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은 그림의 본질이고, 흙은 사람의 원형이다. 유숙자 작가는 모래로 색을 만들어 캔버스에 조형적 추상을 펼쳐낸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관계, 재생 그리고 평화라는 테마를 고찰하면서 인간 본연과 인류의 원시적인 형태를 캔버스 위에 표현했다. 아마도 2026년에 요르단 암만과 팔레스타인 라말라에서 열릴 《유숙자 초대전》도 작가가 추구해 온 작품 세계가 중동의 상황과 감성적 교류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파리에서 열릴 전시도 마찬가지다.
가평에 있는 가이 프로젝트(GAI PROJECT)에서 《색과 조형의 교향곡- 故 김흥수/유숙자 展》이 3월부터 6월까지 열린다. 가이 프로젝트는 화가들에게 작업 공간을 제공하고, 지역사회의 예술적 영감을 확산하기 위해 기획된 프로젝트다. 한국미술진흥회와 유숙자의 협력을 통해 탄생한 공간이기도 하다.
가평에 위치한 가이 프로젝트 내 오픈 스튜디오 / 사진. ⓒ이진섭
이번 전시에서 유숙자는 추상 이상의 명상적 동기를 주는 <제네시스 투게더>(2018)를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인류의 모든 물질이 물, 불, 공기,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플라톤의 '4원소설(元素說)'과 맞닿아 있는 원색적 팔레트가 관람객의 원초적이고, 윤회적인 감수성을 자아낸다.
유숙자 작가의 <제네시스 투게더> / 사진. ⓒ이진섭"음과 양이 하나로 어울려 완전을 이룩하듯 사실적인 것과 추상적인 두 작품 세계가 하나의 작품으로서 용해된 조화를 이룩할 때 조형의 영역을 넘은 오묘한 조화의 예술세계를 펼쳐진다."
- 1977년 7월 7일 하모니즘 선언문 (故 김흥수)
<잉태>(1995), <사색하는 여인>(1987), <사랑을 온세상에>(1974), <남자의 초상>(1970) 등을 남긴 작가이자 한국적 하모니즘 창시자인 故 김흥수 화백의 대작 <미의 심판>(1997)도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가로 7미터 세로 2.5미터가 넘는 이 그림은 원색으로 덧칠해진 나체의 인물들이 서로 엉켜있는 작품이다. 이는 작가가 생전에 추구했던 '하모니즘'이 색의 본질과 날 것 그대로의 인간을 통해 조화와 조형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추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마치 고갱의 <타히티의 연인들>이 동양으로 회화적 무대를 옮긴 것처럼 그림 속에는 미-추, 선-악, 평화-폭력, 증오-사랑 등 양가의 감정들이 각기 색을 달리하는 인물로 표현되었는데, 작가는 복합적인 감정들이 조화로운 미적 상태로 이행하는 과정을 거대한 화폭에 담은 듯하다.
김흥수 작가의 <미의 심판> / 사진. ⓒ이진섭
이번 전시를 기획한 조이내 디렉터는 "관객들이 한국 현대 미술에서 색과 조형의 세계관을 넓혀준 故 김흥수와 유숙자 작가의 작품들과 대면하면서 다층적인 체험을 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故 김흥수 화백의 <미의 심판>을 주축으로 유숙자의 조형적 실험과 함께할 때 각각의 작품들이 한 공간에서 조화로운 소리로 연주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흥수 작가의 <미의 심판>(작품 세부) / 사진. ⓒ이진섭
따뜻한 봄날에 가평에 갈 일이 있다면, 자연과 인간의 본질에 맞닿은 작품을 한 번쯤 경험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진섭 칼럼니스트•아르떼 객원기자
■ 전시 《색과 조형의 교향곡 - 故 김흥수/유숙자》
- 장소: 가이 프로젝트 (가평군 상면 청군로 963) - 일정: 3월 5일-6월 30일 (매주 목, 금, 토 11시-17시 전시장 오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