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국제 영화제 로고. AFP, 연합
칸 국제 영화제 로고. AFP, 연합
올해 프랑스 남부 항구도시 칸에는 격동의 바람이 세차게 불어닥칠 예정이다. 다음 달 열리는 ‘제78회 칸 국제영화제’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품은 영화들이 대거 초청됐다. 이 바람을 타고 칸 영화제 역사상 처음으로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영화 한 편이 상륙한다. 반면 12년 만에 ‘초청작 제로(0)’ 성적표를 받아든 한국 영화는 먼발치에서 축제를 지켜보게 됐다.

칸 영화제 집행위원회는 지난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UGC몽마르스 극장에서 경쟁부문과 ‘주목할 만한 시선’을 비롯한 비경쟁 부문 등 올해 영화제에서 선보일 총 60편의 초청작을 공개했다. 티에리 프레모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올해는 역대 최다인 2909편의 장편영화 출품작이 접수됐다”며 “전 세계 영화인들의 높은 관심과 참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벨기에 영화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왼쪽)과 뤽 다르덴 형제가 2019년 벨기에 영화 산업 관련 컨퍼런스에 앞서 열린 인터뷰 중 발언하는 모습. 이들은 신작 '젊은 어머니들'로 제78회 칸 국제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연합,AFP
벨기에 영화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왼쪽)과 뤽 다르덴 형제가 2019년 벨기에 영화 산업 관련 컨퍼런스에 앞서 열린 인터뷰 중 발언하는 모습. 이들은 신작 '젊은 어머니들'로 제78회 칸 국제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연합,AFP
돌아온 거장 vs 1980년대생 신예의 대결

올해 경쟁부문에는 총 19편의 작품이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장피에르·뤽 다르덴 형제의 ‘젊은 어머니들’, 쥘리아 뒤쿠르노 ‘알파’, 하야카와 지에 ‘르누아르’, 웨스 앤더슨 ‘페니키안 스킴’, 아리 애스터 ‘에딩턴’, 올리버 허머너스 ‘소리의 역사’, 합시아 헤지 ‘마지막 소녀’, 올리버 라세 ‘시랏’, 리처드 링클레이터 ‘누벨바그’, 세르게이 로즈니차 ‘두 검사’, 마리오 마르토네 ‘탈출’,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첩보원’, 자파르 파니히 ‘우연한 사고’, 켈리 라이카트 ‘배후자’, 도미니크 몰 ‘137번 파일’, 마샤 슐린스키 ‘낙하의 소리’, 카를라 시몬 ‘로멜리아’, 타릭 살레 ‘공화국의 독수리들’, 요아킴 트리에르 ‘정서적 가치’ 등이다.

노련한 거장들과 차세대 영화계를 이끌 신진 감독들이 어우러졌다는 점이 특징이다. 우선 거장 다르덴 형제부터 웨스 앤더슨, 리처드 링클레이터 등 명성 높은 감독들이 돌아온다. 1999년과 2005년에 ‘로제타’와 ‘더 차일드’로 각각 칸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다르덴 형제는 올해 젊은 엄마들의 쉼터를 배경으로 하는 ‘젊은 어머니들’로 10번째 칸 경쟁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YONHAP PHOTO-7445> (FILES) Producer Ari Aster poses for photographers at the premiere of ?Dream Scenario? at the Toront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in Toronto, Ontario, on September 9, 2023. Films by US director Wes Anderson, Iran's Jafar Panahi and perennial Belgian favourites the Dardenne brothers will vie for the coveted Palme d'Or at the Cannes Film Festival next month, organisers said on April 10, 2025. US director Ari Aster will showcase his film 'Eddington' at the festival. (Photo by Geoff Robins / AFP)/2025-04-10 19:54:45/
<저작권자 ⓒ 1980-2025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YONHAP PHOTO-7445> (FILES) Producer Ari Aster poses for photographers at the premiere of ?Dream Scenario? at the Toront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in Toronto, Ontario, on September 9, 2023. Films by US director Wes Anderson, Iran's Jafar Panahi and perennial Belgian favourites the Dardenne brothers will vie for the coveted Palme d'Or at the Cannes Film Festival next month, organisers said on April 10, 2025. US director Ari Aster will showcase his film 'Eddington' at the festival. (Photo by Geoff Robins / AFP)/2025-04-10 19:54:45/ <저작권자 ⓒ 1980-2025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아리 애스터와 카를라 시몬, 마사 쉴린스키 등 1980년대생 신예 감독들도 거장들과 어깨를 견주게 됐다. ‘미드소마’ 등 장르 영화로 유명한 애스터 감독은 자신의 네 번째 장편 ‘에딩턴’으로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이 영화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뉴멕시코를 배경으로 한 현대 서부극 블랙코미디이다.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은 카를라 시몬은 가족을 찾는 여정을 떠나는 10대 소녀의 이야기 ‘로멜리아’를 선보인다.

