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같은 부동산, 다른 공시價
국토부 통제받는 한국감정원, 공시가격 크게 올려
감정평가사들이 제시한 상승률보다 최대 3배 차이
"정부, 中·高價 단독주택 보유세 올리려고 무리수"
그러나 올해 사상 처음으로 이 같은 공식이 완전히 깨졌다. 단독주택 공시가격 상승률이 공시지가 상승률의 두 배를 넘었다. 심한 곳은 세 배에 달했다. 한국감정원이 국토부의 보유세 인상 정책에 발맞춰 무리하게 단독주택 공시가격을 끌어올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시가·공시지가 상승률 격차 커
한국경제신문이 서울시내 10개 동에서 표준단독주택 1216가구·표준지 763필지를 전수조사한 결과 올해 단독주택 공시가격 평균 상승률(26.9%)이 표준지 공시지가 평균 상승률(12.7%)의 두 배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용산구 한남동 공시지가는 1년 새 14% 올랐으나 단독주택 공시가격은 41% 급등했다. 마포구 연남동에선 공시지가가 25% 오를 때 공시가격이 70% 급등했다. 공시지가가 17% 오른 강남구 삼성동의 단독주택 공시가격은 48% 뛰었다. 방배동도 두 상승률 간 격차가 23%포인트에 달했다.
단독주택 공시가와 표준지 공시지가가 이렇게 차이 나는 경우는 없었다. 작년까지 최근 3년간 두 가격의 상승률 차이는 0~1%대에 그쳤다. 한 감정평가사는 “공시가격이 공시지가보다 배로 오르는 일은 20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업무 분리로 산정 체계 혼란”
감정평가사들은 감정평가 관련 3법이 제정된 뒤 정부의 공시가격 산정 체계가 혼선을 빚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감정평가 관련 3법은 △감정평가사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 △부동산 가격공시에 관한 법률 △한국감정원법을 말한다. 2016년 1월 제정해 9월 시행됐다. 핵심은 업무영역 분리다. 법 제정 이후 기존 민간 감정평가업자가 맡고 있던 단독주택 공시가격 산정 업무가 한국감정원으로 넘어갔다. 감정원은 이후 전국 단독주택 418만 가구 중 22만 가구를 표준주택으로 선정해 공시가격을 매기고 있다. 아파트와 빌라 등 전국 공동주택 1289만 가구는 예전부터 직접 가격을 산정했다.
반면 토지는 여전히 민간 감정평가사가 공시지가를 매기고 있다. 표준지가 전국 50만 필지로 방대해 민간 평가사 1052명에게 조사·평가 업무를 의뢰하고 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정부는 민간 평가사가 산정한 표준지공시지가를 최종 결정·공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한 감정평가사는 “공시가격과 공시지가 모두 감정평가사가 하던 업무”라며 “감정원이 평가사가 아닌 이들까지 동원해 가격을 산정하다 보니 가격 산정이 정부 의지에 휘둘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감정평가사는 “공시업무를 맡은 감정원 직원이 450여 명이고, 이 중 감정평가사는 200명가량”이라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력으로 공동주택 1289만 가구, 표준주택 22만 가구의 공시가를 제대로 산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깜깜이’ 공시가 산정도 문제
한국감정원의 공시가격 산정 기준이 베일에 가려진 것도 문제다. 어떤 기준으로 공시가격을 정하고, 그 가격이 적정한지 판단하는 정보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정수연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감정원이 실거래가의 일정 비율을 공시가격에 반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산정 공식은 외부에 알려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까닭에 정부가 공시가격을 좌지우지할 여지가 높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올해 공시가격 산정을 두고도 국토부가 한국감정원에 고가 단독주택(2018년 공시가격 20억원 이상) 공시가격을 최고 세 배까지 올리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과세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 산정에 가이드라인을 내린 것이라면 행정권 남용으로도 볼 수 있다”며 “땅값에 비해 주택 가격이 크게 올랐으면 정부는 납득할 만한 이유를 내놔야 한다”고 비판했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는 “공시지가와 단독주택 공시가격은 엄연히 달라 두 지표를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양길성/구민기/이주현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