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권에서 장기전세주택이 처음 공급된 서울 반포동 반포자이.  /한경DB
서울 강남권에서 장기전세주택이 처음 공급된 서울 반포동 반포자이. /한경DB
아파트값과 전셋값이 정신없이 빠지는 가운데 이달초 서초구 반포자이 전용 59㎡ 세 가구가 전셋값 5억8653만원에 잇따라 계약되면서 화제가 됐습니다. 같은 크기의 59㎡ 타입 아파트는 2021년 11월에 전세금 16억원에 계약됐었고, 이달 들어서도 보증금 12억~14억원에 전세 임대차가 이뤄졌습니다. 다른 대규모 단지에도 비슷한 유형의 낮은 값의 거래 신고가 이뤄진 게 확인됩니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부동산 대폭락의 전조현상'이라며 흥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계약은 서울시 장기전세 임대주택 계약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셋값의 단위가 100만원 단위로 떨어지는 숫자가 아닌 5억8653만원이고, 세 가구의 거래 금액이 동일합니다. 2020년 제38차 장기전세주택 입주자 모집 때 반포자이 59㎡ 전셋값이 5억8600만원으로 얼추 비슷합니다. 다만 당시 20가구를 공급했고 첫 입주 예정일이 그해 10월이었는데, 예비 당첨자를 감안해도 이 물량이 왜 이제야 실거래 신고가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설 연휴 때문에 더 자세히 알아보지 못한 데 대해 독자들께 죄송함을 전합니다.

아무튼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사건으로 퇴임하기 전 '시프트'란 이름으로 도입한 장기전세 주택은 지금도 명맥을 이어가며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오 시장은 당시 "이제 집은 '사는것'에서 '사는곳'으로"라는 슬로건을 내걸었고, 스스로 이 정책을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오 시장은 2009년에 '시프트'란 제목으로 책도 냈습니다.

이후 장기전세주택은 SH공사의 재정난 등을 이유로 추가 공급이 거의 없이 폐지 수순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2021년 보궐선거로 오 시장이 다시 서울시장에 복귀하면서 ‘상생주택 제도’를 중심으로 다시 장기전세주택 공급을 재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장기전세 주택은 시민들에게 혜택을 줬을 뿐만 아니라 서울시와 SH공사(서울주택도시공사)의 재산 증식에도 큰 기여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집값이 오른 덕분에 장기전세주택 가치가 32조1067억원(작년 7월 말 시세 기준)에 달할 정도가 됐습니다.

장기전세주택은 SH공사의 공공임대단지 또는 민간 재건축 단지의 일부로 지어지며 지금도 정기적으로 입주자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작년 5월 모집 기준으로 청담자이 82㎡의 장기전세 보증금은 10억500만원이었는데 전셋값이 급락한 지금도 해당 평형의 일반 전셋값은 13억~17억원을 호가하고 있습니다. 장기전세주택은 20년까지 안심하고 살 수 있고 전세금을 떼일 위험도 없다는 것은 큰 장점입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