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과 영화는 서사를 전달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로 매체가 구별된다. 영화는 이미지를 스크린에 투시한다면 연극은 실제 무대에서 사건을 실시간으로 구현한다. 굳이 비교하면, 영화는 평면, 연극은 입체라고 할까. 대신 영화는 2D의 한계를 극복하려 다양한 기법으로 여러 겹의 레이어를 쌓아 입체성을 확보한다. 연극은 풀 숏의 무대를 가상으로 쪼개 구석구석 활용함으로써 단일 공간의 경계를 넘어선다.

욘 A. 린드크비스트의 소설 <렛미인>은 스웨덴과 미국에서 두 차례 영화화가 된 적 있는 세계적인 텍스트다. 이를 원작으로 한 연극이 한국에서 2016년 초연이 이뤄졌고, 9년 만에 재연이 확정됐다. 지금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는 <렛미인> 공연이 한창이다. 무대에는 40여 그루의 벌거숭이 나무가 학익진의 형태로 펼쳐져 있고, 눈이 소복하게 쌓인 중앙에는 단순한 형태의 정글짐이 자리 잡고 있다.
1막 엔딩 자작나무숲 / 사진제공. 토브컴퍼니
1막 엔딩 자작나무숲 / 사진제공. 토브컴퍼니
<렛미인>의 팬에게 묘사한 무대 연출은 익숙하다. 주요한 사건이 발생하는 공간이라서다. 뱀파이어의 정체를 숨겨야 해서 고독한 일라이(권슬아, 백승연)와 부모는 이혼하고, 학교에선 왕따당해 외로운 오스카(안승균, 천우진)에게 정글짐은 관계의 상징과도 같은 기구다. 사각의 틀 여러 개가 미로의 형태를 띠고 있어 서로에게 곧장 다가갈 수 없지만, 이들을 가로막는 철창 같은 구조를 통과하거나 그 위에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어서다.

사랑이 싹트는 정글짐 주변의 나무숲은 일라이를 먹여(?) 살리겠다고 그의 남자를 자처한 이가 피를 모으는 살인의 공간이다. 소년과 소녀의 사랑 그 이면에 자리한 무시무시한 배경의 의미를 구조화한 공간 연출이다. 65분의 1부와 55분의 2부 사이에 인터미션 20분을 두고도 무대 구도는 변함이 없다. 오스카가 동급생에게 괴롭힘 당하는 학교나 일라이가 경찰을 살해하는 집안 장면은 무대 한쪽에 사물함이나 궤짝 같은 가구를 활용해 공간화한다.
함버그 서장을 죽이는 슬아일라이 / 사진제공. 토브컴퍼니
함버그 서장을 죽이는 슬아일라이 / 사진제공. 토브컴퍼니
일라이는 학교 폭력으로부터 오스카를 구하고, 오스카는 일용할 양식을 위해 다음 희생양이 필요한 일라이를 구원하고, 그럼으로써 살얼음 낀 시선의 세상에서 탈출하는 사연은 영화와 연극이 동일하다. 다만, 토니상 경력의 존 티파니(<블랙 워치> <원스> 등) 감독은 레이건 운운하는 라디오 방송을 노출하며, 1980년대 당시 미국에서 유행했던 슬래쉬 영화의 전통을 따라 오스카와 같은 소수자가 어떻게 살인마가 되었는지를 서브 텍스트로 삼는다.

사실 영화의 특정 장면이 무대에서 어떻게 묘사되는지를 살피는 게 연극 <렛미인>의 관람 포인트다. 예컨대, 분신한 중년 남자와의 관계를 의심한 경찰이 일라이를 찾아왔을 때의 연출이 그렇다. 영화의 욕조가 연극에서는 궤짝으로 변형되어 일라이가 빛을 피해 잠을 자는 도구로 활용된다. 이를 방해하는 경찰을 일라이가 공격할 때 벼락 떨어지는 듯한 음악과 함께 궤짝 안쪽에 설치된 조명이 놀란 경찰의 얼굴을 직사하며 관객에게 스릴을 선사한다.
황산병을 든 하칸 / 사진제공. 토브컴퍼니
황산병을 든 하칸 / 사진제공. 토브컴퍼니
가장 경이로운 무대 연출은 학교 수영장에서 펼쳐지는 복수극이다. 오스카가 물속에서 괴롭힘을 당할 때 일라이가 나타나 가해자를 제거하는 장면은 영화와 연극 모두 하이라이트다. 공간 이동이 자유로운 영화와 다르게 무대 위에 수영장 시설이 보이지 않는 이 장면을 연극은 어떻게 표현할까, 궁금증이 무색하게 정글짐이 앞뒤 위치를 바꾸자, 숨겨져 있던 투명한 물탱크가 드러나고 금세 물이 채워지면서 그럴싸한 수영장의 면모가 형성된다.

오스카를 연기한 배우가 물탱크 안에서 숨을 참는 동안 일라이가 행하는 순식간의 살육 장면은 점멸하는 조명의 도움을 받으며 잔인함과 통쾌함의 모순된 감정이 영화와는 전혀 다른 표현으로 연극 <렛미인>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곧이어 직렬 형태로 연결된 4개의 백열등이 천장에서 내려와 순서대로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하면 무대는 한창 이동 중인 기차 안으로 변모한다. 오스카와 일라이의 미래를 향한 메타포라 할만하다.

오스카와 일라이는 자유를 향해, 자신들을 괴롭히지 않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 같은 기차 장면은 겉보기에 해피엔딩이고 낭만적인 듯 해도 실상은 비극적이다. 설원 위에 강조점을 찍듯이 뚝뚝 떨어진 핏방울의 인상처럼 오스카의 미래는 이미 일라이와 반평생을 함께하다 살인 중인 현장을 들켜 분신한 중년 남자이고, 일라이는 그때가 되면 또 다른 남자를 구해 반복된 패턴으로 영원의 굴레에, 지옥의 다른 이름에 처할 것이라서다.
엔딩_우진오스카 / 사진제공. 토브컴퍼니
엔딩_우진오스카 / 사진제공. 토브컴퍼니
좀 다른 비유이기는 해도 <렛미인> 또한 소설과 영화와 연극으로 이뤄진 기차라는 생각을 했다. 또 어떤 매체가 <렛미인>의 기차에 칸을 더할 수 있을까. 무엇이 되었든 하나의 텍스트가 매체를 달리해 여러 나라의 독자와 관객과 관람객과 소통하는 모습은 오늘날의 예술이 다다를 이상적인 형태가 아닐까 싶다. 2004년 소설로 출간된 이래 여러 예술의 경유지를 거치며 운행 중인 <렛미인>의 한국 연극 공연은 7월 3일부터 8월 16일까지 열린다.

허남웅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