뜯으며 싸우고 있다. 여기에 울부짖는 개와 이 장면을 멀리서 바라보는 개가 있다. ‘싸움’을 관조하는 개가 인상적이었다. 개가 마치 전장을 허망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이 세 작품은 서로 제작 시대가 다르다. 그런데도 한 전시 공간에서 어우러져 폭력과 폭력이 남긴 상흔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보여주는 점이 흥미로웠다. 시대가 다를 뿐 아니라 각각 구상 회화와 추상 회화 그리고 조각이라는 각기 다른 매체라는 점도 인상 깊었다.

다른 작품의 조합도 강렬했다. 안토니오 카노바(Antonio Canova, 1757~1822)의 <헤라클레스와 리카 (Ercole e Lica)>(1795~1815)는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클레스가 자신에게 독이 묻은 옷을 전한 하인인 리카를 죽이는 장면을 담고 있다. 함께 전시한 피노 파스칼리(Pino Pascali, 1935~1968)의 <약 32㎡의 바다 (32 mq di Mare Circa)>(1967)는 카노바의 조각상 앞에 있었다. 파스칼리의 작품은 얕은 철제 트레이 32개에 파란 물을 담아 놓았다. 바다를 시각화한 것이다. 헤라클레스가 리카를 바다에 던져 죽였다는 힌트를 주는 것처럼 보였다. 이 두 작품 뒤에는 주세페 페노네(Giuseppe Penone, 1947~)의 <아카시아 가시 위에 금박 벗기기 (Spoglia d’oro su Spine d’acacia – Bocca)>(2001)가 있었다. 마치 리카의 상흔처럼 보이도록 의도한 것 같았다.
카노바, 파스칼리, 페노네의 작품 전시전경 / 사진출처. tripgo 사이트
카노바, 파스칼리, 페노네의 작품 전시전경 / 사진출처. tripgo 사이트
로마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방식은 매력적이다. 새로운 조합으로 방문객에게 신선한 관람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파격적 시도에는 약점도 있다. 작품을 제작한 배경이나 작가의 의도 그리고 예술 사조 내에서 작품의 위치가 흐릿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특정 시기의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원하는 관람객에게는 정보를 충분하게 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덧붙여 관람객이 큐레이터가 들려주는 해석에 영향을 지나치게 많이 받을 것 같았다. 작품끼리 위계가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한 작품이 다른 작품을 더 효과적으로 감상하게 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시간을 뒤튼 미술관은 맛있는 경험이었다. 미술을 공부하는 공간보다는 음미하는 공간으로서 말이다!

김선경 미술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