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시내의 옛 순환도로를 오가는 지상전차 트램. 전기를 사용해 배기가스가 전혀 배출되지 않는 데다 선로에 잔디가 깔려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한경DB
프랑스 파리 시내의 옛 순환도로를 오가는 지상전차 트램. 전기를 사용해 배기가스가 전혀 배출되지 않는 데다 선로에 잔디가 깔려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한경DB
전국 지방자치단체 수십 곳이 쏟아낸 노면전차(트램) 사업이 단 하나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 10년 전부터 사업계획이 우후죽순 나왔지만 첫 삽조차 뜬 사업이 없다. 민자적격성 심사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노선도 3~4개에 그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에선 트램 건설이 불가능하다는 말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사업성 확보가 어려운 데다 트램 건설 시 ‘경제성 평가(B/C)’ 체계도 까다롭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전 세계 400여 개 도시 누비는 ‘트램’

트램은 도로에 선로를 깔아 주행하는 전차다. 우리나라에선 낯설지만 유럽에선 흔한 편이다. 프랑스는 19개 시에서 트램을 운영한다. 전 세계 50개국 400여 개 도시에서도 트램이 지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1899년 서울에서 트램을 도입했으나 교통 혼잡의 이유로 1968년 폐선됐다.

장점은 값싼 건설비다. 트램은 지하철에 견줘 건설비가 적다. ㎞당 건설비가 200억원에 그친다. 지하철 대비 6분의 1, 경전철 대비 3분의1 수준이다. 도로에서 승하차가 가능해 장애인 등 교통 약자가 이용하기 편하다.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도 쉽고 주변 상권을 활성화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여기에 전기로 움직여 친환경 교통수단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밀라노 시내를 운행하는 트램. 한경DB
밀라노 시내를 운행하는 트램. 한경DB
◆지자체 16곳 검토만…

전국 지자체는 이런 이유로 수년 전부터 트램 사업 계획을 쏟아내고 있다. 서울 위례신도시, 경기 성남·수원·화성·안성·시흥·안산시, 인천시, 대전시, 부산시 등이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착공에 들어간 트램은 하나도 없다. 민자적격성 심사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노선도 손에 꼽을 정도다. 지난 2월 경기도가 발표한 ‘경기도 도시철도망 구축계획 변경안’을 보면, B/C값이 1을 넘은 트램 노선은 7개 중 동탄도시철도 1단계 노선 뿐이다. 나머지 6곳은 모두 1.0을 밑돈다. 이마저도 지자체가 실시한 타당성 검토에 불과하다. 트램 사업이 재정지원을 받으려면 기획재정부 산하 KDI 공공투자관리센터(PIMAC)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해야 한다. 기재부가 검토하는 예비타당성 조사는 지자체보다 까다로워 B/C값은 일반적으로 더 낮아진다. 경기 수원시 트램 사업도 2013년 2월 기재부 예비타당성 조사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타당성 검토 문턱도 넘기기 힘들다 보니 대부분 트램 사업은 수년째 표류하고 있다. 위례 트램 사업이 대표적이다. 이는 5호선 마천역과 8호선 복정역을 잇는 노선이다. 국토부는 2008년 7월 위례신도시 개발계획을 확정할 때 트램 건설 계획을 함께 발표했다. 건설비 1800억원 중 LH가 1080억원을 부담하고 나머지 720억원은 민간 사업자가 맡기로 했다. 당시만 해도 2021년 준공이 목표였다. 그러나 2016년 4월부터 시작한 PIMAC 민자적격성 심사 결과가 2년 넘게 나오지 않고 있다. 원칙적으로 민자적격성 심사는 6개월 안에 끝내야 한다. 업계에선 ‘경제적 타당성(B/C)’이 낮아 적격성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위례신도시에 조성될 트랜짓몰 조감도.
위례신도시에 조성될 트랜짓몰 조감도.
◆우리나라는 왜?

그동안 트램 사업은 법적 근거가 부족해 제 속도를 내지 못했다. 지난 2월에서야 트램 운행 근거를 담은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로써 ‘트램3법’으로 불리는 도시철도법, 철도안전법, 도로교통법이 마련됐다. 이전까지 트램은 도로교통법상 도로 위 운행 교통수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각 지자체는 중단된 트램 사업을 하나둘 재개하고 있다. 대전 2호선 트램 건설을 추진하는 대전시는 타당성 재조사에 들어갔다. 올 하반기에는 설계 용역을 마칠 계획이다. 부산시는 지난해 기재부에 예비타당성 조사를 맡긴 3호선 강서선 트램 건설을 본격화할 방침이다.

다만 사업성이 관건이다. 이미 이용 중인 도로에 트램을 깔려면 돈이 많이 든다. 도로 차선이 줄면서 교통 혼잡을 유발할 가능성도 높다. 또 지하철에 비해 건설비가 적게 들지만 도로 위에서 경쟁할 시내버스와 비교하면 운영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다. 수요에 따라 노선 변경이 쉬운 버스에 비해 승객 수용량도 부족한 편이다. 경남 창원시는 2011년 예비타당성 심사를 통과했으나 막대한 재정이 든다는 이유로 포기했다. 2021년 개통 목표로 총연장 33.9km에 트램을 건설할 계획이었다. 경기 광명·파주·안성시, 전주시, 김해시 등도 트램 도입을 검토하다 지방재정 악화가 우려돼 중단했다.

한국교통연구원 관계자는 “국내에서 트램 건설 경험이 없다 보니 사업비를 산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도로 위 교통 체증을 유발한다는 편견도 있어 도입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각 지제체와 전문가들은 트램 건설의 타당성 평가 방식을 개선하는 데도 힘써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로 위에서 버스랑 경쟁하는 데다 주요 도심이 아닌 베드타운을 지나는 탓에 이용객이 많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높은 B/C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 관계자는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경제성을 평가할 때 현행 기준은 지하철 위주”라며 “단지 승객을 빨리 태워 나르는 점만 검토할 게 아니라 친환경적이고 편리성이 높다는 점도 평가에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