침묵하지 않는 영화, 그리고 여성주의

올해 칸의 경향성은 한 마디로 ‘침묵하지 않는 영화’에 대한 고평가다. 말 그대로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들이 대거 초청받았다. 특유의 작가주의적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전쟁, 전염병, 기후위기, 자연재해 등 갈등과 위기가 일상화된 시대적 흐름을 수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성 노동자, 이민자 등 사회적 약자를 조명해온 숀 베이커 감독의 ‘아노라’가 황금종려상을 받은 지난해와 비슷한 맥락이 이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감독인 세르게이 로즈니차의 ‘두 검사’가 단적인 예다. 이오시프 스탈린의 대숙청 시기 소련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강력한 권력의 어두운 이면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은 타릭 살레의 ‘공화국의 독수리들’, 1970년대 군사독재 정권에서 탄압을 피해 도망치는 남성의 이야기를 담은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첩보원’도 결이 비슷하다. 프랑스 감독인 합시아 헤지의 ‘마지막 소녀’는 종교적·성적 소수자인 여성이 가족과 사회에 맞서 저항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프랑스 배우 합시아 헤지가 지난 2월 프랑스 파리 올림피아 극장에서 열린 제50회 세자르 영화상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모습. 헤지는 올해 칸 영화제에서 자신이 연출한 ‘마지막 소녀’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연합,AFP
프랑스 배우 합시아 헤지가 지난 2월 프랑스 파리 올림피아 극장에서 열린 제50회 세자르 영화상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모습. 헤지는 올해 칸 영화제에서 자신이 연출한 ‘마지막 소녀’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연합,AFP
여성 감독들도 약진했다. 올해 19편의 경쟁부문 초청작 중 6편이 여성 감독들의 작품으로 집계됐다. 영화제 포문을 여는 개막작도 프랑스의 여성 감독 아멜리 보닌의 ‘리브 원 데이’가 낙점됐다. 할리우드 여배우 스칼렛 요한슨의 감독 데뷔작인 ‘엘리노어 더 그레이트’도 초청 받았다. 프레모 집행위원장은 “영화제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여성 감독 영화가 포함됐다”고 밝히면서 영화계에서 여성의 역할이 확대될 수 있도록 “내년에는 여성 집행위원장이 선출되길 희망한다”고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칸으로 가는 나이지리아와 톰 크루즈

