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4위 로펌인 율촌이 인공지능(AI)으로 소송과 자문의 기초자료를 검색하고 서류 작성까지 가능한 시스템을 도입한다. ‘AI 변호사’에 자료 정리와 서류 초안 작성 등을 맡기겠다는 포석이다. 율촌의 선제적인 AI 시스템 구축으로 대형 로펌의 기술 경쟁이 한층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율촌, 검색 AI 도입…"2년차 변호사급 실력"

○AI로 10초 안에 자료 준비 끝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법인 율촌은 오는 10월 AI로 내부 지식관리 데이터를 분석해 소속 변호사에게 자료를 제공하는 정보기술(IT)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다. 변호사가 변론 자료를 요청하면 AI가 10초 이내에 관련 법 조항과 최신 판결 동향 등을 정리해 제공한다. 자문 업무에서도 법률 정보와 의견서, 제안서, 계약서 등을 신속하게 찾아줘 초안 작성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다.

율촌은 국내 대형 IT 기업과 손잡고 지난해부터 최적의 대규모언어모델(LLM)을 개발해왔다. 한 관계자는 “현재 개발한 AI의 성능은 변호사들이 법률용어가 아니라 네이버 지식인처럼 평범한 질문을 하더라도 AI가 90% 이상 정확하게 답하는 수준에 달했다”며 “1, 2년차 ‘어쏘’ 변호사와 맞먹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27년간 축적한 내부 법률 지식을 학습시켜 챗GPT 등 범용 AI에 비해 오류나 환각(거짓 정보를 사실처럼 제공) 가능성도 훨씬 낮다. 율촌은 2015년부터 구성원들이 만든 모든 데이터를 데스크톱 PC가 아니라 중앙서버에 모아 관리해왔다. 의견서, 소송문서 등 1000만여 건의 자료를 보유 중이다.

다른 대형 로펌도 AI를 활용한 업무 효율성 제고에 나섰다. 세종은 지난해 AI로 의견서, 소장 등 법률문서를 분류하는 시스템을 도입한 데 이어 올해 1월엔 ‘생성형 AI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독자 AI 모델을 개발 중이다. 업계 2, 3위를 다투는 광장과 태평양은 자체 개발한 AI 번역기를 도입해 해외 자료 검토 시간을 대폭 줄였다. 업계 1위인 김앤장은 디지털포렌식 관련 자료를 보관하는 서버에 AI 기술을 적용해 1주일에 100만 건 이상의 문서를 확인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

○AI 도입은 ‘생존의 문제’

대형 로펌의 AI 개발 경쟁은 기존 전략으론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종합 로펌으로서 어느 정도 단계에 도달하면 변호사 확충이 매출 증대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광장은 지난해 매출 역성장(-1.1%)을 기록했고, 태평양은 1.6% 성장하는 데 그쳤다. 미국 렉시스넥시스 등 글로벌 리걸테크가 적극적으로 국내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도 토종 로펌의 행보가 빨라진 배경으로 꼽힌다.

국내 로펌들은 토종 IT 업체와 합을 맞추고 있다. ‘오랫동안 축적한 내부 자료를 외국 AI의 학습 대상으로 넘겨줄 수 없다’고 판단해서다. 최근 업계 10위권의 대륙아주는 네이버클라우드와 손잡고 법률상담 AI 챗봇(AI 대륙아주)을 선보이기도 했다.

본격적인 AI 변호사 도입을 위해선 정부 규제와 변호사단체의 반발 등을 해결해야 한다. 법무부는 지난해 리걸테크 관련 제도개선특별위원회를 발족했지만, 하급심 판결문 공개 등 업계 요구에 대한 논의가 진척되지 않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대륙아주가 출시한 AI 챗봇에 대해 “변호사법에서 금지하는 ‘공정한 수임 질서를 저해할 수 있는 무료 혹은 염가 광고’일 수 있다”며 소명을 요구했다.

김진성/허란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