올해 칸 영화제 초청작에서 눈에 띄는 작품은 아키놀라 데이비스 주니어 감독이 연출한 ‘나의 아버지의 그림자’다. 역량 있는 영화인을 발굴하기 위한 섹션인 ‘주목할 만한 시선’에 포함된 이 작품은 칸 영화제에서 선보이는 첫 나이지리아 영화다. 1990년대 나이지리아 대통령 선거 직후 혼란스러운 사회를 가로지르는 부자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데이비스 주니어 감독은 미국 매체 CNN을 통해 “이번 성과는 과거와 현재, 미래에 나이지리아 영화의 토대를 쌓아온 모든 이들을 기리는 것”이라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창작을 이어가는 나이지리아 독립 영화인들을 대표한다는 생각에 설레면서도 한편으로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YONHAP PHOTO-7441> (FILES) US actress Scarlett Johansson arrives onstage during the CinemaCon 2025 Universal Pictures and Focus Features presentation at The Colosseum at Caesars Palace in Las Vegas, Nevada on April 2, 2025. Films by US director Wes Anderson, Iran's Jafar Panahi and perennial Belgian favourites the Dardenne brothers will vie for the coveted Palme d'Or at the Cannes Film Festival next month, organisers said on April 10, 2025. Scarlett Johansson making her directorial debut will showcase her film ' Eleanor the Great in the ' Un certain regard' competition. (Photo by VALERIE MACON / AFP)/2025-04-10 19:54:44/
<저작권자 ⓒ 1980-2025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YONHAP PHOTO-7441> (FILES) US actress Scarlett Johansson arrives onstage during the CinemaCon 2025 Universal Pictures and Focus Features presentation at The Colosseum at Caesars Palace in Las Vegas, Nevada on April 2, 2025. Films by US director Wes Anderson, Iran's Jafar Panahi and perennial Belgian favourites the Dardenne brothers will vie for the coveted Palme d'Or at the Cannes Film Festival next month, organisers said on April 10, 2025. Scarlett Johansson making her directorial debut will showcase her film ' Eleanor the Great in the ' Un certain regard' competition. (Photo by VALERIE MACON / AFP)/2025-04-10 19:54:44/ <저작권자 ⓒ 1980-2025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국가에서 나온 영화들이 칸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적은 많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영화 산업도 발전한 편인 나이지리아 영화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아프리카 영화에 대한 관심이 대체로 저조했기 때문이란 점에서 이번 초청은 국제 영화계의 물줄기가 조금씩 모습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나이지리아 문화 당국도 이번 칸 영화제에 국가관을 마련해 영화 지원사격에 나설 계획이다.

톰 크루즈의 여덟 번째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인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도 칸 영화제에 초청 받았다. 1996년 첫 선을 보인 이후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블록버스터가 된 이 시리즈 작품이 칸 영화제에 초청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크루즈의 현실감 높은 액션 등이 하나의 작품성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영화제 측은 “약 30년에 걸쳐 축적된 스릴과 스턴트, 흥미진진한 재미를 갖춰 잊을 수 없는 영화적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고 했다.
<YONHAP PHOTO-6925> (FILES) US actor Tom Cruise poses on the red carpet upon arrival for the UK Premiere of the film 'Mission: Impossible - Dead Reckoning Part One' in London, on June 22, 2023. The latest installment of the ">
<YONHAP PHOTO-6925> (FILES) US actor Tom Cruise poses on the red carpet upon arrival for the UK Premiere of the film 'Mission: Impossible - Dead Reckoning Part One' in London, on June 22, 2023. The latest installment of the "Mission: Impossible" film series will premiere at the 2025 Cannes Film Festival on May 14, 2025, organisers announced on April 8, 2025. US actor Tom Cruise will present ?Mission: Impossible - The Final Reckoning?, which is to mark the end of the action saga, out of competition in Cannes. (Photo by HENRY NICHOLLS / AFP)/2025-04-08 22:38:18/ <저작권자 ⓒ 1980-2025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한국 영화, 12년 만의 굴욕

반면 한국 영화는 올해 칸 영화제에서 찾아볼 수 없다. 경쟁 부문을 포함해 비경쟁,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주목할 만한 시선, 칸 프리미어 등에서 초청받지 못하면서다. 연상호 감독의 ‘얼굴’, 김병우 감독의 ‘전지적 독자 시점’ 등이 출품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초청작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한국 영화가 칸 영화제 경쟁·비경쟁 부문 진출에 모두 실패한 건 2013년 이후 12년 만이다.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한국 영화는 2019년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K무비 전성기를 찍었다. 하지만 2022년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받고, 송강호가 ‘브로커’로 남자배우상을 받은 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 2년간 경쟁 부문에서 초청작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 2’가 대중성과 상업성, 장르성을 갖춘 작품을 소개하는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서 상영되고, ‘영화청년, 동호’가 ‘칸 클래식’ 부문에 소개된 정도가 전부였다.
칸 영화제 박찬욱 감독의 모습. 한경DB
칸 영화제 박찬욱 감독의 모습. 한경DB
당초 기대를 모았던 박찬욱 감독의 신작인 ‘어쩔 수가 없다’는 후반 작업 일정으로 출품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칸 영화제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로 불리는 2000년대 들어 매년 많게는 3~4편씩 한국 영화를 소개해왔단 점에서 한국영화의 위기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한편 올해 칸영화제는 다음 달 13일부터 24일까지 진행된다. 프랑스 국민배우인 쥘리에트 비노슈가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